의료계도 강해지는 여풍(女風)의 위력을 피해가진 못했다. 지난 2010년부터 10년간 여의사 수가 10%나 증가했다. 의사 10명 중 3명이 여성이다.
여의사가 진단할 수 있는 진료과목도 훨씬 다양해졌다. 집도의 수와 수술 분야까지 모두 급속한 확장세다. 진료와 수술 과정에서 여성의 섬세한 손실이 부각되는 측면도 있어 여의사 선호 현상도 일고 있다. 다만 의사협회장 등 의료계 단체 대표직에는 아직 여의사 비중이 크지 않아 '유리천장'은 여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의사 30%가 여성
여의사의 수는 예전보다 확연히 늘어났다. 증감률로만 따지면 남자 의사보다 훨씬 더 가파르다.
보건복지부가 2022년 발표한 보건의료인력실태조사에 따르면 2010년 전체 전문의 수는 5만3천81명이었다. 이 중 남자는 4만3천36명(81.07%), 여자는 1만45명(18.92%)이었다.
10년 뒤인 2020년 전체 전문의 수는 8만1천311명으로, 이 중 남자는 6만1천946명(76.18%), 여자는 1만9천365명(23.81%)이었다. 10년 사이 남녀 비율이 8대2에서 7대3 정도로 바뀐 것이다.
여의사 수도 급증했다. 2020년 전국 전문의 숫자는 2010년에 비해 53.18% 늘었다. 10년 간 남성 전문의 숫자가 43.94% 증가하는 동안 여성 전문의 숫자는 92.78%나 늘어났다.
대구경북 또한 마찬가지의 상황을 보이고 있다. 2020년 대구의 전체 전문의 숫자는 4천570명으로 2010년(3천103명)보다 47.28% 증가했다. 같은 기간 대구의 여성 전문의는 2010년 639명에서 2020년 1천109명으로 73.55%나 늘어났다.
경북도 마찬가지 양상을 보였다. 전체 전문의 숫자는 2010년 2천179명에서 2020년 2천977명으로 36.62% 증가하는 동안 경북의 여성 전문의는 2010년 217명에서 2020년 355명으로 63.59%나 늘어났다.
여의사 비중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는 이유는 결국 의대 진학에서 여학생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에 가까울 정도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상이 전문의 비중에도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종로학원 조사에 따르면 2021년 의대 신입생 중 여성 비율은 35.2%로 나타났다. 전국 의대 입학생 중 여학생 비율은 1970~80년대만 해도 10%대에 그쳤다. 1990년대 들어 처음 20%대를 넘었고, 이제는 40%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 더 이상 '금녀의 벽'은 없다
여성 의사들이 늘어나면서 진출하는 진료과도 다양해지고 있다. 예전에는 내과나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병리과, 진단검사의학과 등 수술이 많지 않고 검사 위주의 진료과에 여성들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가는 경우가 많았다.
장명수 대구시여의사회장은 "예전 수련병원 내과는 여성 의사를 한 명만 뽑았고, 외과는 아예 선발하지도 않았다. 한 의국에 여성 전공의는 한 명만 뽑기로 암묵적으로 정해놓는 등 지원할 수 있는 전공이 매우 제한적이었다"며 "요즘은 수련을 받을 수 있는 병원의 선택 범위가 넓어지고, 여성 의사 숫자도 늘어나면서 전공의 모집에 여성이라고 특별히 제한받는 건 사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지금은 여성들의 진출이 쉽지 않았던 외과계열 진료과에도 점점 비중이 늘고 있다. 특히 여성 환자의 비율이 높은 유방·갑상선·내분비외과 계열에 여성 의료진이 많이 진출해 있다.
대구 시내 각 대학병원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된 의료진들을 살펴보면 대구가톨릭대병원 유방내분비외과 교수 2명 모두가 여성이다. 또 영남대병원 유방내분비외과 교수 7명 중 5명, 계명대동산병원 유방내분비외과 교수 4명 중 2명이 여성이다.
경북대병원의 경우 수술이 장기전으로 갈 확률이 높은 흉부외과 교수 8명 중 3명이 여성이다. 신경외과에도 1명의 여성 의사가 있다. 주로 남성질환을 다룬다고 여겨지는 비뇨의학과에도 여의사들이 각 대학병원마다 1, 2명씩 진출해 있다.
여성 의사들은 예전보다 많은 부분에서 보호를 받기는 하지만, 여성이라고 수련 과정이나 진료 현장에서 특별히 배려를 받는 부분은 없다고 말한다.
김진희 계명대동산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는 "1980, 90년대 여성 전공의나 전문의는 출산 휴가를 길어야 한 달밖에 받지 못했지만 지금은 3개월 정도 받는다"며 "예전에는 출산과 관련한 보호를 받기 쉽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 때보다는 나아진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 진료 현장서 각광받는 여의사
외과 계열로도 여성의 진출이 활발해진 이유 중 하나로 의료장비의 발달이 한 몫을 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예전에는 수술 자체에 많은 물리적 힘이 필요했다. 수술 시간이 길어지면 체력적으로도 남성을 따라가지 못해 여성 외과의사들이 많지 않았다.
이에 반해 지금은 로봇 수술 등 의료장비가 발달하면서 수술에 들어가는 물리적인 체력이 예전보다는 훨씬 줄어들었다.
강선희 계명대동산병원 유방내분비외과 교수는 "외과 계열에서 소아들을 수술하는 경우 여성 의사들의 세심함이 필요할 때가 있다"며 "남성 의사라 하더라도 수련 과정에서 여성적 섬세함을 갖춘 선생님들은 훨씬 빨리 수술 방법을 익히기도 한다"고 말했다.
여성 의사들이 늘면서 병원 경영 차원에서 도움이 되기도 한다. 김진희 교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실시한 2023년 환자경험평가에서 계명대동산병원이 전국 1위를 한 여러 요인들 중 여성 의사들의 기여도도 적지 않다고 판단한다"며 "여성 의사들이 늘면서 여성이 가진 배려와 소통, 공감의 능력 등이 병원을 찾는 환자들의 만족도를 올리고 의료 시스템 상에서 좀 더 나은 경험을 전해주는 결과를 낳았다고 본다"고 말했다.
◆ 남은 도전 과제는 의료계 리더십 분야
의료계 전반에 여성 활약상이 두드러지고 있지만 아직도 미흡한 분야가 일부 있다. 대표적으로 여성 '리더' 가 절대 부족하다. 대구지역 상급종합병원의 병원장 중 여성은 아직 없다. 대구시의사회를 비롯해 의료계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단체의 수장을 맡는 여성 의사들도 그리 많지 않다.
이 때문에 여성 의사들 스스로 향후 리더십을 발휘할 자리에 오를 여의사들을 키우기 위한 다양한 교육과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여자의사회가 지난해 개최한 '제 18회 전국여의사대표자대회'에서 논의됐던 주제도 '소통을 통한 여의사의 리더십 함양'이었다. 그만큼 여성 의사들 안에서도 의료계를 이끌어가는 방향에서 여성의 역할을 고민하고 있다.
장명수 대구시여의사회장은 "요즘은 사회 전반적으로 다양햔 분야에서 여성들이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기에 의료계에서도 좀 더 많은 여성 인재들이 리더십을 발휘할 때가 올 것"이라며 "여성 의사들도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리더십을 발휘할 기회를 찾고 도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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