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오후 찾은 대구 서구 평리5동 일대 문화로. 시내방향으로 이동 중 양쪽 아파트가 지하로 보일 만큼 솟아오른 오르막을 지나자 곧바로 급경사 내리막이 시작됐다. 평탄한 구간도 잠시, 150m쯤 지나 마주한 네거리 너머는 공사 중이었다. 애초 왕복 4차로 도로는 공사로 인해 2개 차로가 점령되면서 반대편 편도 2차로를 한 개씩 나눠 쓰는 임시도로로 이어졌다. 중앙분리대 등으로 막아둔 변경 지점에는 방향 지시 철제 표지판 하나만 덩그러니 세워져 있었다.
문화로 평탄화‧확장 공사 비용부담을 둘러싼 서구청과 재건축조합 간 갈등(매일신문 11월21일)이 수년 째 지속되는 가운데, 주민들은 공사가 중단된 채 방치된 임시 도로에 불편‧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최근 이 구간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하며 도로의 위험성이 드러나자 관할 구청에 안전 조치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지난 23일 오후 9시쯤 문화로 시내방면 도로 공사 시작지점에서 일가족이 탑승한 SUV차량 단독 추돌사고가 발생했다. 범퍼와 헤드라이트 등 차량 전면부가 크게 파손됐지만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다. 사고 차주는 방치된 공사 현장이 사고를 유발했다고 지적했다.
운전자 A씨가 주장한 사고 원인은 '차선 혼동'이다. A씨는 이날 문화로 주행이 처음이었던 탓에 기존 직선 차로가 대각선 반대 방향 임시도로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공사 지점에서도 계속 직진한 A씨 차량은 중앙분리대 PC방호벽을 들이받고 도로 포장이 벗겨진 인도 방면 경사지로 추락했다.
A씨는 사고 직후 현장을 지나는 주민들에게 "앞쪽이 공사 중이라거나 차선이 줄어든다는 표시가 보이지 않았다"는 취지로 하소연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지난 24일 오후 찾은 사고 현장에는 A씨 말대로 차선 변경을 지시하는 표지판 하나 외엔 다른 위험‧주의를 나타내는 신호가 없었다. 사고 잔해를 둘러보던 주민들은 불안감을 드러냈다. 주민들은 평소에도 왕복 2차선 임시도로가 좁고 급격히 꺾이는 탓에 교통체증이 빈번하고, 사고 위험이 높아 보였다고 입을 모았다. 이곳은 지난 2022년 6월 시작된 공사가 지난해 3월 돌연 중단되면서 2년 5개월째 임시도로 형태로 운영 중이다.
현장에서 만난 주민 이모 씨는 "문화로는 공사 중단 후 수년간 방치돼온 반면, 아파트 입주는 계속 늘면서 어느덧 3개 단지 3천600여 가구가 도로를 이용하게 됐다"며 "차가 많아질수록 도로는 더욱 비좁고 위험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주민들은 하루빨리 공사가 재개되길 바라고 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공사 중단 배경과 관련해 서구청과 평리6재정비촉진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 간 법적공방이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기 때문이다.
양측이 공사 비용을 두고 벌이는 민사 소송은 최근 마무리된 1심에서 서구청이 승소했다. 조합 측은 곧바로 항소 의사를 밝혔다. 양측 모두 원하는 판결을 받지 못할 경우 대법원까지 소송을 이어가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
서구청은 문화로에 접해 있는 조합 4곳에 평탄화 여부에 관한 의견을 모아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지만, 조합 간 의견이 갈리며 논의에 진전이 없는 상태다.
주민들은 조속한 공사 재개가 어렵다면 서구청이 임시 안전조치라도 확실히 해둬야 한다고 요구한다.
평리뉴타운 주민 김모 씨는 "공사 현장 주위에 여러 시설물들이 있었음에도 사고가 났지 않냐"며 "사고가 야간에 발생한 만큼, 재발 방지를 위해선 운전자의 인식 가능성을 고려한 추가 표지판, 경고 조명 등이 설치돼야 할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서구청은 공사 주체가 조합인 만큼 구청이 할 수 있는 조치가 제한적이라면서도, 다양한 경로로 안전 확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입장이다.
서구청 관계자는 "각 조합들과의 꾸준한 논의를 통해 주민 안전을 보장할 방법을 다각적으로 검토 중"이라며 "6조합 측에 꾸준히 요구한 끝에 지난 5월 도로안전시설을 확충토록 했다. 더욱 본질적인 해결책을 선보이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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