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거대한 뿌리, 구미]<11> 금리단길과 새마을 중앙시장

힙한 카페·전통시장…옛것과 새것 공존하는 도시

금리단길은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봄이 절정이다.
금리단길은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봄이 절정이다.

구미에선 어디로 놀러가고 무엇을 먹을까? 구미엔 금리단길과 새마을중앙시장이 있다. 과거와 미래, 레트로와 트랜디한 감성, 역사와 전통을 가진 핫스팟이 공존하는 구미.

구미국가산업단지를 중심으로 발전해 온 구미는 내륙 최대 전자산업도시라는 명성에 걸맞는 무채색 회색도시였다. 박정희 시대 들어 산업단지를 조성하면서 급속 성장한 산업도시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이웃의 천년고도 경주나 한국정신문화의 수도를 내세우는 안동과 달리 구미는 그동안 역사도시라기 보다는 '퇴락한' 산업화시대의 산물로 인식되기도 했다.

구미와 구로공단 마산창원 수출산업단지 그리고 포항제철 등이 없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없겠지만 우리는 늘 먹고사는 문제, 보릿고개를 넘어선 그 시대에 대한 고마움은 고사하고 혹독한 평가마저도 하지 않으려 한다. 그래도 구미는 우리를 잘 살게 해 준 '고마운 도시'로 기억하는 게 맞을 것 같다.

구미 핫스팟인 금리단길 입구
구미 핫스팟인 금리단길 입구

◆구미 핫스팟, 금리단길

우리가 구미에 가는 이유는 다양한 '먹거리'와 '놀거리' 그리고 한 번쯤은 깊이 생각해야 하는 우리시대의 뿌리가 거기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구미국가공단이 대한민국 최고의 산업단지로 잘 나가던 시절, 전국에서 청년노동자들이 몰려들었다. 1990년대까지 구미시민의 평균 연령은 29세로 전국에서 가장 젊은 청년도시로 자리잡았다. 2023년 구미시민의 평균 연령은 41.2세로 경북에선 가장 젊은 도시지만 과거의 활력은 되찾지는 못하고 있다.

구미에 '금리단길'이 생기면서 청년들이 돌아오고 있다. 서울의 '경리단길'과 경주 '황리단길' 처럼 청년들이 금리단길에 속속 돌아와 카페를 열고 소품샵을 열고 책방을 열었다. 물론 아직까지 황리단길 같은 곳의 명성에 미치진 못하지만 11월 초 열린 구미라면축제 때는 금리단길도 인산인해를 이뤘다.

구미 핫스팟인 금리단길에 식당과 카페 소품샵 등이 속속 들어섰다.
구미 핫스팟인 금리단길에 식당과 카페 소품샵 등이 속속 들어섰다.

구미를 다채로운 '꿀잼'청년도시로 만들어주는 핫스팟이 금리단길이다. 금리단길은 구미역 후면광장에서 경북외고에 이르는 '금오산로 22길'을 중심으로 각산네거리까지 이르는 주택가로 이곳에 식당과 카페 소품샵 등이 속속 들어섰다. 이 길이 금오산 입구로 이어진 길이어서 '금리단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노잼'에서 '꿀잼'으로. 청년들이 카페와 서점, 식당을 열자 재미없는 구미가 꿀맛나는 재미있는 도시로 변하고 있다. 북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책을 읽거나 독서토론회를 하기도 하고 불과 얼마 전까지 어릴 적 우리들의 이웃집 같은 '슬라브양옥'의 현관을 들어서면 낯설지 않은 술집이 나타난다. 올들어 문을 연 술만 팔지 않는다는 '저스트낫드링크'다. 이곳에선 하이볼과 와인을 마시면서 책을 읽을 수 있고 가끔 열리는 북토크에도 참여할 수 있다.

구미의 핫스팟인 금리단길
구미의 핫스팟인 금리단길

금리단길의 카페와 술집에선 수시로 각종 문화행사가 열린다. 구미역 후면광장에서 어슬렁 어슬렁 걷다가 눈에 띄는 카페에 들어가 차 한 잔 하다가 트렌디한 소품을 파는 가게를 구경하고 일본 라멘이나 스파게티 혹은 떡볶이를 먹을 수 있는 곳이 금리단길이다.

전국에 산재한 다른 '리단길'과 다른 점이 있다면, 자리잡은 가게들이 새로 짓거나 정형화된 상가가 아니라 일반주택을 리모델링함에 따라 마치 80~90년대 옛날 골목길로 갑자기 빠져드는 레트로 감성에 자연스럽게 빠지게 된다는 점이다.

구미시가 마련한 '책 읽는 금리단길' 사업의 일환으로, 수시로 금리단길에 자리한 카페와 북카페 술집 게스트하우스 등에서 책과 출판을 테마로 한 시낭송회와 북토크 등을 열기도 해 문화향기 가득한 것도 또 다른 특징이다. 뚜벅뚜벅 걸어 다니는 금리단길이지만 이곳까지 자동차를 타고 왔다면 구미역 후면광장 지하주차장을 이용하면 된다.

아직까지는 골목길 구석구석까지 가게들이 들어서지 못해서 부족한 듯 해보여도 그것이 오히려 금리단길이 주는 미완의 매력일지도 모른다. 금리단길은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봄이 절정이다. 매년 3월 경북교육청구미도서관을 끼고 있는 금오천에서 금오산 입구까지 이어지는 강변을 따라 핀 벚꽃 행렬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장관을 이룬다.

새마을중앙시장은 박정희도시답게 박정희 시대에 발전하기 시작한 구미의 영욕을 지켜 본 구미의 대표적인 전통시장이다.
새마을중앙시장은 박정희도시답게 박정희 시대에 발전하기 시작한 구미의 영욕을 지켜 본 구미의 대표적인 전통시장이다.

◆진짜 레트로 전통시장의 맛, 새마을중앙시장.

'새마을'이라는 박정희시대의 접두어를 붙인 전통시장이 구미새마을중앙시장이다. 새마을운동은 1970년 '근면,자조,협동'을 바탕으로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로 시작된 자발적 농촌 잘살기 운동이었다. 그래서 '새마을'은 박정희 시대를 추억하는 구미다운 작명법이다. 그래서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옆에는 '새마을테마공원'도 있다.

금리단길에서 구미역사를 가로질러 역사 앞으로 건너면 올해 라면축제가 열린 4차선도로가 나온다. 4차선 도로 오른쪽이 곧바로 새마을중앙시장통으로 이어진다.

새마을중앙시장은 박정희도시답게 박정희 시대에 발전하기 시작한 구미의 영욕을 지켜 본 구미의 대표적인 전통시장이다. 순대골목, 국수골목, 족발골목, 한복골목 등 특화된 골목이 사방에 자리잡고 있어 다양한 전통시장 본래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올 4월에는 시장 중앙에서 일주일동안 '낭만야시장'을 개설, 무려 26만여 명의 방문객이 찾을 정도로 구미의 새로운 명소로 각광을 받았다. 요즘에야 대형마트와 온라인쇼핑을 통해 장을 보는 것이 대세지만 전통시장을 한두 번 찾다보면 에누리하는 재미나 덤을 얹어주는 좌판 할머니들의 넉넉한 인정에 반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새마을 중앙시장의 족발 골목
새마을 중앙시장의 족발 골목

시장에는 과일과 채소 등의 농수산물은 물론이고 의류와 잡화 등의 기본적인 시장물건 외에 국수골목과 순대골목, 족발골목, 한복골목 등으로 구분돼 있어 색다른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

낭만야시장이 열렸을 때 가장 큰 인기를 끈 곳은 족발골목이었다. 이 시장 족발식당들은 1970년대 중반부터 자리잡으면서 현재 10여개에 이른다. 가장 인기있는 메뉴는 양념이 잘 밴 족발에 가늘게 썬 파를 송송 뿌려 낸 '무침족발'과 매콤한 '불족발'이다.새마을중앙시장 만의 특색있는 족발메뉴다.

요즘같이 찬바람이 서늘하게 느껴지는 초겨울 추위를 이겨내는 데는 순대골목에서 먹는 따끈한 순대·돼지국밥보다 더 좋은 게 없을 것 같다. 주머니가 넉넉하지 않은 직장인이라면 순대골목으로 가보시라, 취향대로 따로·섞어 국밥 주문이 가능하다.

구미에는 금리단길, 새마을중앙시장 외에 금오산 입구의 백숙집, 선산곱창, 진평동 음식문화특화거리 등도 있다.

서명수 객원논설위원(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diderot@naver.com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