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빌 클린턴 후보는 당시 현직 대통령인 공화당 조지 부시 후보를 상대로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the economy, stupid)라는 구호를 내세워 승리했다. 도널드 트럼프의 재선 동력 역시 조 바이든 행정부의 경제 실패가 가장 컸다는 것을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 '먹사니즘'이 바로 유일한 이데올로기여야 한다. 경제가 곧 민생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당 대표 출마 선언을 하면서 내세운 '먹사니즘'은 클린턴의 선거 구호의 한국판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그런데 먹사니즘의 실체는 아직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구체적인 정책과 실행 계획은 아직 안갯속이다.
민주당은 내년도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지역화폐' 예산 2조원을 증액했다. 정부가 예산안에 계상하지 않았지만 민주당은 이재명 예산이라며 우겨 넣었다. 지역화폐는 2017년부터 지역 경제 활성화를 명분으로 발행하고 있는 '지역사랑상품권'을 발행하는 데 소요되는 예산이다. 정부는 지역화폐가 사실상 학원비로 전용되거나 '상품권 깡'으로 악용되면서 지역 경제 활성화 효과는 미미하다며 포퓰리즘 예산이라는 이유로 전액 삭감할 방침이다.
대신 민주당은 검찰과 경찰, 감사원 등 사정·감사 기관의 특활비를 대거 삭감, 마약과 딥페이크 등 신종 범죄 수사가 차질을 빚을 우려가 제기된다. 국민의 안전을 위협할 수도 있는 '예산 몽니'다. 차세대 원전이라는 '발전용 소듐냉각고속로'(SFR) R&D 예산도 70억원에서 7억원으로 줄였다. 지난해 정부의 R&D 예산 삭감을 "무지(無知)하다"고 비판해 오던 민주당이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의 미몽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양이다.
민주당은 논란의 금융투자소득세는 폐지하는 것으로 입장을 선회했지만 가상화폐 과세는 시행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금투세 시행은 문재인 정부의 핵심 정책과제였다. 이 대표의 먹사니즘은 이처럼 사안에 따라 오락가락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위증교사 의혹 1심 무죄 선고로 기사회생한 이 대표는 26일 민생연석회의를 시작으로 민생 행보에 고삐를 죄기 시작했다. 27일 교육계 현장 간담회, 28일 한국거래소를 방문해 상법 개정안과 관련한 재계 입장 청취에 나선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주말인 30일 예정된 제5차 장외 집회도 예정대로 진행한단다. 주말마다 민주당과 촛불행동 등이 여는 윤석열·김건희 대통령 부부 규탄과 탄핵 선동 장외 집회는 마침내 'K-정치'로 전 세계에 각인되고 있다. 주말 서울 도심이 민주당 장외 집회로 인한 차량 정체와 소란으로 아수라장이 되는 세계적인 구경거리다.
주먹구구 먹사니즘으로는 이 나라를 이끌 수 없다. 현 정부도 마찬가지다. 국가 전략이 없다. '중국몽'은 있는데 '한국몽'은 없다. 5년마다 정권 교체가 되는 마당에 어느 정권도 중장기적 국가 전략을 세우지 않고 의지도, 여력도, 정치 지도자도 없다. 정권은 여론 지지율 눈치만 보고 정쟁만 난무하는 우리 정치권이 단기 국가 전략을 세울 리 만무하다. 영부인 리스크에 시달리는 윤석열 대통령은 남은 절반 임기를 버텨 내는 것 외에 어떤 목표도 없어 보인다.
'이재명의 먹사니즘' 실체는 국민이야 죽든 말든 자신의 사법 리스크를 방어하고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국회를 장악하고 나라를 엉망진창으로 망가뜨리려고 할까?
서명수 객원논설위원(슈퍼차이나연구소대표)diderot@nave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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