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게 말해서 트렌드에 관한 한 대학교수가 쓴 책을 신뢰하지 않는다. 해마다 이맘때면 서점 매대를 뒤덮는 모 교수의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이다. 어떻게 본다면 내 일상이 트렌드와 무관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이 책을 잡은 건 오직 대흥기획이 펴냈다는 점 때문이었다. 광고 기획하는 사람들, 소비시장의 최전선에서 시류와 소비자의 욕망을 읽는데 정통한 이들이고 자본을 움직이는 욕망의 실체를 캐내는 사람들이 아니던가. 광고기획사가 탐색하고 도출해낸 결과라면 참고할 만하다고 여겼다.
세대를 구분하고 세대별 특징을 구별 짓는 행위는 언젠가부터 세대론으로 둔갑하더니 주로 정치사회적 맥락으로 해독하기 이르렀다. 쉽게 말하자면 기성세대와 청년세대, 산업화세대와 민주화세대 등등. 한국사회의 잠재된 위험을 세대 갈등에서 원인을 찾고 이를 풀어보자며 내놓은 세대전쟁론 같은 주장도 나왔다. 이들의 한계는 정치사회 맥락을 넘지 못한데다, 시류를 충분히 고려하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즉 금융자본주의 소비사회에서 각 세대가 보이는 소비 욕망의 지형도를 탐색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는 뜻이다.
대흥기획 데이터인사이트팀이 펴낸 '세대욕망'은 카피에서 드러내듯이 '시대 경험은 소비를 어떻게 바꾸는가'라는 원인을 찾아 세대별 맞춤 미래 콘텐츠와 지속될 동기를 제시한다. 광고기획자답게 형식도 내용도 명쾌하고 일목요연하다. 시작은 (관점에 따라 의견이 분분한)세대 구분이다. 예컨대 책은 베이비부머세대(1955~1969), X세대(1970~1979), 밀레니얼세대(1980~1995), Z세대(1996~2009), 알파세대(2010 이후)로 구분하는데 이는 욕망과 소비패턴을 추적하고 수집한 결과이다.
'세대욕망'은 텍스트로 독자를 충분히 설득한 다음 통계와 그래프로 재확인시키는 방식을 택한다. 먼저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떤 곳인지 말하고, 데이터를 통해 소비동기를 나눈 다음 세대별 특성을 도출해낸 후 한국인은 무엇을 원하는지, 앞으로 살아남을 지속가능한 콘텐츠는 어떤 욕망을 주목해야 하는지, 꼼꼼하게 새겨넣었다.
베이비부머와 386세대는 왜 부모세대의 전형을 답습하는지, X세대가 정치적으로 진보성향을 고수하는 바탕은 무엇인지, MZ세대가 추구하는 삶과 소비 욕망은 어디서 비롯됐는지, 거칠게 말하자면 젊은 직원들은 왜 '읽씹'을 하는지, 힘들게 합격한 공무원을 왜 1년 만에 때려치우는지. 소위 기성세대와 미래세대의 고민의 근원이 빠짐없이 들어있다.
에둘러 말하고 싶진 않다. 이제껏 MZ와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살아온 환경과 경험치가 달라 어쩔 수 없다는 말로 체념하기 일쑤였다. 소통하려고 굳이 애쓰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나름 진보적이고 열린 사고를 가졌다고 생각했으나 나만의 착각이었다. 게으른 태도와 어리석음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만약에 이 책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죽는 날까지 고집스럽게 고수했을 것인즉. '세대욕망'은 나는 물론이고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떤 부류인지를 정확하고 아프게 일깨워주었다.
(추신) 평소에 젊은 세대하고는 도무지 소통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60대 이상에게 일독을 권한다. 이 코너를 시작한지 12개월 만에 노골적으로 '권한다'고 표기한 첫 번째 책이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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