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김미옥] 침묵하는 아이

김미옥 수필가(대구보건대 교수)

한참을 그대로 앉은 채다. 한 시간은 족히 지났는데 간간이 얼굴을 쳐다보다가 외면하기를 반복한다. 낯빛을 붉혔다가 입을 오므린 채 미동도 없다. 서로 마주 앉아 있을 뿐이다. 여대생 마음을 열기 위해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에 빠진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대화의 물꼬를 터야 한다.

지금의 대학생은 예전과는 사뭇 다르다. 겉만 봐서는 크게 고민이 드러나지 않는다. 용돈을 얻기 위해 스스로 알아서 근로 학생이나 시간제 부업을 병행하는 일에도 적극적이다. 자신의 처지를 초라해 여기거나 위축되지도 않는다. 오히려 학우들과 내용을 공유하며 사회 준비를 위한 또 하나의 실전 학습으로 생각한다. 말끔한 외모에 자신감 있는 말투를 장착해서 자신만의 개성을 충분히 발산하고 있다.

가을 학기를 맞으면서 유독 말문을 닫은 S라는 학생이 눈에 띈다. 평소에는 착실히 학업하고 교우들 간에 사이도 돈독해 보였다. 큰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단지 워낙 말수가 적어서 먼저 입을 여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 그나마 봄 학기에는 발표 수업에도 참여하고 질문에도 답하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최근 강의실에서 S 학생을 자주 볼 수 없었다. 여러 번 전화를 걸고 문자를 보냈지만 묵묵부답이다. 속이 타던 중 만나자는 질문에 문자로 답이 왔다. 도대체 어떤 심정인지 꼭 들어야겠다. 금요일 3시, 연구실에 마주 보고 앉았다. 나는 한 시간째 혼잣말만 뱉고 있다. 혹여나 학우들과 문제가 있었는지, 학과 내 불만이나 학업의 어려움, 아니면 가족 중에 불편한 사람이 있는지 등 생각나는 것은 모조리 읊었다. S는 아무런 답이 없다. 나는 긴 시간 그녀의 표정과 입 모양을 살피느라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정적 속에 다시 말문을 튼 건 나였다. "S는 하고 싶은 말이 가슴에 가득 쌓여 있을 거 같아. 그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으려면 얼마나 힘들까? 괜찮아?" 나는 답답한 심정에 '내가 그녀라면'이라는 생각에서 떠오른 말을 건넸다. 잠시 S의 얼굴이 상기되더니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이후로 S는 마치 얼어붙은 강을 녹이듯 자신의 침묵을 눈물로 하염없이 녹이고 있었다. 어쩌면 내가 느끼는 답답함의 곱절로 S의 마음이 힘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뻗치면서 나는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단지 그녀 앞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월요일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이런 날이면 1교시 수업은 학생들의 출석이 더욱 신경 쓰인다. 강의실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S가 눈에 띈다. 제자리로 돌아왔다. 조용히 자리에 앉아 책을 펼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기다리기로 맘을 먹는다.

지금을 살아가는 젊은이들 가운데 침묵하는 아이는 S만이 아니다. 학생, 중장년, 노년까지 그중에 수많은 S가 존재할 터이다. 나 역시 때로 침묵 속에 갇혀 그들과 함께하고 있는지 모른다. 무엇이 이 시대의 젊은이들을 침묵하게 하는지 많은 생각이 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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