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당론 정해 놓고 상법 개정안 토론회 한다는 민주당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자신이 직접 참여하겠다며 '상법 개정'을 반대하는 재계(財界)에 공개 토론회를 제안했다. 민주당의 상법 개정 추진에 대해 재계는 물론 정부·여당까지 강력히 반발한 데 따른 것이다. 이 대표는 "타협할 수 있다"며 유연한 태도까지 보였다. 그러나 이 대표의 발언은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상법 개정안을 밀어붙이겠다는 민주당의 당론(黨論)과 어긋나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2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주식시장에서 경영지배권 남용을 근본적으로 막기 위해 이사회 충실의무(忠實義務) 대상을 주주로까지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 또 주주 권익을 보호하는 각종 입법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해내겠다"고 밝혔다. 또 "자본시장의 생명은 공정성, 예측 가능성, 합리성"이라며 "그런데 처벌도 되지 않는다. 힘만 세면 다 봐 준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의 이날 발언은 재계와 국민들을 어리둥절하게 한다. 공개 토론회를 하겠다면서, 토론에 선을 긋는 듯한 말을 한 것이다. 이 대표는 지난 22일 '상법 개정 토론'을 처음 언급하면서 "제가 직접 토론을 함께 참여해 보고, 또 정책위 의장 등을 포함한 쌍방(雙方)의 입장들을 다 취합해 본 다음에, 우리 당의 입장을 확실하게 정리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앞뒤가 맞지 않는 말과 태도다. 그러니 진정성(眞情性) 논란이 일 수밖에 없다.

민주당이 당론으로 채택한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 ▷대규모 상장사 감사위원 2명 이상 분리 선출 ▷집중투표제 ▷전자 주주총회 개최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대해 재계(財界)는 "섣부른 상법 개정은 이사에 대한 소송 남발(濫發)을 초래하고 해외 투기 자본의 경영권 공격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며 "국내 기업의 경쟁력을 크게 훼손시키는 '해외 투기 자본 먹튀 조장법'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가 명시되면 소액주주는 물론 사모펀드, 헤지펀드 등과 소송전(訴訟戰)이 잦아질 가능성이 많다. 독일, 영국, 일본 등 세계 주요 국가들은 이사 충실의무에 주주를 포함하지 않고 있다.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이 높아진다는 이유에서다. 민주당의 주장대로 일반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고, 공정한 자본시장을 만드는 조치는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교각살우(矯角殺牛)여서는 안 된다. 소액주주 보호는 기업 합병·분할과 관련한 핀셋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대신할 수 있다.

민주당은 엄중(嚴重)한 경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전쟁 위기와 끝 모를 경기 침체에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관세 폭탄'까지 예고돼 있다. 지금 우리 경제에 가장 필요한 것은 기업의 활력을 키우는 정책이다. 상법 개정안은 이런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민주당은 토론회를 요식행위(要式行爲)로 여겨서는 안 된다. 답을 정해 놓은 토론은 재계를 우롱(愚弄)하는 것이며, 국민을 기만(欺瞞)하는 것이다. 타협의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재계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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