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트럼프의 관세 폭탄, 어영부영할 시간이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내년 1월 20일 취임 당일, 중국에 60% 관세에다 10% 관세를 더 부과하고, 멕시코·캐나다에 25%씩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히면서 관세 폭탄을 우려한 전 세계에 비상이 걸렸다. 멕시코 페소와 캐나다 달러 가치가 급락하고, 유럽 자동차 관련 주가는 14조원이 증발했으며, 대상국들은 무역 전쟁엔 승자가 없다며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 무엇보다 멕시코 무역 장벽(障壁) 확대는 한국 기업에도 상당한 타격이 될 수 있다. 멕시코는 트럼프 1기 때부터 북미 시장 공략 교두보 역할을 해 현대차그룹 관련 차부품사 상당수가 가공·조립 공장을 두고 있다. 10월 기준 대구의 멕시코 수출 품목 중 자동차부품과 철강·금속 제품이 2·3위를 차지한 것도 이런 이유다. 중국발 저가 공세에 가뜩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포항 철강업계도 비상이다. 게다가 미국 수출길이 막힌 중국 제품이 밀려들 수 있어서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는 중국산 철강재를 수입·가공한 한국산 철강 제품에도 고율의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의 1차 관세 폭탄 대상국에는 빠졌지만 베트남도 주시해야 한다. 중국, 멕시코에 이어 지난해 기준 미국의 무역적자국 3위가 베트남이다. 트럼프 1기 당시 대중국 무역 장벽을 높이면서 베트남이 중국 기업들의 우회(迂廻) 수출길이 됐다. 지난해 베트남의 1천억달러 이상 대미 무역흑자 중 상당 부분은 중국 기업들의 수출 물량인 셈이다. 트럼프가 베트남에도 고율 관세를 적용하면 현지에 대거 진출한 한국 기업들의 피해도 우려스럽다.

다만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고스란히 적용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당장 미국에서 식료품·에너지 가격 등 인플레이션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지난해 멕시코와 캐나다가 미국에 수출한 농산물만 860억달러(약 120조원)에 이른다. 특히 미국의 원유 수입 중 60%는 캐나다, 11%는 멕시코에서 온다. 트럼프는 원유 수입에도 관세를 부과할 방침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양국에서 들어오는 자동차 부품만 970억달러(약 135조4천억원), 완성차는 400만 대가량에 이른다. 25% 관세를 부과하면 수입차 가격이 평균 3천달러(약 418만원) 정도 오른다. 가뜩이나 치솟는 물가에 불만을 토로(吐露)하는 미국인들이 이런 부담을 감수할지는 미지수다.

전기차와 2차전지 상황은 더 복잡하다. 친환경 정책에 반대하는 트럼프 당선과는 무관하게 미국 6개 주(州)가 내년부터 전기차 판매 의무화 정책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특히 캘리포니아주는 미국 전기차 판매량의 25% 정도를 차지하는 최대 시장이다. 캘리포니아는 연방정부와 별도로 독자적 대기오염 규정을 만들 수 있다. 이에 동참하는 주는 내후년 12개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다만 트럼프가 행정 명령으로 주 단위 정책을 무력화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어 자동차업계의 혼란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상황이 급박한 만큼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아직 당선인 신분으로 당장 액션이 취해지는 것은 아니고, 실제 관세 부과 등 정책 시행은 취임 후인 내년 1월 이후에 이뤄진다"는 산업부 관계자의 발언이 정부의 대응 지침은 아니기를 바란다. 아울러 정치 이슈를 두고 국론이 나뉠 여유가 없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내건 '먹사니즘'을 실천하려면 민생과 직결된 무역 전쟁에 야당도 힘을 보태야 한다. 대통령실이 27일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대응 방안을 논의했는데, 필요하다면 비상대응팀도 꾸려야 한다. 무역 전쟁이 벌어질 판인데, 공격 후 대응책을 마련하겠다는 안일(安逸)한 태도로는 승산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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