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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이창환] 주한미군 분담금, 통 크게 접근하자

이창환 국제팀장
이창환 국제팀장

최근 '미국 대선과 남북통일'과 관련한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석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압승을 거둔 미국 대선이 끝난 뒤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나이 지긋한 방청객들이 자리를 꽉 채웠다. 미국 대선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는 듯했다. '미국만 잘 살면 된다'는 심보를 보인 당선인 트럼프에 대해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참석자들이 가장 걱정하는 게 트럼프 당선에 따른 주한미군 주둔 비용 분담금 인상과 주한미군 철수 문제였다. 2만8천500명의 주한미군이 한국 안보에 결정적인 보호막 역할을 하는 상황에서 분담금 문제로 불거질 양국 간 갈등으로 미군이 철수하는 사달을 우려했다. 1950년 애치슨 선언으로 미국 방어선에서 한반도를 제외한 탓에 한국전쟁이 일어났다는 트라우마도 있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친분을 과시하는 트럼프를 믿을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도 깔려 있었다.

트럼트는 선거 기간 인터뷰에서 한국을 머니머신(현금인출기)이라고 불렀다. 주한미군 주둔 비용 분담금을 100억달러(2026년 약 10억8천만달러)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한국전쟁에서 한국을 구하고 수십 년 동안 보호했지만 아무것도 받아내지 못했다" "(한국은) 동맹은 맞지만 무역에서는 적"이라고 표현했다. 곧이곧대로 들으면 '당선되면 한국을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살 떨리는 협박성 발언으로 들린다.

한국과 미국은 지난 10월 2026~2030년 적용되는 제12차 한·미 방위비분담 특별협정(SMA)에 합의했다. 2026년 분담금은 1조5천192억원이고, 2027~2030년 물가상승률에 연동해 분담금이 인상되지만 상승률이 5%를 넘지 않도록 했다.

양국은 11차 SMA 기간이 1년 이상 남았지만 5개월 만에 일사천리로 12차 협정에 합의했다. 트럼프 당선을 대비하는 차원이었다. 그러나 미국에서 SMA는 행정 협정이다. 대통령이 협정을 파기하고 재협상을 요구할 수 있다. 12차 협정이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는 재협상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감정적으로 대응할 일이 아니다. 트럼프는 2020년 한국과 분담금 협상이 틀어지자 여러 차례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했다. 대미 무역 흑자를 내는 한국의 안보를 미국이 책임지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실제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는 2020년 166억달러, 2021년 227억달러, 2022년 280억달러, 지난해 역대 최대인 444억달러(60조원)를 기록했다.

미국 국방부 분석에 따르면 주한미군 주둔 총비용 중 미국이 78%, 한국이 22%를 담당하고 있다. 일본은 주일미군 주둔 비용의 75%를 내고 있다. 일본에 비해 한국이 특혜를 받고 있다는 게 트럼프의 인식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만지작거리는 주한미군 철수론은 거래 논리다. 분담금을 대폭 인상하기 위한 수단이다. 한국이 분담금 인상에 목숨 걸고 반대하면 트럼프는 주한미군 철수를 추진할 것이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고 상·하원까지 장악한 트럼프는 1기와 달리 충성파들로 둘러쌌다. 4년 전보다 더 강한 권력을 가졌다.

한국이 주한미군 철수를 막으려면 분담금을 더 내면 된다. 한국 경제 규모라면 트럼프가 제시할 액수를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 분담금을 인상하는 대신 무역에서 더 흑자를 내면 된다.

더 걱정이 되는 것은 이 과정에서 분열될 국내 여론이다. 진영 간 반미, 친미 프레임으로 분열과 갈등을 노출하면 분담금 인상보다 더 큰 생채기를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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