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여성 인구가 남성 인구를 추월하면서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직업군에서도 여성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경찰, 소방관, 군인은 물론 환경미화원, 도배사, 덤프트럭 기사 등 육체적인 부담이 큰 직업군에서도 여성들의 비율이 꾸준히 늘어나는 모양새다.
◆"여성이라서 못하는 건 없어요"
대구 달서구청은 지난 2008년부터 여성환경공무직을 채용하기 시작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여성환경공무직을 채용하는 것 자체가 양성평등 정책의 일환으로 여겨질 정도로 환경공무직은 '금녀의 직업'으로 통했다.
달서구청은 2008년 4명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18명의 여성환경공무직을 채용했다. 전체 181명 중 10%에 달하는 수치로 군위군을 제외한 대구시 8개 구·군 중 가장 높다.
지난 2014년부터 여성환경공무직으로 일하고 있는 허순난(51) 씨는 "업무 특성상 쓰레기봉투와 청소도구 등을 계속해서 들고 다녀야 하기 때문에 그동안 '여성에게는 어려운 일'이라는 시선이 분명 존재했다"며 "처음에는 '잘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도 많았지만 막상 일을 시작 해보니 여성이라는 이유로 힘든 점은 없었다. 오히려 더 꼼꼼하게 거리 청소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건설현장에서도 여성의 비율은 높아지고 있다. 건설근로자공제회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여성 건설기능인은 7만9천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36.2%(2만1천명)가 늘었다. 전체 건설기능인의 5.2%를 차지하는 숫자다.
4년째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도배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문수영(41) 씨는 직업을 구하기 위해 대구직업전문학교에 상담을 하러 갔다가 덜컥 도배일을 하게 됐다. 두려움도 컸지만, 그곳에 있던 여자 선생님이 '1년만 고생하면 된다'며 설득을 했고 지금은 어엿한 기술자가 돼 세 아이를 키우면서 일을 병행하고 있다.
그는 "남자가 여자보다 키나 팔이 길어 비교적 업무하기가 수월하긴 하지만 조금만 더 부지런히 움직인다면 다 극복할 수 있는 문제"라며 "과거에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현장의 텃세랄 것도 없다. 오히려 다른 현장에 가서 만나더라도 남자 반장님들이 먼저 아는 체를 해주시면 친하게 지내고 있다. 다만 대부분 현장에 여성화장실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금녀의 업종에 도전하는 여성들은 최근 온라인상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여성 덤프트럭 기사인 '덤순이'는 유튜브 구독자 20만명을 돌파했을 정도다. 화물업계 관계자는 "고속도로 휴게소를 가보면 확실히 여성 운전기사가 늘어났다는 게 체감이 된다"며 "일부 유튜버들의 영향으로 직업에 대한 인식도 바뀌는 것 같다"고 밝혔다.
◆남군 대비 여군 비율 10% 돌파...희망전역자도 많아
올해 군대에선 사상 처음으로 여군의 비율이 10%를 넘어섰다. 국방부가 국회 국방위원회 황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군대에는 여군 장교 7천700여 명, 여군 부사관 1만1천500여 명 등 총 1만9천200여 명의 여군이 복무 중인 것으로 집계됐다. 육군 1만2천400여 명, 공군 3천300여 명, 해군 2천700여 명, 해병대 800여 명 등으로 남군 대비 여군의 비율은 10.9%였다.
저출산 기조로 남성 현역병이 감소하자 여군 간부 선발 인원도 매년 오름세다. 국방부에 따르면 지난 2022년 여군 장교·부사관 선발인원은 각각 1천158명, 2천157명으로 2019년과 비교했을 때 18.8%, 40.8% 늘어난 수치다. 국방부는 오는 2027년까지 장교·부사관 중 여군 비율을 15.3%로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다만 희망전역을 하는 여군도 덩달아 많아지고 있다. 국방부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희망전역을 한 여군은 842명으로 ▷2019년 108명 ▷2020년 116명 ▷2021년 112명 ▷2022년 158명 ▷2023년 180명 ▷2024년 9월 기준 168명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전역 이유로 '잦은 부대 이동', '여성 시설 및 복지 제도 부족' 등을 꼽은 것으로 전해졌다.
3년째 군 생활을 하고 있는 여군 간부는 "제복을 입고 국가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어릴 적부터 군인을 꿈꿨고, 지금도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며 "전역을 하는 여군이 늘어나는 것은 단순히 성평등 문제라기보다 근무지가 일정치 않아 육아가 어렵다는 점과 각종 수당이 턱없이 낮다는 점 등 현실적인 문제의 영향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경찰·소방 남녀 구분 희미해져...고위직 비율은 아직
경찰과 소방직군에서도 여성 비율은 매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대구경찰청에 따르면 전체 경찰 인력 중 여성 비율은 ▷2020년 13.3%(789명) ▷2021년 14.1%(842명) ▷2022년 14.7%(876명) ▷2023년 15.4%(919명) ▷2024년 15.8%(955명)를 기록했다.
소방도 상황은 비슷하다. 대구소방안전본부에 따르면 전체 소방공무원 중 여성 비율은 ▷2020년 6.2%(165명) ▷2021년 7.1%(195명) ▷2022년 7.4%(211명) ▷2023년 7.8%(229명) ▷2024년 8.9%(268명)를 차지한다.
조직 내 여성의 비중이 커지면서 성별에 따른 보직 구분과 경계도 점차 사라지는 모양새다. 경찰의 경우 과거 소수의 여경들이 민원 또는 행정 업무에 치중돼 있었다면 최근에는 '금녀'의 구역으로 일컬어지던 형사나 정보관으로 활약하는 여경도 생겨나고 있다.
정보관으로 높은 성과를 거두고 있는 대구의 한 여경은 "업무 특성상 젊은 경찰은 물론 여경은 더더욱 없어 처음 업무를 맡게 됐을 땐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오히려 남들과 다른 차별점을 살린 게 좋은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며 "젊은 여경으로서 MZ세대의 관심사나 여성 복지 등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경찰과 소방 모두 조직 내 고위직 여성의 비율은 남성과 비교해 여전히 낮은 편이다. 대구경찰의 경우 전체 인력 중 여성의 비율이 약 15%를 웃돈 반면 경정 이상 직급 중 여성 비율은 약 8%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최근 5년간 총경 진급 대상자 23명 중 여경은 한 명도 없었다. 대구소방도 소방령 이상 직급 중 여성 비율은 약 7%에 머물러 있다.
지방 출신의 국내 첫 여성 경무관이었던 설용숙 전 대구시 자치경찰위원장은 "30여년 전 처음 경찰이 됐을 때만 하더라도 정복을 입고 있으면 사람들이 '와 여경이다'라며 신기하게 쳐다봤었다. 주요 부서도 쉽게 갈 수 없었던 분위기"라며 "여전히 고위직 비율은 낮지만, 주요 보직에 가는 여성 경정이 늘어나는 만큼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과거에는 다른 직군들도 '여성은 결혼을 하면 일을 그만둬야 한다'는 의식이 팽배했다. 하지만 이제는 성별에 따른 역할 구분이 없어진 세상"이라며 "지금 경찰조직도 남녀구분이 필요 없을 정도로 여경의 활약이 눈부신 상태다. 다른 직업군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댓글 많은 뉴스
이낙연 "민주당, 아무리 봐도 비정상…당대표 바꿔도 여러번 바꿨을 것"
'국민 2만명 모금 제작' 박정희 동상…경북도청 천년숲광장서 제막
위증 인정되나 위증교사는 인정 안 된다?…법조계 "2심 판단 받아봐야"
박지원 "특검은 '최고 통치권자' 김건희 여사가 결심해야 결정"
일반의로 돌아오는 사직 전공의들…의료 정상화 신호 vs 기형적 구조 확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