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김교영] '물컵' 엎는 일본

김교영 논설위원
김교영 논설위원

윤석열 정부는 한일 관계 복원에 공을 들였다. 한일 관계는 2018년 강제징용 일본 기업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 후 악화됐다. 지난해 3월 정부는 선제적인 강제징용 해법을 내놨다. 배상금을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대신 지급하는 '제3자 변제' 방식이다. 이를 계기로 양국 관계는 변곡점(變曲點)을 맞았다.

정부는 강제징용 해법을 반대하는 여론이 일자, '선공후득'(先供後得·먼저 베풀고 나중에 이득을 얻음) 논리를 폈다. 당시 박진 외교부 장관은 "물컵에 물이 절반 이상은 찼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에 따라서 그 물컵은 더 채워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지금 그 물컵은 말라 가고 있다. 재단은 한일 기업의 기부금으로 피해자 배상금을 지급할 방침이었다. 그러나 일본 전범 기업(戰犯企業)들은 외면했다.

일본 정부가 25일 '사도(佐渡)광산 추도식'이 한국 불참으로 '반쪽'으로 치러진 데 대해 유감(遺憾) 입장을 냈다. 사과해도 시원찮은데 섭섭하단다. 어이가 없다.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던 이쿠이나 정무관의 정부 대표 선정도 문제가 없었다고 했다. 이에 우리 외교부는 "일본 측 추도식에 불참하고 우리 자체 추도 행사를 개최한 것은 과거사에 대해 일본 측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우리 정부의 확고한 의지의 표현"이라고 반박했다.

사도광산은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 노역의 현장이다. 일본 정부는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登載)를 위해 한국의 동의가 필요했다. 일본은 '조선인 노동자 전시물 설치'와 '희생자 추도식'을 공언했고, 한국 정부는 이를 믿고 찬성했다. 세계유산 등재 후 일본은 태도를 바꿨다. 전시 공간엔 '강제 노역' 표현이 없었다. 피해자 유족들의 경비는 한국 정부가 부담해야 했다. 일본은 2015년 군함도 세계유산 등재 때도 비슷한 행태를 보였다.

내년은 한일 수교(修交) 60주년이다. 우리 정부는 정치적 부담을 안고 '과거사 문제'에서 일본을 배려했다. 그러나 일본은 뒤통수를 때렸다. 물컵을 채우기는커녕 엎고 있다. 이러면 미래 지향적인 한일 관계를 기대할 수 없다. 뒤통수를 맞으면, 꿀밤이라도 줘야 한다.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안다."(영화 '부당거래'의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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