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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도는 쌀, 커지는 재정 부담] "식량 안보 지키며, 품질 향상·재배 전환 등 미래 투자도"

정부의 쌀 재배면적 축소 정책에 농민들 생산기반 위협 반발
풀리지 않는 양곡법 개정 갈등, 품종 개발‧작물 전환 근본 대책 필요
우리 쌀 경쟁력 강화와 곡물 자원 다변화 초점 맞춰야

20일 서울 중구 숭례문 앞 세종대로에서 열린 전국농민대회 및 윤석열 정권 퇴진 2차 총궐기에서 한 농민이 손팻말과 벼를 들고 있다. 연합뉴스
20일 서울 중구 숭례문 앞 세종대로에서 열린 전국농민대회 및 윤석열 정권 퇴진 2차 총궐기에서 한 농민이 손팻말과 벼를 들고 있다. 연합뉴스

남아도는 쌀로 해마다 공공 매입 비용 부담이 커지고 있다. 이에 정부는 쌀 재배면적 축소와 다른 작물 전환 등에 나서고 있지만, 쌀값이 떨어지고 고령화 등으로 농민들은 쌀 농사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기후변화로 재배 여건도 나빠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가격과 생산량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식량 안보의 확보와 함께 미래 농업 경쟁력을 높여야 할 때라고 지적한다.

경북 의성군 한 농가에 쌓여 있는 800kg 벼 포대를 농민이 살펴보고 있다. 의성군 제공
경북 의성군 한 농가에 쌓여 있는 800kg 벼 포대를 농민이 살펴보고 있다. 의성군 제공

◆"재배면적 축소" VS "농업 기반 위협"

우리 쌀은 식량 안보와 재정 부담 사이에서 진퇴양난에 빠졌다. 과잉 공급 구조를 벗어나고자 정부는 재배 면적을 감축할 계획이지만, 현장의 농민들은 미래 식량 안보를 우려하며 반발하고 있다.

통계청의 2024년 쌀 생산량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쌀 생산량은 358만5천t으로 지난해보다 3.2% 줄었다. 같은 기간 벼 재배면적도 70만8천→69만7천713㏊로 1.5% 축소됐다.

하지만 쌀 가격은 정부 목표인 80㎏ 기준 20만 원에 못 미치고 있다. 지난 5일 기준 산지 쌀값은 18만2천700원으로 전년도 같은 기간(20만1천384원)보다 9.3%이나 떨어졌다. 생산량보다 더 큰 폭으로 수요가 줄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부는 재배면적을 더 줄일 방침이다. 적정 생산을 유도하고자 내년 벼 재배면적을 8만㏊ 감축하겠다고 밝힌 것. 지난해 대비 올해 줄어든 1만㏊와 비교하면, 8배 큰 감소다.

농민들은 재배면적 감소 이후 콩·밀 등으로 전환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작물 생산 기반 자체가 위협당할 수 있다며 비판한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은 "농민의 생산 기반인 농업을 파괴하고 식량 자급의 위기를 만드는 벼 재배면적 감축 시도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현장에선 당장 작물 전환이 어렵다는 분위기다. 경북 의성군의 황보경(70) 미소진품 회장은 "현장에선 쌀 농사가 한계에 부딪혔다. 농민들은 농사일을 자체를 그만두려 한다"며 "장비와 설비를 새롭게 갖춰야 해 다른 작물 전환이 쉽지 않다. 재배법도 다시 배워야 한다. 식량 안보와 농업 기반 유지 등 장기적인 안목으로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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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고령화 등으로 농민이 줄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최근 10년간(2014~2023년) 전국의 농가 인구는 275만1천 명에서 208만8천 명으로 24% 감소했다. 같은 기간 경북은 44만6천 명에서 33만 명으로 26% 줄었다.

박병진 의성군 진쌀단지 연합회 회장은 "2만 평 농사를 지으려면 기계 설비 등 자금만 5억 원 이상이 들어간다. 여기서 보통 평균 쌀 40t 정도를 생산하는데 매출이 1억 원 정도이다. 비룟값과 유류비 등 비용을 빼면 순이익은 3천만 원이 채 되지 않는다. 이대로라면 농가 인구가 급격하게 줄어 농업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했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3일 오후 충북 청주시 한 벼 베기 수확 현장을 찾아 벼 작황 점검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3일 오후 충북 청주시 한 벼 베기 수확 현장을 찾아 벼 작황 점검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북 의성군 공공비축벼 검사장에 800kg 벼 포대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가운데 검사원들이 직접 벼를 살펴보며 검사하고 있다. 의성군 제공
경북 의성군 공공비축벼 검사장에 800kg 벼 포대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가운데 검사원들이 직접 벼를 살펴보며 검사하고 있다. 의성군 제공

◆양곡법 개정 갈등…"품종 개발‧작물 전환 등 근본 대책"

매년 쌀 과잉생산으로 정부의 재정부담이 커지는 가운데 정치권에선 '양곡관리법(이하 양곡법) 개정안'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제21대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임기 첫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폐지된 바 있지만 야당에선 당론으로 계속 추진해나갈 방침이다.

야당이 주장하는 양곡법 개정안은 '초과 생산량이 3~5% 이상'이거나 '가격이 5~8% 이상 하락'하면 정부가 의무 매입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쌀값 안정은 위태로운 국제 정세 속 식량 안보의 기본이다. 지난달 산지 쌀값은 45년 만에 최대 폭락을 기록한 2022년 평균 가격보다 더 낮다. 늦기 전에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양곡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오히려 쌀 매입·보관 등 비축 비용으로 더 많은 예산이 들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양곡법 개정안 통과 시 쌀 매입·보관비로 2030년 연간 3조986억원이 들 것을 추산하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쌀 의무 매입으로 2030년까지 연평균 43만t의 쌀이 초과 생산돼 오히려 쌀값은 더 하락할 것으로 예측했다.

의무 매입으로 쌀 품질 경쟁력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예산이 쌀에 집중된 탓에 다른 분야에 대한 투자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다. 다른 작물(밀, 콩) 재배 확대 정책 등과도 상충할 것으로 보고 있다.

농민들도 양곡법 개정안을 두고 의견이 나뉜다. 식량 안보를 위해 농업 생산 기반은 지켜야 한다는 데 공감하지만 의무 매입만으로 현재의 위기를 넘기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나아가 근본적인 농업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식량과 사료를 포함한 우리나라 곡물자급률은 20%에 불과하다. 쌀 생산 기반을 탄탄하게 다지되, 경쟁력 있는 품종을 개발하고 다른 곡물 자원의 재배를 확대하는 등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경북 의성군 공공비축벼 검사장에 800kg 벼 포대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가운데 검사원들이 직접 벼를 살펴보며 검사하고 있다. 의성군 제공
경북 의성군 공공비축벼 검사장에 800kg 벼 포대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가운데 검사원들이 직접 벼를 살펴보며 검사하고 있다. 의성군 제공

◆우리 쌀의 미래는 "경쟁력 강화‧곡물 다변화"

정부와 전문가, 농민들은 식량 안보 차원에서 우리 쌀을 지켜야 한다는 점에선 입을 모았다. 하지만 과잉 생산 구조는 풀어야 할 과제로 지목하고 있다. 정부의 의무 매입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경쟁력을 높이는 품질 개선, 곡물 자원 편향 극복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올해 가격이 치솟아 '쌀 파동'을 겪은 일본이 반면교사다. 일본의 전국농업협동조합중앙회 등이 지난 9월 제시한 2024년산 쌀의 산지 금액은 1등품 기준 60㎏(현미)에 1만6천~1만7천엔(14만~15만 원) 선이었다. 지난해 같은 시기보다 20~40% 오른 가격이다.

이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으로 밀가루 가격이 급등하면서 쌀 소비가 늘어난 가운데 폭염으로 쌀 생육이 저하되고 쌀 생산 농가가 줄면서 생산량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재배면적 축소에 불안한 국제 정세, 기후변화 등이 더해진 것이다.

이에 국내 농민단체는 "우리나라도 일정 수준의 쌀 자급률 유지가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기후변화에 대비한 품종 개발과 재배법 보급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 쌀 재배면적을 급격하게 줄이는 대신 콩과 밀 등 다른 곡물의 자급률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 예산을 효율적으로 분산해 미래 농업에 투자하는 정책이 요구된다.

경상북도는경북농업기술원과 함께 2007년부터 지역 풍토에 맞는 쌀 품종 개발‧보급하고 있다. 지난 2018년 기존 품종보다 수확기가 빠르고 재배 안정성 높은 '다솜쌀' 품종을 자체 개발했다. 현재 포항에 특화 단지를 조성해 이를 보급 중이다.

송영운 경북농업기술원 작물연구과 연구원은 "벼 재배면적을 줄이는 정책에는 한계가 있다. 또 식량 안보를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면적은 유지해야 한다"며 "이제는 생산량에만 초점을 맞춘 다수확 품종보다 지역 땅과 기후변화에 대응한 질 좋은 품종 재배가 필요하다. 생산량을 늘리지 않으면서 밥맛이 좋은 신품종 개발에 노력 중"이라고 했다.

다른 작물로의 재배 전환을 위한 제도도 요구하고 있다. 허일용 한국쌀전업농 경북연합회장은 "쌀뿐만 아닌 감자 등 다른 작물들도 정부 수매 품목에 포함하는 방안을 경북도와 논의하고 있다. 안정적 판로를 확보해야 농민들도 다른 작물로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박준기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쌀에만 국한된 비축‧관리 예산을 다른 작물 재배와 미래 농업인 지원 등에 투자한다면 전반적인 곡물 자급률이 높아지고 새로운 시장도 만들어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기획탐사팀

경북 의성군 공공비축벼 검사장에 800kg 벼 포대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가운데 검사원들이 직접 벼를 살펴보며 검사하고 있다. 의성군 제공
경북 의성군 공공비축벼 검사장에 800kg 벼 포대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가운데 검사원들이 직접 벼를 살펴보며 검사하고 있다. 의성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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