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더불어민주당이 증액 없이 감액만 반영한 예산안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단독 처리했다. 677조4천억원 규모의 정부 원안(原案)에서 4조1천억원 삭감됐다. 감액 예산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정부는 감액 예산만으로 내년 나라 살림을 꾸려가야 한다. 법률안과 달리 예산안은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없다. 헌법상 증액은 정부 동의가 필요하지만 감액은 동의 없이 가능하다. 대기업마저 위기설이 나돌고 민생 경제 전반에 경고등이 들어온 상황에서 거대 야당이 정치 공세를 위해 예산안마저 볼모로 삼자 거센 비판이 일고 있다. 심지어 야당은 감액 예산안 통과를 위해 소관 상임위에서 여야 합의로 증액한 예산마저 걷어차는 행태를 보였다. 정부 여당 압박이 민생보다 우선이라는 말인가.
특히 정부 예비비는 철퇴를 맞았다. 4조8천억원 규모에서 2조4천억원이나 감액됐다. 재해·재난 등 비상사태 발생 시 즉시 대응이 힘들어진다. 검·경, 감사원 등의 특수활동비, 특정업무경비도 전액 삭감됐다. 마약·딥페이크·사기 등 신종 민생침해범죄 수사에 제동(制動)이 걸릴 수밖에 없다. 미래 먹거리, 첨단산업 예산들도 줄줄이 삭감됐다. '대왕고래 프로젝트'(동해 석유·가스전 개발) 예산은 505억원에서 497억원 삭감, 민관 합작 선진 원자로 수출 기반 구축 예산도 70억원에서 63억원 감액됐다.
상임위에서 증액된 예산 역시 철퇴를 맞았다. 야당은 정부 동의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민생과 국가산업 경쟁력 강화, 지역 발전 관련 예산의 증액마저 거부했다. 건강보험 가입 지원과 코로나19 예방 접종비, 신재생에너지 금융 지원, 소상공인 성장 지원, 인공지능(AI) 연구용 컴퓨팅 지원 연구개발(R&D) 프로젝트, 딥페이크 성범죄 대응 등이 대표적이다. 민주당이 중점 추진해 증액한 예산마저 사라졌다. 지역화폐와 고교 무상교육 국비 지원 등은 민주당이 주도해 증액해 놓고는 예산안 삭감 폭주를 위해 포기해 버렸다.
헌정사상 초유(初有)의 사태가 벌어졌는데 여야는 서로 네 탓만 하고 있다. 양보하지 않으면 추가 협상도 없다며 으름장만 놓고 있다. 다행히 우원식 국회의장이 2일 감액 예산안의 본회의 상정(上程)을 보류하고,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10일까지 여야 합의로 예산안을 마련하라고 촉구하면서 대화의 불씨는 남겨 두었다. 우 의장은 "민생과 경제를 안정시키고 경제적 약자와 취약계층이 희망을 품는 예산을 만들 책임이 국회에 있다"고 했다. 정부 여당과 거대 야당 모두 전향적(前向的) 자세로 대화에 나서야 한다. 정부는 필요 예산에 대한 설득에 전력을 다해야 하고, 야당은 민생을 외면한 정쟁의 결과를 두려워해야 한다. 나라 살림살이를 두고 힘겨루기를 해선 안 된다. 국가적 위기 상황을 외면하는 정치세력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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