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식객 이춘호의 미각기행] <25>황태와 덕장 이야기

백두대간 혹한의 기운 먹고 자라는 황태
전국 덕장 200곳…용대리권·대관령면 집중
10월말부터 덕목 박기 시동…까다로운 건조 작업 끝에 황금빛으로 변신

첫 폭설급 습설(濕雪)이 중부권을 강타했다. 맵찬 설한풍이 내설악 기슭도 핥고 지나갈 채비를 차린다. 황태꾼들은 걱정한다. 봄 같은 겨울 때문이다. 그럼 젖은 눈이 내습하는데 그러면 황태특수는 언감생심인 탓이다.

아무튼 앙칼진 겨울바람을 애타게 기다리는 북방형 수목이 있다. 바로 자작나무이다. 이 나무는 황태와 밀당관계에 있다. 인제군 원대리는 '한국 자작나무 1번지'. 국유림 138만㎡에 70여만 그루가 식재돼 있다. 74년부터 20년 이상 심어온 건데 6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그 언저리는 화전민의 차지였다.

자작나무가 잎을 다 떨구기 시작하면 은백색 얇은 껍질은 더 짙은 윤기를 발한다. 그걸 신호탄으로 인제군 북면 용대리 덕장은 본격적으로 황태를 향한 어번기(魚繁期)를 맞게 된다.

한때 콩나물국, 대구탕, 복어탕 등과 함께 해장국 왕좌를 차지했던
한때 콩나물국, 대구탕, 복어탕 등과 함께 해장국 왕좌를 차지했던 '황태국'. 주위를 돌아보니 그 많던 황태국 전문점이 많이도 사라진 듯하다.

◆해장국 그리고 황태국

한때 콩나물국, 대구탕, 복어탕 등과 함께 해장국 왕좌를 차지했던 '황태국'. 주위를 돌아보니 그 많던 황태국 전문점이 많이도 사라진 듯하다. 15년 역사의 법원 옆 '황태성'도 문을 닫고 말았다. 상인동의 '동해황태탕', 그리고 수성구 중동 '대관령 황태탕'이 지역 황태 마니아를 위로한다.

백두대간 혹한의 기운을 고스란히 품고 와 기꺼이 육수와 뒹굴며 야물게 붙들고 있던 폭실폭실한 살점을 물에 불린 딱종이처럼 피워내는 게 황태의 짠한 운명이다. 황태는 찬바람이 명태의 몸 안에 그려놓은 독특한 '필체'라 할 수 있다. 물렁한 살점이 꾸덕한 살점으로 변하는 동안 숱한 동장군이 내습한다. 그렇게 황태는 구룡포 과메기처럼 추위를 먹고 자란다.

명태가 황태로 거듭나려고 하면 산간 고지 덕장에서 길들여져야 된다. 사진은 용대3리 눈을 맞고 도열해 있는 덕장의 전경.
명태가 황태로 거듭나려고 하면 산간 고지 덕장에서 길들여져야 된다. 사진은 용대3리 눈을 맞고 도열해 있는 덕장의 전경.

◆명태에서 황태로

본명은 명태. 본적은 고성군 거진항. 말리는 상태에 따라 잡히는 시기, 잡는 방법, 가공방법에 따라 이름도 제각각. 봄에 잡으면 춘태(春太), 가을에는 추태(秋太), 겨울은 동태(冬太), 안 얼린 건 생태(生太), 얼린 건 동태(凍太), 그물로 잡아 올리면 망태(網太), 원양어선에서 잡은 것은 원양태(遠洋太), 근해에서 잡은 것은 지방태(地方太), 강원도에서 나는 것은 강태(江太), 낚시로 잡은 것은 조태(釣太). 강산에가 부른 노래 '명태'가 명태 족보를 꽤 잘 정리해놓았다.

황태 덕장 허브이자 '황태마을'로 유명한 북면 용대3리. 이곳 한 포인트에 전대미문의 괴상한 골바람이 이 무렵 등장한다. 진부령과 미시령이 갈라지는 용바위와 매바위 사이. 특히 매바위 옆 80여m 인공폭포 언저리에 자리 잡은 황태 전문식당인 '바람도리'는 골바람의 중심부다. 이 식당은 대구 출신의 여사장이 2007년 황태삼합과 황태강정을 만들면서 유명해졌다. 매년 겨울이면 가게 옆에 있는 덕장에 10만 마리의 명태를 건다.

골 안으로 들어온 바람은 두 바위를 여러 번 휘감다가 다시 들어온 골로 빠져나간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골을 '바람돌이 골짜기'로 부른다. 늦가을부터 초겨울 사이 남풍에서 북서풍으로 바뀌는 변화난측한 골바람 때문에 주민들은 잠을 설친다. 1년에 두 번 풍향이 크게 바뀐다. 4월과 11월이다. 하절기에는 남풍, 동절기에는 북서풍이다. 동절기에 남풍이 불면 그해 황태 농사는 끝장난다.

용대3리 황태 전문식당가 전경.
용대3리 황태 전문식당가 전경.

◆용대리 황태국 식당가

설악산도 내설악과 외설악으로 나뉜다. 진부령~미시령~한계령~대관령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을 기준으로 그 동쪽은 외설악, 서쪽은 내설악이다. 덕장은 반드시 내설악에 설치해야 된다. 현재 용대3리에만 30여 개 황태 전문점이 있다. 설악로 용대1리~용대3리 주변까지 합치면 얼추 50여 군데.

백종원 씨가 황태구이의 원조집인 '용바위식당'을 방문했다. 소문 때문에 거리로만 손님이 몰린 건 옥에 티였다. 황태국은 용바위보다 근처 '용대진부령식당'이 더 나아 보였다. 나도 몇 년 전 황태의 산증인 격인 김승호 사장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용대리 덕장의 산증인 중 한 명이다. 인제천 계곡물에서 직접 명태 내장을 빼서 세척 한 뒤 덕장에 걸던 그 시절을 누구보다 똑똑히 기억한다.

토박이들은 종가 동치미처럼 초간단 황태국을 선호한다. 별다른 재료를 넣지 않는다. 아무런 조미료도 들어가지 않은 황태국. 평소 먹던 해장국용 북엇국과는 질감이 확 다르다.

◆수입산 명태의 운명

아쉬운 건 국내산 명태의 씨가 말라버렸다는 사실.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 많던 명태는 다 어디로 사라져버렸을까. 30년 전까지 동해에서 연간 7만t 넘게 잡혔다. 하지만 명태는 바닥나고 말았다. 급기야 러시아나 일본에서 잡아 오는 등 '원양태'가 연간 24만8천t에 달한다.

동해안 명태는 2000년을 기점으로 씨알이 말라버린다. 그런데 희소식도 들렸다.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해안로 국립수산과학원 소속 동해수산연구소에서 세계 최초로 명태 완전양식 기술 개발에 성공한 것. 정부가 명태 회생을 위해 거금의 현상금까지 내밀었다. 천신만고 끝에 자연산 명태 암컷 1마리를 구할 수 있었다. 거기서 나온 수정란 53만 개를 확보해 1세대 인공종자 생산에 성공했고 길이 20㎝까지 키운 1만5천 마리를 강원도 고성 앞바다에 방류했다. 고성은 한국 명태 1번지기 때문이다.

예천, 상주 경북 북부권에서도 황태 덕장에 도전하고 있지만 아직 대세는 강원도 동해안권, 그것도 설악산과 오대산권에 집중된다. 영하 10℃를 기준으로 추웠다 풀렸다를 3개월 정도를 반복해야 되는 제약 조건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탓이다.

◆황태 덕장 사용법

황태 덕장을 막무가내로 지어선 안 된다. 덕장 컨트롤이 정말 까다롭기 때문이다. 날씨와 지형조건이 절묘하게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 절대 막바로 들이치는 설한풍에는 효과를 거둘 수 없다. 바람이 강했다가 약했다를 반복하고 삼한사온까지 유지해야 된다. 얼었다 녹기를 반복 못하고 그냥 마르기만 하면 북어급으로 추락한다. 황태와 북어 가격차는 크다. 황태가 50% 더 비싸다.

설악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전인 60년대만 해도 인제 내린천 주변 계곡, 현재 용대리 산촌이 황태 덕장으로 더없이 좋았다. 지척의 동해안에서 잡힌 명태를 갖고 와 덕장에 널기 전 내장을 제거하고 계곡물을 이용해 세척도 했다. 이젠 법적으로 금지돼 있다. 지금은 속초, 강릉, 정동진 등에 있는 수산물가공공장에서 냉동 명태를 갈무리한 걸 갖고 와 덕장에 건다.

건조 기일에 따라 이름도 달라진다. 1주일 정도 건조하면 '코다리', 한 달 정도 말리면 '북어', 세달 정도 말려야 비로소 '황태'가 된다. 그 과정에서 너무 얼어버리면 '백태', 너무 말라 딱딱해져버리면 '흑태·먹태'가 된다. 바닥에 떨어진 건 '낙태'가 된다. 시중에 유통되는 상당수 생선포류는 FD(Foison Drying)방식, 즉 기계로 동결건조한 것이다.

덕장에서 걷어낸 황태는 소비자에게 맞는 스타일로 갈무리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사진은 황태 끝손질 중인 주민들.
덕장에서 걷어낸 황태는 소비자에게 맞는 스타일로 갈무리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사진은 황태 끝손질 중인 주민들.

◆탈 강원도 덕장

현재 전국에는 황태를 생산하는 덕장이 200곳 이상이다. 메카는 내설악 용대리권과 대관령면이다. 대관령권은 1957년, 용대리권은 1962년부터 시작되었다. 여기서 국내 생산량의 98%를 독점하고 있다. 그런데 2010년을 즈음해 강원도 고성, 강릉, 횡성, 심지어 경기도 가평, 예천 소백산 자락, 롯데마트까지 상주에 전용 덕장을 마련했다.

용대리와 작별하고 예천의 소백산 자락인 저수령에 덕장을 차린 사람이 있다. 소백산 용두황태 대표 최인수 씨. 그는 원래 동원산업에 근무하면서 명태잡이배를 오래 탔다.

덕장 한 칸 크기는 가로 3m, 세로 2.6m, 높이 3.5m. 평균 1천여 마리를 걸 수 있다. 최근 들어선 새롭게 수요가 일어나고 있는 명태 대가리까지 말린다. 명태 대가리는 육수용이다.

덕장은 12월 20일 무렵부터 가동된다. 이에 앞서 덕목 박는 작업이 10월말부터 한 달간 진행된다. 덕목용 나무는 반드시 낙엽송이라야 된다. 산림조합 등을 통해 10여년치를 구입해놓는다. 덕목작업도 꽤 까다롭다. 수평이 생명이다. 자칫 엄청난 명태 무게로 인해 덕장이 무너질 수 있다. 명태 한 마리 무게는 약 500g. 덕장에 명태를 거는 작업은 열흘 정도 걸린다. 일당 일꾼 50여 명이 붙어야 된다. 덕장에 명태를 걸고 난 뒤부터 더 까다로운 일이 생긴다. 하늘만 쳐다보며 산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비상이다. 눈도 두 종류가 있다. 건설과 습설이다. 건설은 바람에 날아가 버리지만 습설은 치명적이다. 아가미 쪽으로 물기가 스며들어 가버리면 부패될 수 있다. 문제가 될 것 같으면 커버로 덮는다. TV 기상정보로는 부족하다. 지역별 세부 기상정보를 체크해야 된다. 3월말쯤이면 황태를 덕장에서 걷어낸다. 1주일간 덕목을 해체한다. 명태는 황태로 변하는 순간 20% 정도 홀쭉해진다. 이후 냉동창고로 들어가 주문량에 따라 소비자용 황태로 재가공된다. 황태는 영하 25℃ 냉동창고에 있으면 3년 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 가공된 황태는 1년 내 먹어야 된다. 용대리 황태축제는 매년 5월 초‧중순에 열린다. jebo@imaeil.com

황태는 강원도 내설악 설한풍을 먹고 12월부터 이듬해 3~4월까지 녹았다가 얼었다를 반복하는 과정을 통해 어렵사리 탄생하게 된다.
황태는 강원도 내설악 설한풍을 먹고 12월부터 이듬해 3~4월까지 녹았다가 얼었다를 반복하는 과정을 통해 어렵사리 탄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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