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TV] 삭힐수록 익을수록 깊어지는 곰삭은 맛

KBS1 '한국인의 밥상' 12월 5일 오후 7시 40분

날씨가 쌀쌀해지면 본능적으로 기억나는 음식들이 있다. 얼어붙은 땅속에서 시원하게 삭은 김장 김치와 뚝배기에서 보글보글 끓는 구수한 청국장, 짭조름하면서도 감칠맛 도는 젓갈 등 모두 추운 겨울을 버티게 해주던 곰삭은 음식들이다. 삭힐수록 익을수록 깊어지는 곰삭은 맛은 그리운 겨울의 맛이다.

막힘없이 탁 트인 너른 바다를 품고 있는 경북 영덕은 동시에 백두대간의 능선이 끝없이 이어지는 산간 지역이다. 바닷가에서 산속으로 6Km를 들어가는 금곡리에 사는 김위자 씨(61세) 천희득 씨(60세) 부부는 겨울이 다가오자 고랭지 배추를 수확해 김장하느라 분주하다. 친정 부모님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친정집을 지키는 맏언니네의 곰삭은 겨울 음식 하나하나에 남다른 사연들이 숨어있다.

예전에는 방문 앞까지 눈이 차오르던 마을이라 겨울이면 고립되기 일쑤였다. 그 시절, 형제들에게는 김치 속에 든 생선 한 토막이 유일한 별미로 먼저 집으려는 눈치 싸움이 치열했었다. 약초꾼이었던 아버지는 넉넉하게 생선을 사 올 여유가 없었다. 그래도 그 길고 혹독했던 겨울을 무사히 날 수 있었던 힘은 형제들의 우애와 곰삭은 맛이었다.

그 시절에 먹던 삭힌 깻잎김치를 아직도 이어가고 있는 김위자 씨. 여름에 따서 잘 삭힌 깻잎에 전갱이 액젓으로 간을 하다 보면 여동생은 저절로 가슴이 먹먹해진다. 집안의 맏이였던 언니가 중학교만 졸업한 뒤 공장에 취직해 고등학교 대학교 등록금을 대주던 기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 시절이라고 맏이가 다 그렇게 산 건 아닌데, 당연한 내 일이었다고 담담하게 말하는 김위자 씨. 환갑을 넘긴 지금도 동생들 먹을거리를 챙기느라 바쁘게 몸을 움직이는 언니의 곰삭은 밥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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