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촉발한 비상계엄 사태로 정국이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야권은 즉각 계엄의 위헌·위법성을 지적하며 윤 대통령 사퇴 촉구와 함께 탄핵 추진의 닻을 올렸다. 여당은 친한(한동훈)계를 위주로 윤 대통령을 향한 책임론이 분출되고 있지만 친윤(윤석열)계의 반발로 내홍도 우려된다.
여당 일부 의원들의 동조로 '탄핵 열차'가 실제 가동될 경우 박근혜 전 대통령 당시와 마찬가지로 조기 대선이 치러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보수 정가에서는 탄핵이 반복되면 정권 연장이 물거품이 되는 만큼 윤 대통령의 사의 표명과 임기 단축 중임제 개헌 제안 등으로 탈출구를 모색, 보수가 결집해 탄핵 재연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다.
◆6시간 만에 막 내린 비상계엄
윤 대통령이 3일 늦은 밤 급작스럽게 선포한 비상계엄은 국회가 4일 새벽 해제 결의안을 가결하고 뒤이은 국무회의 의결로 약 6시간 만에 막을 내렸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 과정에서 야당의 잇따른 국무위원·검사 탄핵과 내년도 예산안 강행 처리 등을 계엄 근거로 제시했다. 그는 "국가의 본질적 기능을 마비시키고 자유민주주의 헌정 질서를 붕괴시키려는 반국가 세력에 맞서 결연한 구국의 의지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패악질을 일삼은 망국의 원흉 반국가 세력을 반드시 철결하겠다"는 등 격정도 토로했다. 그간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겠다고 밝혀왔던 확신, 국회에서 절대적인 의석 열세를 극복하기 어려운 상황 등에 따라 충격 요법을 벌인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맞닥뜨리게 될 후폭풍이 간단치 않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정치 초보인 윤 대통령이 야당의 무차별 공세에 인내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무모한 계엄 선포로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고 했다.
당장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개혁신당 등 야 6당은 4일 오후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제출했다. 이들은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이 계엄에 필요한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것은 물론 헌법과 법률을 위반해 국민주권주의, 권력분립의 원칙 등을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역풍을 우려해 탄핵 공식화에 선을 그어왔던 민주당도 입장을 바꿔 공세에 앞장섰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이날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비상시국대회에서 "국민이 준 권력으로 대통령, 그리고 그의 아내를 위한 친위 쿠데타를 했다"며 "위대한 우리 국민과 함께 싸우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 등은 5일 탄핵소추안이 본회의에 보고되도록 한 뒤 이르면 6일 이를 표결할 방침이다. 탄핵소추안은 본회의에 보고된 뒤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에 표결해야 한다. 대통령 탄핵소추는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의 발의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가결된다.
탄핵소추안 발의에는 국민의힘 의원을 제외한 야 6당 의원 190명 전원과 무소속 김종민 의원이 참여했다. 민주당 출신인 우원식 국회의장도 이들과 뜻을 같이할 공산이 크다. 재적의원 300명 중 200명이 찬성해야 하는데, 국민의힘 의원 108명 중 8명의 의원만 찬성하면 탄핵소추안은 가결된다.
실제 가결되면 윤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결정이 나올 때까지 직무가 정지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12월 9일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이후 2017년 3월 10일 헌재가 탄핵을 인용할 때까지 3개월간 직무가 정지된 바 있다.
헌재 심판 결과에 따라 내년 봄 조기 대선이 치러질 수도 있다.
◆與, "탄핵 사태 재발은 안 돼"
관건은 국민의힘 의원들의 선택이다. 한동훈 대표는 전날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15분 만에 "잘못된 것"이라고 입장문을 냈고 친한계 의원 18명은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 표결에 참여했다.
한 대표는 이날 비공개 최고위원회의, 비상의원총회를 개최한 뒤 기자들에게 "내각 총사퇴와 국방장관 해임 제안을 했고 대체로 의견이 모아졌다"면서도 "윤 대통령 탈당 요구에 대해선 여러 의견이 있어 계속 의견을 듣기로 했다"고 전했다.
친한계 일각에서는 탄핵에 대한 논의를 하지 않을 수 없다는 반응도 나온다.
하지만 친윤계 등 여당 의원 대다수는 박근혜 전 대통령 당시를 거론하며 야당의 탄핵 움직임에 동조해서는 안 된다는 분위기가 상당하다. 만약 헌재에서 탄핵이 인용되고 조기 대선이 치러지면 정권 재창출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탄핵소추안 본회의 의결을 앞두고 여권의 계파 갈등이 첨예해질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자칫 당내 이탈 표 발생으로 탄핵안이 통과될 경우 박 전 대통령 탄핵 당시처럼 여권 분열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에 여권 내부에선 탄핵을 결사 저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쇄도하고 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이날 페이스북에 "두 번 다시 박근혜 정권처럼 헌정이 중단되는 탄핵 사태가 재발되어선 안 된다"면서 "국민의힘은 당력을 분산시키지 말고 일치단결해 탄핵은 막고, 야당과 협상해 거국내각 구성과 대통령 임기를 단축하는 중임제 개헌안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정의를 바라는 전국 교수 모임은 이날 보도 자료를 통해 "국회 조기 해산, 정치 대개혁을 담은 개헌안 마련 및 국민투표, 대선·총선 동시 실시 등 나라를 다시 만드는 재조산하(再造山河)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면서 여야 동시 책임론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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