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비상계엄'이란 말을 듣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전면전이 벌어진 것도 아니고 국가적 비상사태가 발생한 것도 아닌데 '비상계엄'이라니. 아무리 이런저런 핑계를 대도 집권자가 자신의 정치적 입지 강화를 위해 벌이는 '친위 쿠데타'에 불과할 뿐이다. 오죽하면 실패한 '셀프 쿠데타'라고들 수군거릴까.
3일 밤 10시 23분 윤석열 대통령은 뜬금없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자신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호소한다"고 했지만, 대통령의 호소는 명분도 없고, 절차도 위헌·위법투성이며, 준비도 엉망진창이다. 계엄선포 사유는 거의 피해망상에 가깝고, 절차는 시대착오적 발상의 극치다. 더군다나 우리 시민 의식을 너무 우습게 본 탓인지 반세기 전 수준에도 한참 못 미치는 군 병력 동원에 매달렸다.
하늘이 도운 덕분에 그나마 '6시간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었다. 만약에 계엄군의 국회 봉쇄가 조금만 빨랐더라면 국회는 계엄 해제를 요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시민들은 거리로 몰려나왔을 것이고 어떤 불상사가 발생할지 예상하기 어렵지 않다. 집권당인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즉시 "비상계엄은 잘못된 것"이라며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한 것도 큰 힘이 되었다.
이제 하나하나 따져 보자. 우선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의 명분으로 ①야당의 22건 탄핵소추 ②판사 겁박 및 검사 탄핵 ③주요 예산 4조1천억원 전액 삭감 ④국회는 범죄자 소굴로 입법독재 ⑤종북 반국가 세력 일거 척결 등을 들고 있다. 이 정도의 사유로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데 공감할 국민이 얼마나 될까. 말 그대로 '모기 잡겠다고 큰 청룡도를 휘두르는' 꼴에 다름 아니다.
정말 심각한 문제는 국회를 무력화시키려 했다는 점이다. 헌법 77조는 대통령의 계엄선포권을 규정하면서, 비상계엄의 효력은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관하여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입법부인 국회에 대해서는 계엄선포를 즉각 통지하고 국회의 의결이 있는 경우 즉각 계엄을 해제해야 한다. 즉 비상계엄하에서도 국회는 정상적으로 작동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이어서 곧 계엄사령부의 포고령이 발표됐다. 그 1호가 "국회 및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을 금한다"는 것이다. 이 포고령 1호 자체가 이번 비상계엄은 헌법상의 비상계엄 선포가 아니라 사실상 '친위 쿠데타'임을 자백하고 있는 꼴이다. 게다가 계엄군을 국회로 난입시켜 국회의 정상적인 활동을 방해하고 중요 정치인을 구금하려 했던 흔적마저 보인다.
국민을 이기는 권력은 없다. 이번에 계엄군으로 차출된 장교나 사병 상당수가 국회 봉쇄에 소극적이었다. 20대 MZ세대 병사들은 물론이고 지휘하는 장교들조차 부당한 명령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닐까. 더군다나 '서울의 봄'으로 상징되는 1980년 '5·17 비상계엄 전국 확대' 그리고 '광주의 비극'을 역사를 통해서 생생하게 기억하는 그들이기에 더욱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12·12사태와 5·18 광주와 관련되었던 신군부의 주역들은 물론이고 단순히 명령에 따라 계엄 업무에 나섰던 주요 지휘관들도 그로부터 15년 후에 다 단죄됐다. 세월이 반세기 가까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그들에게는 '내란 수괴 및 업무 종사'라는 주홍글씨가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렇기에 전두환 전 대통령조차도 7년 반의 임기 중에 결코 군대를 동원할 수 없었던 것이다.
지금 야당은 윤 대통령을 내란죄로 고발하고 탄핵하려 한다. 헌법에 따라 대통령은 재임 중 '내란과 외환의 죄'를 제외하고는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는다. 내란죄를 범하면 현직 대통령도 형사상 소추 대상이 된다. 이번 '6시간 비상계엄' 상황에서 형법상 내란죄에 해당하는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해 권능 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려 한 시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여전히 "야당에 심각성을 알리려 했을 뿐이다. 내가 뭘 잘못했나"라는 입장이다. 현실은 냉정하다. 지금 야당은 탄핵과 내란죄 고발을, 여당은 질서 있는 퇴진을 거론하고 있다. 윤 대통령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마지막 임계점을 스스로 넘어 버리는 바람에 돌이킬 수 없는 외통수에 갇히고 말았다. 한때는 보수 진영의 희망이었던 윤 대통령의 마지막 현명한 선택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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