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슬럼가를 명소로 바꾼 화제의 인물, 서양화가 박윤기

가야대 폐교 후 슬럼화 된 고령군 지산리 일대
박윤기 씨의 벽화·조형물 설치로 거리 밝아져

박윤기 화가가 으슥한 골목길 한 곳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박윤기 화가 제공
박윤기 화가가 으슥한 골목길 한 곳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박윤기 화가 제공

한 사람의 재능 기부 활동이 슬럼화된 지역을 변화시키고 있어서 화제다.

경북 고령군 대가야읍 지산리 일대는 지난 2004년 가야대학교가 폐교함에 따라 슬럼화됐다. 학생과 교직원 등 대학 관련 인구가 사라지니 주변 상권과 원룸촌 등 정주 여건이 순식간에 붕괴됐다. 유령도시가 된 지산리 일대는 슬럼화되면서 자연스럽게 우범지대로 추락했다.

이런 곳에 눈길을 준 건 서양화가 박윤기 씨다. 그는 개인전을 네 번이나 가진 중견 작가다. 현대조형대전, 국제현재미술대전 등에서 특선, 상해월드엑스포 금상, 프랑스 앙데팡당 입상 등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십수 년 전 황폐한 이곳을 둘러본 박 화가는 "학생들은 자취를 감췄지만 젊은 체취는 아련하게 느껴진다"며 어두워진 거리를 다시 살릴 수도 있을 것이란 희망을 품었다.

박윤기 화가가 제작한 100호 벽화. 박윤기 화가 제공
박윤기 화가가 제작한 100호 벽화. 박윤기 화가 제공

그는 우선 자신의 애장품을 포함해 열정을 쏟아부은 작품 수십 개를 거리에 내다 걸었다. 100호가 넘는 대형 벽화를 제작하고 조형물도 전시했다. 밤에도 그의 작품을 볼 수 있게 벽부등과 보안등이 설치되면서 자연스럽게 거리가 밝아졌다. 혼자 걷기 두려웠던 거리는 그렇게 지역의 명물로 거듭났다.

고령경찰서는 올해 초 박 화가를 범죄예방 자문위원으로 임명했다. 그의 활동상을 제도권에서도 공식적으로 인정한 셈이다. 고령경찰서 범죄예방전담팀(CPO)은 앞으로 박 화가와 함께 셉테드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셉테드는 범죄예방환경설계의 줄임말로, 도시 시설 설계 단계부터 범죄를 예방할 수 있도록 디자인하는 작업이다. 영국에서 시작해 성공을 거둬 선진국으로 전파됐다. 우리는 아직 걸음마 수준이지만 박 화가가 국내 첫 성공 사례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윤기 화가(좌측 세번째)가 경찰 관계자와 주민들과 간담회를 갖고 있다. 박윤기 화가 제공
박윤기 화가(좌측 세번째)가 경찰 관계자와 주민들과 간담회를 갖고 있다. 박윤기 화가 제공

박 화가는 "어두운 거리를 살리는 일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더욱 매진할 예정"이라며 "본업 때문에 거리 살리기 임무가 종종 지연되는 현실이지만, 이번 과업도 본업만큼 중요하기에 남은 창작 활동을 고령과 함께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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