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가을을 지내고 연말을 준비하는 오늘은 민족의 영웅 이순신 장군이 노량 앞바다에서 하늘의 별이 된 날이다. 올여름 무더위‧고물가에 지친 국민에게 "나도 부족하지만 남도 별거 아니다"며 위로와 당당한 자부심을 안겨주었던 하계올림픽의 작은 영웅, 최연소 금메달리스트 반효진 선수가 데자뷔된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번영‧자유‧자부심은 역사 속 영웅들의 수많은 헌신과 희생에 바탕을 두고 있다. 독립을 위해 만주 등 해외에서도 활동을 펼친 1만8천139명의 독립운동가와 의병들, 특히 풍전등화와 같은 조선을 지킨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노량해전은 늘 국민의 가슴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1598년, 임진왜란·정유재란에 이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사망으로 일본군은 퇴각을 서둘렀다. 조정에서는 도망가는 왜군을 쫓을 필요가 없다고 하였으나, 충무공은 후퇴한 왜군이 다시 힘을 추슬러 재침입할 경우 조선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며 끝까지 싸움터로 향했던 전투가 운명의 노량해전이다.
위정자들은 백성의 안위보다 권력 쟁취에 몰입됐다. 이웃 일본 정세에 무지함을 넘어 침략 야욕을 파악하는 통신사의 상반된(동‧서인) 보고에도 확인 절차 없이 우세 당파의 주장에 안주한다. 국익 개념보다 당파의 주장이 난무한 조정은 조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의 두 차례 침략 앞에 무너졌다. 선조는 명나라로 탈출 직전에 이르고 국토는 쑥대밭이 된다.
이순신 장군의 뛰어난 해상 봉쇄 작전과 명나라 원군, 곳곳 의병이 큰 역할을 한 7년간 전쟁은 노량해전에서 '내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장군의 유언을 뒤로하며 막을 내린다. 벼랑 끝의 조선을 위해 하늘은 영웅을 준비해 두었던가. 이순신 장군은 쉼 없는 훈련과 거북선 등 병기 준비, 진지 구축, 전략 마련과 몸을 던질 각오 등 철통 대비로 국가 운명의 순간을 대비했다. 눈앞의 전승에 머물지 않고 후대 국가의 안위까지 염려하는 역사의식이 감옥 수감과 백의종군의 수모를 견디며 멸사봉공의 희생으로 민족의 영웅, 별로 산화된다.
1792년, 프랑스 시민 혁명군이 왕의 근위대가 도망간 튈르리 궁전을 습격해 올 때, 고국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명령에도 스위스 용병 786명은 이웃 나라 왕 루이 16세 곁을 끝까지 지키다 몰사했다. 유품 속 '우리가 신의를 저버리고 도망간다면 우리는 물론 후손들 역시 신의를 잃어버리는 것'이라 쓰인 편지가 나왔다. 중세 스위스는 국토의 대부분이 알프스 같은 산악이어서 국민 생계를 외국에 나간 용병에게 맡겼다. 조국 후대들의 생계를 걱정하며 용병의 기본, 신의를 목숨으로 지킨 희생은 스위스 루체른의 '빈사의 사자상'으로 조각되어 연 140만 관광객을 부른다. 지금도 로마 교황청의 근위병은 스위스 출신자만 고용하고 있다.
후대를 의식하는 밤하늘의 별빛 같은 희생은 시공간을 넘어 시대를 맑게 하고 역사에 영감을 준다. 오늘 밤 영웅 이순신의 별은 유별히 반짝일 것이다.
오늘날 많은 리더는 국가 및 사회공동체의 이익을 희생시키며까지 자신의 집단과 본인의 미래 이익을 우선시한다. 부족한 역사의식과 희생정신 그리고 옅은 공직관은 공동체를 늪으로 몰 수 있다. 시대적 소명 의식이 실종된 이 시대, 온고지신의 역사 탐색이 더없이 절실하다.
요동치는 국제 안보와 깜박거리는 산업경쟁력에 퇴보하는 잠재 성장력에도 국가 미래에 대한 고민보다 편을 갈라 권력 잡기에 몰입하는 이 세태는 조선의 흑역사를 소환하여 쓰고 있다. 남해 노량리 밤하늘의 별빛은 오늘도 영롱히 반짝거릴 것인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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