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이 남긴 국가적 피해에 대한 계산이 여러 방식으로 나오고 있다. 혹자는 코스피·코스닥 시가총액 감소를 근거로 100조원대 피해를 주장하기도 한다. 시간을 두고 회복이 가능하겠지만 장기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재료가 된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좀 더 좁혀 보면 여당 지지층이 입은 타격도 크다. 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 현실화로 꽉 막혔던 정국이 반전할 거란 기대감은 하룻밤 새 사라졌다. 여의도 정가에서도 국정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기회를 스스로 차 버렸다는 점에서 허탈감이 더 크다는 탄식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이 정치적 고향으로 칭하던 대구경북(TK)도 날벼락을 맞았다. 긴 호흡으로 끈질기게 풀어 나가던 지역 숙원 사업들이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TK 미래가 달린 대구경북신공항 사업부터 경고등이 켜졌다. 지지부진했던 특수목적법인(SPC) 설립의 대안으로 선택한 공영개발의 안정적인 추진을 위해서는 공공자금관리기금 지원이 절실한 상황. 기댈 언덕은 현 정권의 강력한 지원 의지였다. 묵묵히 특별법 개정을 준비하던 지역 의원들은 힘이 빠지는 상황이다.
대구 취수원을 낙동강에서 안동댐 직하류로 옮기는 '맑은물 하이웨이' 사업도 암초를 만났다. 막대한 비용 탓에 예타 면제, 환경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수였기 때문이다. 대구와 광주를 잇는 '달빛철도' 역시 특별법을 바탕으로 한 예타 면제 작업이 마침표를 찍지 못했다. 기획재정부 재정사업평가위원회 의결이 아직 이뤄지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불안함이 가시지 않는다.
TK를 수도권에 버금가는 경제권으로 만들겠다며 야심차게 출발한 대구경북 행정통합은 어떤가. 지역 내 이견으로 지난 8월 '무산 선언'까지 됐던 것을 행정안전부, 지방시대위원회의 전폭적인 지지와 중재로 겨우 되살렸다.
어렵게 살린 불씨건만 이제는 논의의 기반조차 흔들거린다. 용산의 존재감이 사라진 상황에서 TK가 요구할 수많은 특례를 중앙정부가 수용할까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무엇보다 국회에서의 논의 작업이 당분간 불가능해졌다. 계엄 후폭풍이 모든 이슈를 집어삼킨 지금, 특별법 조기 통과 및 2026 지방선거 통합단체장 선출이라는 목표는 요원해졌다.
이렇게 지역에서 사활을 걸고 추진하던 사업들의 특징은 모두 정권 수뇌부에서 부처 장관으로, 또 실무 부서로 '톱다운' 방식으로 풀어내려고 했던 일들이라는 것이다. 뼈아프게도, 대통령이 리더십을 완전히 상실한 상황에서 비관론이 팽배하다. 이미 투입한 행정적 정치적 에너지 모두 매몰 비용으로 처리할 위기다.
설상가상으로 국회에서의 활로 모색 역시 더 어려워질 전망이다. 압도적 여소 야대 구조에 더해 국민 여론도 차갑게 돌아섰다. 비상계엄 여파로 TK 지역구 여당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 모두 사의를 표한 상황이기도 하다.
이처럼 45년 만의 비상계엄이 지역사회에 남긴 피해는 전에 없던 수준이다. 보수 정당 정권 창출의 핵심 역할을 하며 '대주주'를 자처하던 TK야말로 이번 비상계엄 후폭풍 속 입은 상처가 가장 크다.
그래서일까. 국회에서 마주치는 TK 의원마다 얼굴빛이 어둡고 침울하다. 여권의 지리멸렬한 대응에는 한숨이 나오기 일쑤다.
그럼에도 실의에 빠져 있을 시간은 없다. 수많은 현안 사업의 희망을 살려 가려면 TK의 정치력을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사면초가' 속에서도 지역의 미래를 지킬 방안을 찾을 수 있다. 지역 정치권이 지혜를 모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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