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 "원수 같은 엑소봉과 아미밤도 대통합"…촛불 대신 등장한 '응원봉'

각종 팬덤 모이면서 젊어진 집회…외신 "응원봉, 연대 상징"
중고거래 플랫폼서 웃돈 거래 성행하는 등 갖가지 현상 포착
입체 응원봉 시초 빅뱅 '뱅봉'·가수 세븐…이후 '원격제어' 혁신
있지·데이식스 등 봉 형태 벗어나 무한 진화…최근엔 '봉꾸' 유행

1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응원봉 등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1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응원봉 등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3일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일주일이 흘렀다. 계엄령은 하루도 안돼 해제됐지만, 연말을 앞두고 어느 때보다 불안하고도 혼란스러운 상황들의 연속이다. 그중 거리에 모인 시민들의 모습에서 눈에 띄는 것이 바로 형형색색의 응원봉이다. 집회와 응원봉.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지만, 소중한 것을 지켜내겠다는 마음은 같을지도 모르겠다. 각종 외신에서 주목하는 보다 '젊어진' 집회의 중심에 응원봉이 있다. 그 현상과 변천사, 도 넘은 상술과 같은 이면까지 주말&팀이 분석해봤다.

◆집회에서 이뤄진 팬덤 대통합

"엑소봉과 아미(방탄소년단 팬클럽)밤이 함께 있는 것부터가 대통합이다. 이 두 팬덤은 서로 철천지원수나 다름없는데 대통령이 팬덤 대통합을 이뤄줬다"

방탄소년단(BTS), 블랙핑크, 뉴진스 등 아이돌 팬들은 자신이 열광하는 스타들의 개성이 담긴 각양각색 응원봉으로 그들을 응원한다. 최대한 열심히 응원봉을 흔들고, 할 수 있는 한 큰 목소리로 열광하는 것이 내 아이돌의 기를 살려주는 팬들의 일. 그래서 여러 그룹이 모이는 콘서트장은 팬덤의 각축전이 벌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서로 경쟁하기 바쁜 팬덤들인데 대통합이 일어났다. 그런데 콘서트 무대가 아니다. 바로 대통령의 탄핵집회 현장에서다. 시민들이 케이팝 팬들의 필수 아이템 '야광 응원봉'을 들고 서울 광화문과 여의도 국회 집회 현장에 모인 것. 각양각색 응원봉을 흔들며 최신 가요를 부르는 모습이 엄중해야 할 것만 같은 집회에 젊음을 불어넣고 있다.

외신들도 이를 주목하고 나섰다. 10일 로이터 통신은 '케이팝 야광 응원봉이 한국의 탄핵 요구 시위에서 불타오르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두고 "시민들이 시위에 들고나온 응원봉이 기존의 촛불을 대체하며 '비폭력과 연대의 상징'으로 떠올랐다"고 전했다.

탄핵 촉구 집회가 시작된 뒤 중고나라·번개장터·당근 등 온라인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는 응원봉 관련 게시글이 빠르게 올라왔다. 중고거래 사이트의 한 이용자는 "NCT 응원봉 무료로 빌려 드립니다"라는 글을 게재하기도 했다.

10일 오후 시민들이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당사 앞에 붙은 윤석열 대통령 퇴진, 국민의힘 해체 촉구 팻말 앞에서 응원봉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10일 오후 시민들이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당사 앞에 붙은 윤석열 대통령 퇴진, 국민의힘 해체 촉구 팻말 앞에서 응원봉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팬덤 대통합에 이어 세대 대통합까지 이뤄지고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어른들은 이해할 수 없는 팬클럽들의 문화를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양한 세대가 참여하는 집회에서야 이해할 수 있게 됐다는 것. 집회에서 야광봉을 흔드는 영상을 본 한 네티즌은 "20살 딸이 '우리 세대는 집회에 최적화돼있다'고 말하더라"며 "아이돌 콘서트 보려고 며칠 밤낮을 새워보고 밖에 온종일 서서 기다리는 것은 예삿일인 것이 팬들이란다"고 댓글을 남겼다.

다소 생소한 광경에 부정적인 시선도 존재한다. 50대 백모 씨는 "정치적인 부분을 떠나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대한 이슈이고 그에 대한 집회인데 장난처럼 여기는 것 같다"라며 "놀러가는 것처럼 비칠 수 있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이돌 응원봉을 들고 집회에 참석한 학생들은 "나는 내 인생에 가장 소중한 빛을 들고나왔다"면서 응원봉을 드는 것이 시위를 가볍게 대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풍선에서 원격제어까지 진화

형형색색으로 야간 집회 현장을 밝히는 이 응원봉들도 본업(?)이 있다. 무려 3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응원봉의 첫 등장부터 지금까지의 변천사를 들여다봤다.

보통 아이돌의 등장과 함께 응원봉이 사용됐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1990년대 1세대 아이돌 응원도구는 응원봉이 아닌 풍선이었다. 지금과 달리 아이돌 그룹을 손으로 꼽을 수 있었던 시기였기에 색색의 풍선을 흔들며 응원했더랬다. H.O.T.는 흰색, 젝스키스는 노란색, 신화는 주황색, god는 하늘색 등.

하지만 색은 한계가 있었다. 새로운 아이돌이 등장해 비슷한 색이라도 쓰려하면 팬덤 간 싸움으로 번졌다.

노란색 왕관이 특징인 빅뱅의 응원봉. 입체 응원봉의 시작으로 본다.
노란색 왕관이 특징인 빅뱅의 응원봉. 입체 응원봉의 시작으로 본다.
숫자
숫자 '7' 모양을 딴 세븐의 응원봉은 응원봉의 시초다.

그래도 어쩌나. 우리 가수 응원은 해야지. 더 이상 색을 가질 수 없게 된(?) 팬덤 사이에서 2000년대 후반부터 마침내 응원봉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빅뱅과 세븐. 노란색 왕관이 특징인 빅뱅의 응원봉과 숫자 '7' 모양을 딴 세븐의 응원봉은 새로운 응원도구의 시대를 열었다.

어두운 공연장에서 반짝이는 응원봉도 혁신적이었는데, 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원격 제어 응원봉이다. 곡의 분위기나 응원법에 맞게 응원봉의 색을 일괄적으로 바꾸거나 좌석별로 다양한 색을 적용해 공연 연출의 한 방법으로 쓰이게 된 것.

가수 박효신이 2014년 처음 팔찌 형태의 원격제어 응원도구를 사용한 데 이어 아이돌 그룹 EXO(엑소)가 원격제어 응원봉을 도입했고, 이후 다양한 가수들이 응원봉 원격제어 시스템을 활용 중이다. 최근에는 아이돌 그룹 에이티즈가 세계 최초로 응원봉에 모션센서 기능을 탑재했는데, 버튼으로 조작하지 않아도 응원봉을 흔드는 빠르기에 따라 LED 회전과 깜빡이는 속도, 컬러를 변경할 수 있도록 했다.

갓 뽑아온 듯한 무 모양의 마마무 응원봉
갓 뽑아온 듯한 무 모양의 마마무 응원봉 '무봉'
손목 시계 모양을 한 데이식스 응원봉
손목 시계 모양을 한 데이식스 응원봉 '마데워치'

아이돌 가수가 셀 수 없이 많아진 만큼 다양한 디자인의 응원봉을 보는 재미도 있다. 밭에서 갓 뽑아온 듯한 무 모양의 마마무 응원봉 '무봉', 야구방망이 형태의 아이콘 응원봉 '콘배트' 등이 대표적이다. 더 나아가 링 형태(있지), 시계 형태(데이식스), 긴 창 형태(드림캐처) 등 봉 형태를 벗어난 개성 있는 응원 도구도 등장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응원봉에 모자를 만들어 씌우거나 스티커를 붙이는 '봉꾸(응원봉 꾸미기)'가 인기다. 뉴진스는 아예 앨범 구성에 봉꾸할 수 있는 스티커를 넣었고, 일부 소속사는 응원봉 뚜껑을 열어 인형 등을 넣어 꾸밀 수 있게 하는 등 응원봉의 무한한 변신은 계속되고 있다.

뉴진스는 아예 앨범 구성에 봉꾸할 수 있는 스티커를 넣어 응원봉 꾸미기가 가능하다. 뉴진스 인스타그램
뉴진스는 아예 앨범 구성에 봉꾸할 수 있는 스티커를 넣어 응원봉 꾸미기가 가능하다. 뉴진스 인스타그램

◆웃돈 거래·팬심 노린 상술 그림자

이처럼 응원봉의 품질이 나날이 진화하면서 가격 상승도 자연스럽게 뒤따라왔다. 거꾸로 팬들의 지갑은 얇아지고 마는 탓에 도가 지나친다는 비판도 피할 수 없게 됐다. 그도 그럴 것이 소위 3대 기획사라 불리는 기획사(SM, JYP, YG) 그룹들의 응원봉 가격만 살펴봐도 평균 4만원 선을 훌쩍 넘는다. 대표적으로 트와이스는 4만9천원, 스트레이키즈는 5만2천원, NCT는 4만5천원, 에스파는 4만3천원, 블랙핑크는 3만9천원에 응원봉을 판매하고 있다. 케이팝 팬덤 주 소비층이 10대부터 20대까지 걸쳐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높은 가격대로 볼 수 있다.

또한 대부분의 기획사들은 팬덤별로 응원봉의 구매 시기를 한정해놓고 팔기 때문에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음 구매 기간이 열릴 때까지 공식적인 경로로 구매가 불가한 경우도 파다하다. 이러한 점을 이용해 최근 급증하는 수요에 따라, 구매가 막히거나 판매 중단된 응원봉에 많게는 2~3배까지 웃돈을 얹어 거래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공식적인 경로로 구매가 가능함에도 웃돈을 붙여 파는 업자들도 등장했다.

NCT 응원봉의 구버전
NCT 응원봉의 구버전
최근 리뉴얼된 NCT 응원봉
최근 리뉴얼된 NCT 응원봉

가격도 가격이지만 응원봉을 구매할 수밖에 없게끔 유도하는 기획사들의 상술도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올해 초 보이그룹 NCT가 소속된 SM은 기존 응원봉의 리뉴얼된 버전을 출시했다. 기존 3만8천원이던 가격에서 4만5천원으로 인상됐지만, 그에 비해 디자인이나 성능 면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아 팬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대학생 팬인 20대 이 모씨는 "비싼 가격에 팔아도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을 소속사들부터가 터무니 없는 가격에 팬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것 아니냐"고 토로했다. 지난해 보이그룹 세븐틴의 소속사 플레디스와 모기업인 하이브도 새 버전의 응원봉을 출시하면서 구 버전의 콘서트 원격제어 적용 여부를 두고 팬덤의 항의 성명을 한차례 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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