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파진(東坡眞)'으로 써놓은 윤두서의 '소동파 초상'은 중국 송나라 문인 동파 소식을 그렸다. 성씨에 호를 붙인 소동파로 더 잘 알려진 소식이 한 손으로 두루마리를 편 채 다른 손으로 붓을 쥐려고 책상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손을 필통 쪽으로 뻗는 장면이다. 필통은 얼룩무늬가 있는 굵은 반죽(班竹)으로 만들었다. 커다란 타원형 벼루엔 몽당 먹이 놓여있고 먹은 이미 갈아 놓았다. 앙증맞은 연적도 보인다. 네 자루의 붓이 정연하게 꽂혀있는 모양이 살짝 부자연스러워 보이지만 윤두서 자신이 사용하던 문방구를 그렸을 듯하다.
시를 지으려는지, 글씨를 쓰려는지, 그림을 그리려는지 알 수 없지만 서재 생활을 하는 문장가, 서예가, 문인화가인 소식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형상화하려 한 작품이다. 의자의 등받이 테두리는 대나무를 구부려 만든 모양이고, 머리 위로 두 겹의 커튼이 드리워졌는데 지붕은 초가다. 둥근 창밖으로는 야외 풍경이 펼쳐져 있다. 소박하지만 격조 있는 분위기로 소동파를 그리려 한 것이다.
'소동파 초상'은 배경이 없는 추상적 공간에서 곧은 자세로 정면을 응시하는 무색무취한 증명사진 형식의 위인 초상화가 아니라는 점에서 특별하고, 전하고 있는 우리나라 화가의 소식 초상 중에서 가장 이른 작품이라는 점에서 각별하다.
이런 얼굴 모습인 근거가 없지는 않다. 윤두서는 면밀하게 자료조사를 했다. 명나라 때 백과사전인 '삼재도회(三才圖會)', 중국 역대 군신(君臣)의 초상화집인 '조사(照史)'를 비롯해 여러 서적에 나오는 소동파 초상을 참고했다. 머리엔 소동파가 직접 고안한 동파건(東坡巾)을 썼다. 소식은 유가(儒家)의 인물이고 관료였으나 모자도 디자인했고, 동파육이라는 돼지고기 요리도 창안한 다재다능한 천재다.
20세기 중국의 철학자인 리쩌허우는 고국(古國) 중국의 예술적 아름다움을 선사시대 토템부터 청나라 공예까지 순례하며 시대정신이 응결된 불꽃들을 '미의 역정'으로 서술했다. 그는 이 책에서 중국 문예사에 거대한 영향을 미친 '소식의 의의'는 문예적 성취보다 삶에 대한 태도에 있다고 했다. 소식은 분명 충군애국을 신봉한 유학자임에도 불교와 도교를 드나들었다. 좌천, 투옥, 유배를 점철한 인생을 살면서도 떠가는 구름처럼 흐르는 물처럼 구속 받지 않았다.
소식만큼이나 불우한 천재인 윤두서는 화가로서 남다른 통찰력으로 보통 사람의 생활 모습을 풍속화로 그렸고, 직접 말을 기르며 말 그림도 잘 그렸으며 '동국여지지도', '일본여도' 등 지도도 그렸지만 그의 그림 실력이 가장 잘 발휘된 곳은 '자화상', '심득경 초상'이 보여주듯 초상화다. 리얼리스트 윤두서의 상상 초상화 '소동파 초상' 또한 중국의 어느 소식 초상화 못지않게 핍진하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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