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환율 방어, 시기 놓치면 위기론까지 나올 수 있다

정치적 불안이 외환시장을 뒤흔들면서 원·달러 환율이 치솟고 있다. 2년 전만 해도 1천200원을 밑돌았는데 이젠 1천400원이 기본값일 정도로 원화 가치가 떨어졌다. 1차 저지선(沮止線) 1천450원이 언급되고, 1천500원 선 위협 우려까지 나온다.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제외하곤 겪어 보지 못한 고환율 위기다. 단기 저항선 1천450원을 지키지 못한 채 속절없이 환율이 무너지면 외환 당국은 이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달러를 쏟아부어야 하고, 결국 외환보유액이 급격히 줄어 제2의 외환위기까지 초래할 수 있다는 공포스러운 시나리오도 등장했다.

한국 외환보유액은 지난달 말 기준 4천153억9천만달러로, 세계 9위 수준이다. 물론 최근 3년간 보유액은 감소세이고,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300억달러 이상 줄었다. 아직 규모만 놓고 보면 위기 상황이 아니지만 속내는 매우 걱정스럽다. 외환 당국이 공식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최근 환율 변동 추이를 보면 당국의 적극 개입이 있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그렇지만 환율은 급등락을 멈추지 못하고 있다. 연이은 달러 소진(消盡)으로 외환보유액 4천억달러 선이 무너지면 시장 불안이 극심해지면서 자본 유출이 가속화할 수 있다. 달러가 줄줄 새어 나갈 수 있다는 말이다.

내년 예산안 통과로 일부 불확실성이 해소됐고, 은행·보험사의 유동성·건전성 우려를 불식(拂拭)시키고자 금융 당국이 규제 완화를 언급한 것은 긍정적 요소다. 글로벌 신용위기 당시처럼 달러 폭등이 아니라 국내 상황에 국한된 점도 그나마 다행이다. 정치가 안정되면 환율도 속히 진정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당장 지난 9일 오전 "군통수권은 여전히 윤석열 대통령에 있다"는 국방부 입장이 나오자마자 환율이 폭등해 17.8원 치솟았다. 외환시장이 얼마나 정세에 민감한지 알려 주는 단적인 사례다. 안정적 정국 회복 시기를 놓치면 환율이 걷잡을 수 없이 치솟아 경제에 치명상을 줄 수 있다. 대통령 퇴진 시기를 저울질하면서 여야가 유불리를 두고 싸울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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