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특별기고-이철우] '체제 교체'로 제7공화국 열어야 대한민국이 산다

이철우 경상북도지사

이철우 경북도지사
이철우 경북도지사

한밤중 대통령의 계엄 선포로 벌어진 일들에 국민들의 충격과 분노가 크다. 대한민국 정치사가 바람 잘 날 없긴 했지만 이번에 받은 충격은 유례없을 정도다. 국회의 빠른 대처로 민주주의의 회복성을 보였다는 사실에 위안을 삼기도 하지만 안보, 경제, 민생 위기가 계속되고 있는 어려운 시국이다.

다들 대통령이 언제 퇴진하느냐, 차기 권력은 누구냐 하는 정치적, 사법적 처리에만 관심이 쏠려 있다. 그러나 8년 만에 다시 겪는 대통령의 리더십 붕괴 상황에서 권력 교체보다 훨씬 중요한 '체제 교체'를 추진해야 한다. 지금 우리 국민은 대통령 한 사람에게 국가권력을 집중시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견고하다고 믿어 왔던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시스템이 얼마나 취약한지 자각하고 있다. 이에 대한 근본 원인과 해법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한 숙제다.

돌아보면 1987년 민주화 개헌 이후에도 우리 정치는 계속해서 갈등과 반목의 역사를 써 왔다. 대통령에게 막강한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현 체제는 승자독식이라는 냉엄한 현실 앞에 죽자 사자 상대를 비난하는 양당제 정치 구조를 고착화시켰다. 국민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정치 공방 속에서 역대 모든 대통령이 가족이나 측근 혹은 본인의 구속 등 불행의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나는 다를 것'이라는 대선 후보들의 착각과 대통령 취임 후의 불행이 반복됐다.

5천 년 이어진 왕정의 역사,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으로 나라를 일으킨 경험 때문에 우리 국민들은 대통령제를 선호한다. 그러나 대통령 권력이 너무 강해서 참모들도 뜻을 거스르면 안 된다고 생각하니 국무회의까지 거치고도 대통령을 저지하지 못했다. 이제 경제 규모도 엄청나게 커지고 문화도 다원화, 세계화된 대한민국에서 한 사람에게 막강한 권력을 맡기는 것은 오히려 위험한 체제가 아닌가.

선진국 대부분은 민주화 과정을 통해 권력을 분산한 정치 체제를 가지고 있다. OECD 38개국 중 30여 개 나라가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를 실시한다.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 한국, 멕시코, 칠레 정도밖에 없다. 그러나 미국의 대통령제는 우리와 달리 의회의 권한이 강하고 주정부에도 강력한 힘이 있는 연방제라서 견제와 균형이 지켜진다. 우리는 권위주의 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지속하는 유일한 나라다.

지난 2017년 대통령 탄핵에 대한 충격과 반성으로 국회에 30년 만에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가 구성되어 체제 교체를 추진했었다. 그러나 탄핵의 광풍과 눈앞의 대선으로 개헌은 무산됐다. 그때 제왕적 대통령제를 고쳤더라면 지난 8년간의 극심한 정치적 대립과 현재의 충격적인 위기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통탄의 심정이 든다. 이번에도 이 문제를 고치지 않고 사람만 바꾼다면 언제든 제2, 제3의 위기가 올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또다시 불행한 대한민국을 만들고 위기에 빠뜨릴 것인가. 이제는 집단 지성으로 국가를 운영하는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 방식의 분권형 권력 구조를 도입할 때가 됐다. 국회도 양원제를 도입해서 막무가내식 운영이 아니라 힘의 균형을 도모하고, 이왕이면 지역 대표형 상원을 설치해 정치적 힘이 수도권에 쏠리지 않도록 견제하면서 지방도 살려야 한다. 헌법 개정을 통해 국민이 바라는 협치와 상생이 이뤄질 수 있는 제7공화국을 여는 것이 대한민국에 상존해 온 정치 리스크의 뿌리를 뽑고 이번 위기를 진정으로 극복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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