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에 맞서는 검사로 국민들의 환호를 받으며 화려하게 정치권에 발을 들였던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로 국회로부터 탄핵소추안이 의결돼 14일 직무가 정지되는 신세가 됐다.
돌아보면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어록을 남기며 살아있는 권력을 향해서도 거침없이 수사를 밀어붙였던 강직한 검사의 기백에 국민들은 열광했고 공정과 상식이 흘러넘치는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공약에 젊은이들 역시 환호했다.
그는 2022년 3월 9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와의 접전 끝에 득표율 0.73%포인트 차이로 정치권을 거치지 않은 최초의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윤 대통령이 국민에게 처음 이름을 알린 것은 2013년 국가정보원 댓글 조작 사건의 특별수사팀장을 맡으면서부터다. 윤 대통령은 국정원과 국방부를 상대로 강도 높은 수사를 벌이다 박근혜 정부와 정면충돌한 끝에 대구고검으로 좌천당했다.
이어 박근혜 정부 후반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지면서 윤 대통령은 최순실 게이트 규명을 위한 박영수 특검팀에 합류해 재기의 날개를 폈다.
이후 문재인 정부에서 윤 대통령은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으로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를 진두지휘하면서 문재인 정부와 정면충돌했고, 보수 진영의 대선 주자로 급부상했다.
결국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에 입당해 홍준표·유승민·원희룡 후보를 누르고 대선 후보로 직행했다.
윤석열 정부의 처음은 화사했다. 대통령이 떠난 청와대 앞마당은 시민들의 발걸음으로 붐볐고 용산에서 펼쳐진 새 대통령의 출근길 문답은 새로운 소통의 희망을 피웠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정책분야에서 실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5세 조기취학이라는 실험적 정책은 부모들의 가슴에 불안을 심었고 주 69시간 노동은 청년들의 꿈을 짓밟았다. 정책마다 터져 나온 한숨 소리는 지지율 추락으로 이어졌다.
예상하지 못했던 윤 대통령의 소통의 부재는 국민의 불신을 키웠다. 무신불입(無信不立)의 기운이 짙어지던 즈음인 2022년 10월 이태원 참사가 터졌다. 윤 대통령의 공감능력이 도마에 올랐다. 2023년 7월 국민의 생명을 지키겠다는 사명감으로 폭우 현장에 뛰어든 한 해병대원이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영부인에 대한 각종 의혹이 불거졌지만 근거 없는 음해라고 감싸기에 급급했다. 야당의 잇따른 특검법에 거부권으로 맞서며 야권과 정면충돌했다. 정치는 실종됐다.
그렇게 야당에 대한 적개심을 쌓아가다 결국 극약처방인 비상계엄을 선포를 선택했다. 하지만 국민들은 국정에 딴지를 거는 야당보다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윤 대통령에 대한 단죄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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