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심과 본심이 동시에 진행된 이후, 최종심에서 거론된 작품은 노은 씨의 '폭설밴드'와 방성원 씨의 '이사할 때는 누구나 호구가 된다', 두 편이다. '폭설밴드'에서 폭설이라는 고립 공간에서 음악성에 기대어 현실과 환상이 조립되었다면, '이사할 때는 누구나 호구가 된다'의 생활은 일상어의 발화이다. 전자가 시적 장치로 다채로운 발상을 사용한다면 후자는 관찰의 시선이 돋보인다. 당연히 전자는 활발하고 후자는 페이소스에 근접한다. 한 발짝 더 들어가 보면 서로 다른 이 두 작품이 얼마나 좋은지 알게 된다.
'폭설밴드'에서 "쿵, 쿵 / 우리는 무언가를 떨어뜨리기도 하였는데 / 무언가와 바닥이 부딪히는 소리는 생각보다 커서 // 옥상에
서 어떤 아이가 얻어터진다는 소문이 학교에 돌았다 / 누군가 죽은 게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 너는 그렇게 말할 것 같았다"라는 부분은 거대 폭설 군락이라는 상징이 에워싼 교실의 분위기와 감정에 대한 빛나는 묘사이다. 그런 시간 그런 장소에서 시가 왜 필요한가를 충분히 증명하고 있다. 폭설이라는 썸네일을 가진 기묘하고 역동적인 한 편의 영상이 아닌가. "퓨즈가 나가고 모두 조용해지는 한 순간 / 기억 속의 학교는 영원히 어두울 것만 같아"라는 어두운 반전 또한 이 시의 매혹이다. 폭설 속의 다채로운 수다는 어떤 감정으로도 번안 가능한 노은 씨의 고유한 영역이다.
'이사할 때는 누구나 호구가 된다'의 정경은 누구나 겪음직한 삶의 귀퉁이라는 일상이다. 이 소소한 이야기의 마지막은 "문은 닫히니까 괜찮죠? // 문을 닫았다가 열었다가 다시 / 닫다가 자꾸 내가 걸리는 것 같아 // 그냥 열어놓고 지내야죠"라는 구절이다. 이 결말은 느리지만 진솔하고 단순하면서 비범하다. 또한
이 진술에는 신산한 보통 사람의 하루가 고스란히 맺혀 있다. 사실이 아니라 공감을 추구하는 시적 언술이 몸에 베인 창작 습관을 가졌다고 짐작한다.
단점보다 장점이 많은 두 작품 사이에서 주저하면서 어떤 선택도 괜찮다는 논의가 오갈 때쯤, 결론을 위해 우리는 다시 숙고했다. 전자와 후자는 좋거나 더 좋음이 아닌,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 현대시의 섬세하고 다양한 포즈이기 때문이다.
폭발하는 시적 감수성의 넓이와 깊이야말로 심사위원들이 '폭설밴드'의 손을 들어준 타당한 이유이겠다. 언어와 음악이 에워싼 폭설이라는 늑대의 울음은 이 시가 당선작으로 선정되는데 결정적이었다. 당선된 노은씨는 20대 초반, 우리 문학의 전면에 낯선 확장성을 가져주리라 예감한다. 축하를 드린다.
사족이지만 일정한 수준을 보여준 십 대 청소년의 투고작도 잠깐 화제였다.
(심사위원 : 송재학 이병률 김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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