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의 새 아이콘으로 부상, 팬클럽까지 몰고 다녔던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이 촉발한 탄핵 국면을 버티지 못하고 사퇴했다. 지난해 12월 당을 구하기 위한 소방수로 영입돼 총선 참패로 아픔을 맛보았지만, 전당대회를 통해 화려하게 재기한 뒤 5개월여 만이다.
임기 내내 국민 눈높이를 강조하며 여당 내 야당 역할을 자처했고 윤석열 대통령과 차별화 행보를 보이며 차기 대권 주자로서 입지를 공고히 하는 듯했다.
하지만 사사건건 대통령실과 갈등하고 당내 주류인 친윤(윤석열)계와 융합되지 못하는 등 보수 정치의 차세대 리더로서 한계도 노출했다.
결국 자신이 속한 당이 배출한 대통령을 탄핵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 오락가락하는 행보로 정치 초보의 약점을 여실히 드러냈다. 일각에서는 자기 정치를 위해 보수 정가에 발을 들인 뒤 당내 분열만 촉발시키다 대통령 탄핵까지 낳고 만 가짜보수라는 비판까지 제기된다.
◆변화와 쇄신, 국민눈높이
4·10 총선을 앞둔 지난해 12월 비대위원장으로 취임한 한 대표는 줄곧 변화와 쇄신을 앞세우며 국민의힘을 이끌었다.
운동권 정치의 청산을 외쳤고 상식적인 국민을 대변하겠다는 뜻에서 동료시민이라는 단어도 등장시켰다. 정책 공약의 키워드로 격차 해소를 화두로 제시한 뒤 교통, 안전, 문화, 치안, 건강, 경제 등 다양한 영역의 불합리한 격차를 없애는 데 공을 들였다.
대통령실과 친윤계와 다른 목소리를 내는 데도 거침이 없었다. 비대위원장 시절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이 여론의 중심에 서자 대통령실을 향해 "국민 눈높이에서 생각할 문제"라며 각을 세웠다. 이종섭 전 호주대사 임명, 황상무 전 시민사회수석 거취 문제가 제기됐을 때도 대통령실을 비판하며 교정을 요구했다.
대통령실은 한 대표에게 전격적으로 비대위원장직 사퇴까지 요구했고 한 대표는 이를 거부하는 등 양측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결과적으로 총선은 집권여당의 참패로 끝이 났고 친윤계는 총선을 앞두고 '원팀'이 되지 못하고 한 대표가 갈등을 유발했다고 비판했다. 반면 친한(한동훈)계는 대통령실이 촉발한 악재 속에서도 개헌 저지선을 지킨 것은 한 대표의 역할이 컸다고 반박했다.
특히 당원들의 바닥 민심이 한 대표를 향했다. 지난 7·23 전당대회에서 한 대표는 총선 참패의 책임론 속에서도 62.8%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 당 대표로 선출됐다.
◆거야 공세 속 계파 갈등만
한 대표는 당 대표 취임 이후에도 지속해서 대통령실의 변화를 촉구했다. 대통령실이 김경수 전 경남지사의 복권을 추진하자 한 대표는 반대했고 대통령실은 "복권은 대통령의 권한"이라며 이를 강행했다.
2026년도 의대 증원 문제를 두고도 대통령실의 강행 드라이브에 한 대표는 유예해야 한다며 다른 목소리를 냈다.
특히 대통령에게 지속해서 독대를 요구한 끝에 성사된 윤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김건희 여사과 관련한 각종 의혹에 대해 이른바 '3대 해법'(대외 활동 중단·대통령실 인적 쇄신·의혹 규명 협조)을 공개 건의하며 공세의 수위를 바짝 끌어올렸다.
친윤계는 거대 야당과 맞서도 부족할 판에 한 대표가 자기 정치에만 골몰한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친한계는 대통령과의 차별화 전략으로 10·16 부산 금정구청장 보궐 선거에서 승리했다고 자평했다.
친윤계와 친한계의 갈등의 골은 지난달 소위 '당원 게시판' 논란을 계기로 진흙탕 싸움으로 비화하기도 했다. 당내 자제령을 통해 서로 간의 갈등이 수면 아래로 내려가는 듯했지만, 계엄 및 탄핵 정국을 맞아 파국을 피할 수 없었다.
한 대표는 계엄 선포 직후 "위헌·위법한 계엄"이라며 비판 입장을 냈고 탄핵 찬반을 두고 오락가락한 행보를 보이다 결국 당론을 거스르는 탄핵 찬성을 공개 주장했다. 윤 대통령 제명·출당을 위한 당 중앙윤리위원회를 긴급 소집하며 친윤계 의원들로부터 삿대질을 받는 등 큰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이처럼 정계 입문 후 당 대표 사퇴까지 한 대표의 노정(路程)은 자신의 취지와 무관하게 당내 갈등과 분열을 내내 촉발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집권여당 대표가 스스로 대통령을 탄핵해야 하는 상황까지 낳았다.
정가 한 관계자는 "대권을 노리는 한 대표는 정치 초보라는 한계에 더해 배신자 프레임까지 극복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고 했다.
◆용병 정치 실패 반복한 보수
보수 정가에서는 '한동훈의 1년'은 정치 초보 용병은 안 된다는 황교안 전 대표의 실패 사례를 반복한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후회가 터져 나온다.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5일 페이스북에 "한동훈 비대위원장 등장은 불행의 시작이었다"며 비대위원장, 당 대표 시절 내내 '총구가 항상 대통령에게 가 있었다'고 비판했다.
나경원 의원은 "우리 정당과 아무런 인연이 없었던 인물을 그저 이용해 보려는 욕심이 있었던 것 아닌가?"라며 "이런 허약한 정당이 된 것은 우리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고 했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계엄 사태가 터진 뒤 "(용병) 둘 다(윤석열·한동훈) 당과 나라를 혼란에 빠트리고 한국 보수집단을 또다시 궤멸로 몰아가고 있다"며 뒤늦은 한탄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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