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백정우의 읽거나 읽히거나] 키치와 걸작 사이 어딘가에  

[책[ 설국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 민음사 펴냄

[책] 설국
[책] 설국

"야, 진짜 야해. 이렇게 야한 소설은 처음이야." 중학교 2학년 때였나, '삼중당문고'에 푹 빠진 친구가 '설국'을 읽고 한 말이었다. 오래 전 일을 정확히 기억하는 건 내가 던진 대답 때문이다. 그러면 너, 박계주의 '순애보' 읽어봤어? 그 소설보다 더 야해? 지금 생각하면 치기어린 논쟁이었지만 중·고등학생의 취미라고 해봐야 독서와 음악 감상, 아니면 펜팔이 고작이던 70년대는 그랬다. '설국'을 너무 야하다고 느낀 녀석은 대체 어떤 상상을 했을까. 20대를 통과할 무렵에서야 '설국'을 읽었고, 고작 '순애보'의 성적 유희에 달뜬 어린애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창피했다. 요컨대 친구는 로맨티스트였고, 나는 리얼리스트였다.

일정한 직업이 없는 말단 문필가 시마무라가 (가족과 아내가 있는 대도시의 지루한 일상을 떠나) 군마 현과 니가타 현에 인접한 눈이 많이 내리는 작은 마을에서, 진즉에 알고 있던 게이샤 고마코와 또 다른 여성 요코 사이를 횡단하며 감정의 널뛰기에 탐닉하는 이야기. 나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이 이상의 감상으로 읽어내지 못했다.

소설이 처음 출간된 건 1937년이다. 일본은 군국주의국가로 변모했고 만주사변에 이어 중일전쟁이 발발한 시점. 묘하게 오버랩 되는 영화 오시마 나기사의 '감각의 제국'의 시대적 배경도 1936년이다. 오시마 나기사가 군대가 진군하는 도시의 한복판 유곽에서 군국주의의 상징인 남성 성기를 자르는 탐미주의와 스펙터클로 정치와 성을 한데 엮었다면,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작은 산골로 현실 도피한 부르주아의 무기력한 초상을 전시한다. '감각의 제국'이 사다와 기찌의 노골적 욕망행로를 통해 파시즘으로 향하는 대중의 집단심리를 묘사한다면, '설국'은 시종일관 애잔하고 눅진한 감정을 툭툭 던지는 시마무라의 곁눈질을 서둘러 수습하려 든다. 그건 세상에 대한 비관도 자책도 염세도 아니었다. 헛수고인 줄 알면서 헛수고에 집착하는 게이샤 고마코와, 온갖 핑계를 붙이며 "오히려 깨끗하고", "순수하고", "처량한" 여성들과의 유희에 빠진 시마무라는 마치 프로이트의 포르트-다(fort-da)처럼 재귀반복을 거듭할 뿐이다.

결국 물음은 하나였다. 작가는 심오하지도 않고 숭고하지도 않은 시마무라와 고마코의 관계를 왜 이리 복잡하게 헤집고 들어갔을까. 예컨대 "고마코가 자신에게 빠져드는 것이 시마무라는 이해가 안 되었다." "고마코에게는 시마무라의 그 무엇도 전해지는 것이 없어 보였다."고 했지만, 시마무라는 자신의 감정을 봉인시키면 상대가 빠져든다는 걸 알 만큼 여자에 능통한 한량에 불과하고, 고마코는 조건 없는 사랑을 믿는 자신을 사랑하는 가련한 게이샤로 보일 따름이었다. 또 다른 문장, "촉촉히 젖은 눈으로 그를 쳐다보는 요코에게 시마무라는 이상한 매력을 느꼈다. 그런데 오히려 고마코에 대한 애정이 활활 타오르는 것 같았다." 가와바타는 작품 속 정조(情操)에서 '와비사비'를 발견하길 바랐던 걸까. '설국'은 설익은 듯 농염하고, 판타지 외피를 뒤집어쓴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영화평론가 백정우
영화평론가 백정우

'설국'에 따라붙는 평자들의 상찬을 수용하기엔, '존재와 문체의 아름다움'까지 포착하기엔 나의 문학적 소양이 턱 없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그 유명한 첫 문장을 읽자마자, 투명하고 스산하고 쓸쓸한 어떤 기운에 휩싸였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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