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워도 마음은 따뜻한 연말을 기대하는 게 사치인가 보다. 최근 대통령이 '초대형 사고'를 쳤다. 가뜩이나 경기가 좋지 않은 마당에 '불난 데 기름을 부은 격'이다. 비상계엄이란 수단을 동원해 반전을 시도하다 탄핵이란 역풍을 맞았다. 이 문제가 우리 사회의 모든 화두를 집어삼켜 버렸다.
돌아가는 꼴이 어디서 많이 본 듯하다. 비상계엄과 탄핵 여파로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지기 전만 해도 체육계는 '뜨거운 감자' 탓에 몸살을 앓았다. 대한축구협회의 정몽규 회장과 대한체육회의 이기흥 회장이 문제의 인물. 대통령 못지않게 많은 욕을 먹고 있는데도 자리 보전에 여념이 없다. '내가 버티면 너희들이 어쩔 건데' 식인 점도 닮았다.
정몽규 회장은 4선 연임에 도전한다. 이기흥 회장은 3선을 꿈꾼다. 둘 모두 체육계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훼손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정 회장은 작년 승부 조작 가담자 전격 사면으로 논란을 일으키더니 홍명보 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에서 절차를 어겼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경찰은 직원 부정 채용, 물품 후원 요구 등의 혐의로 이 회장을 수사 중이다.
국민 다수가 반대한다는 데도 끄떡없다. '민심은 곧 천심'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이들의 귀엔 들리지 않는 말인 모양이다. 70%에 달하는 탄핵 찬성 여론을 무시하고 군을 동원, 권력을 지키려고 한 대통령과 다를 바 없다. 지키고 싶은 게, 얻을 게 있으니 더욱 고집을 부리는 듯하다.
둘은 국회에 불려 나와 수모를 당하는 등 '국민 욕받이'로 전락한 지 오래다. 그럼에도 또 회장 자리를 맡겠다고 나섰다. 축구협회장과 체육회장에게 주어지는 명예, 권한뿐 아니라 사적 이익도 적지 않기 때문일 게다. 대통령 자리가 가진 권한이 얼마나 큰지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정 회장은 올해 아시아축구연맹(AFC) 집행위원으로 복귀했다. 이어 국제축구연맹(FIFA) 집행부의 핵심 기구인 평의회 재진입을 시도 중이다. 중동의 석유 재벌인 AFC 회장들과 교류하기 용이한 자리다. HDC현대산업개발의 수장인 정 회장으로선 사업을 진행하기에도 좋다. 정 회장이 축구협회를 현대가(家)의 가업으로 인식한다는 얘기도 많다.
체육회장은 '한국 체육의 대통령'. 연간 4천400억원에 달하는 예산을 주무른다. 축구협회장과 마찬가지로 국제 스포츠 무대로 나갈 수 있는 지름길이다. 이 회장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IOC 위원은 해외에 나가면 국빈급 대우를 받는다.
정 회장이 축구협회를 이끄는 동안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독단적 운영과 내부 부패 문제로 축구 팬들의 신뢰를 잃었다. 그럼에도 자신이 펴낸 책에서 '역사가 평가할 것'이란 말로 책임을 회피했다. 같은 말을 하던 대통령은 직무가 정지됐는데 정 회장은 여전히 자리, 권한을 지키려 한다.
대항마가 없진 않다. 허정무 전 대표팀 감독, 축구 해설가로 잘 알려진 신문선 명지대 초빙교수가 출마를 선언했다. 이 회장에게 도전하는 이들도 여럿이다. 두 경우 모두 현 회장의 독주를 막기 위해 후보 단일화를 논의 중이란다. 다음 달이면 선거로 차기 회장들이 선출된다.
두 회장은 '시간이 약'이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요즘 비상계엄 사태에 밀려 두 사람의 문제가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게 더욱 반가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왜 자신들이 욕을 먹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대통령도 여론을 외면하다 철퇴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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