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 형네 집에 가기 위해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중학생인 사촌 형은 건넛마을에 산다. 그리 멀진 않지만 걸어서 가기는 힘든 거리다.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어? 뭔가가 보인다. 정류장 의자 위에 고양이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다. 나는 눈을 비비며 고양이한테 초점을 맞췄다. 그러는 사이 한 아줌마가 고양이 쪽으로 다가갔다.
"야옹아, 너 어디 아프니?"
아줌마가 물었다. 검은 털에 초록색 눈망울을 가진 어른 주먹만 한 아기 고양이였다. 가끔씩 내뱉는 야옹, 소리가 너무 가냘프다. 많이 아픈가 보다. 저 몸으로 어떻게 의자에 올라갔는지 신기할 정도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줌마가 아픈 고양이에게 관심을 보인다는 거였다.
"이렇게 귀엽게 생긴 애가 왜 여기서 떨고 있어."
아줌마가 고양이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잠시 후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 번호를 확인한 아줌마가 고양이를 그냥 둔 채 버스에 올랐다.
'어? 그냥 가시는 건가.'
나는 아줌마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줌마가 떠난 이후에도 오가는 사람 몇몇이 고양이에게 관심을 보였다. 귀엽다며 사진을 찍어가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몇 분 뒤 내가 기다리던 버스가 도착했다. 마음에 갈등이 일었다. 지금 버스를 타면 사촌 형과 보드게임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대로 가면 고양이는…. 이렇게 작고 약한 녀석인데, 어쩌면 죽을 지도 모른다. 승강장에 서서 계속 고양이를 돌아보았다.
"탈 거니 안 탈 거니?"
기사 아저씨가 물었다. 결국, 나는 버스에 오르지 않았다. 버스가 떠나자 고양이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녀석의 꼬리는 축 늘어져 있었다.
'어떻게 하지….'
고민하다 보니 문득 사회시간에 배운 내용이 떠올랐다. 지역마다 야생동물을 보호하는 단체가 있다고 했다. 휴대폰으로 우리 지역 동물보호협회를 검색해 보았다. 다행히 번호가 있었다. 곧바로 전화를 했다.
"버스정류장에서 아픈 고양이를 발견했어요."
내 말을 들은 협회 직원의 대답은 그러나 떨떠름했다.
"고양이요? 우리는 버려진 개들만 취급해서요."
"개만요?"
약간 당황스러웠다. 개와 고양이를 구분 지어 보호한다는 게 뭔가 아쉬웠다.
"번호 알려줄 테니 구청에 문의해 보세요."
협회 직원이 짧게 말했다. 나는 받아 적은 구청 번호로 전화를 했다.
띠리리링, 띠리리링.
신호가 여러 번 갔지만 받지 않았다. 점심시간이어서 연결이 되지 않는다는 안내음성만 들려왔다.
'그냥 가버릴까….'
난감했다. 하지만 그럴 순 없었다. 처음부터 모른 척했다면 모를까, 이미 발을 들여놓은 이상 뭔가를 해야 했다. 다시금 고양이를 바라보았다. 녀석의 여린 눈망울을 보니 느닷없이 아라가 떠올랐다.
2년 전이었다. 아라네 가족이 우리 집 근처로 이사를 온 것은…. 아라는 갓 돌을 지난 아기였다. 위로 네 살 된 오빠 지훈이가 있었다. 아라를 처음 봤을 때 무슨 아기요정이 내려온 줄 알았다. 눈은 꿈꾸는 듯 반짝거렸고 볼은 터질 듯 포동포동했다. 아라는 낯선 사람이 안아도 방실방실 잘 웃었다. 아라 엄마는 동네 사람들에게 "우리 아라 좀 보세요. 정말 예쁘죠?"라고 자랑을 하곤 했다.
얼마 후 나는 아라의 출생과 관련한 이야기를 듣게 됐다. 아들 지훈이는 친자식이지만 딸 아라는 입양한 자식이라고 했다. 사랑으로 아이를 거뒀다고 했다.
"세상에나, 정말 착한 가족이네."
"그러게. 입양은 가슴으로 아이를 낳는 거라던데."
우리 부모님은 아라네 가족을 칭찬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구청과 통화하는데 실패한 나는 다시금 휴대폰을 켰다. 현 상황에서 믿을 곳은 역시 119였다.
"네, 소방서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수화기 너머로 친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구급대원 아저씨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버스정류장에서 죽어가고 있는 고양이를 발견했다고, 도와달라고 했다. 내 설명을 들은 구급대원 아저씨의 목소리에 곤란함이 묻어났다.
"저기… 최근엔 야생동물 구조를 하지 않고 있어서요."
"왜요?"
"사람 구조하는 일에만 집중해도 인원이 모자라거든요. 미안합니다."
아저씨가 이해를 구했다.
'어떡하지….'
나는 애가 탔다. 어린 고양이는 죽어가는 데 도움 받을 곳이 마땅치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끊으려는데, 구급대원 아저씨가 나를 불렀다.
"저기요. 잠깐만요."
"네?"
"우리 소방서와 협력하고 있는 동물병원이 있는데, 그곳 연락처라도 알려줄까요?"
"네."
가방에서 수첩을 꺼낸 후 번호를 받아 적었다. 급히 적어서 끝번호가 '7'인지 '1'인지 약간 헛갈렸다. 동물병원의 연락처를 다시금 살펴보는 와중 지잉지잉, 휴대폰이 울렸다.
"안 오고 뭐해? 게임하려고 다들 모여 있는데."
사촌 형이었다.
"지금 버스정류장인데, 고양이가 많이 아파서…. 죽을지도 몰라."
나는 현재 상황을 짧게 설명했다.
"고양이? 너 고양이 안 키우잖아."
"정류장 의자에서 발견한 새끼 고양이야. 근데 너무 불쌍해서…."
"그럼 119에 신고하고 빨리 와."
"신고했어."
"그런데?"
"119에선 고양이 구조를 하지 않는대."
내 말을 들은 사촌 형이 답답해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야, 그냥 자연에 맡겨. 죽을 때 돼서 죽는가 보다 생각하라고."
"그건 좀…."
"그렇게 길가에 널브러진 동물은 수 없이 많아. 불쌍하다고 네가 다 살려줄 거야?"
"……"
나는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사촌 형의 말도 맞는 말 같아서였다.
아라를 다시 본 건 동네 키즈카페에서였다. 아라 엄마가 아라와 지훈이를 데리고 그곳에 왔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했다. 아라 엄마는 지훈이하고만 놀았다. 레일기차도 지훈이하고만 탔고 공놀이도 지훈이하고만 했다. 아라는 소파 위에 눕혀 놓은 채 쳐다보지도 않았다. 자다가 깬 아라가 울음을 터뜨렸다. 아라 엄마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보다 못한 내가 아라를 안아주었다. 아라는 처음 봤을 때보다 볼살이 홀쭉해 있었다. 얼굴색도 누렇게 떠 있었다.
그날 저녁, 엄마한테 말했다. 아라가 좀 이상하다고, 얼굴빛이 누렇다고.
"아, 그거? 아라가 이유식을 먹다가 약간 체했다고 하더라고. 어제 아라 엄마한테 들었어."
엄마가 별 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엄마는 아라 엄마를 좋게 평가했다. 입양이라는 쉽지 않은 길을 택한 훌륭한 사람이라고 했다. 아라 엄마는 동네 사람들과 마주칠 때마다 밝게 인사도 잘했다. 그래서 평판이 좋았다.
'그렇구나….'
나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아라는 아라 엄마가 알아서 잘 키우겠지, 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아라네 집 앞을 지날 때마다 아라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라 엄마의 고함소리도 새어 나왔다. 난 그냥 지나쳤다. 상관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촌 형과 통화를 마친 후 다시금 고양이를 살펴보았다. 세상을 구경한 지 얼마 안 된 녀석이었다. 자연의 이치에 맡기기엔 뭔가 억울한 생명이었다. 구급대원 아저씨가 알려준 동물병원으로 전화를 했다. '없는 국번이거나 잘못거신 번호입니다' 메시지가 나왔다. 끝자리 7을 눌렀는데 틀린 번호인가 보다. 1로 수정해 다시 눌렀다.
"네, ○○동물병원입니다."
간호사 누나가 전화를 받았다. 맞는 번호다. 나는 또박또박 상황을 설명했다. 버스정류장에서 어린 고양이가 죽어가고 있다고 했다. 말을 들은 간호사 누나가 구조하러 오겠다고 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젠 사촌 형한테 갈 수 있다. 하지만 간호사 누나가 덧붙인 '한 시간 뒤 도착'이라는 말이 발목을 잡았다.
"네에? 한 시간이요? 무슨 구조가 한 시간이나 걸려요?"
"몇 군데 들렀다 가야 해서 어쩔 수 없네요."
"죄송한데 좀 더 빨리 오실 순 없나요. 저도 지금 버스를 타야 해서요."
"목소리가 어리네요. 혹시 학생인가요?"
"네, 초등학교 6학년이에요."
"그럼 주변에 고양이를 맡아줄 만한 어른은 안 계신가요?"
"버스 타느라 다들 바쁘세요. 맡길 만한 가게도 안 보이고…."
나는 말끝을 흐렸다. 간호사 누나가 '학생도 바쁘면 그만 가보라'고 했다. 대신 '버스정류장 번호와 고양이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서 문자로 보내주면 찾는데 도움이 되겠다'고 했다.
통화를 마친 후 버스정류장 번호와 고양이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간호사 누나에게 보냈다. 1분 후 '확인했음'이라는 답이 왔다.
'이 정도면 됐겠지?'
나는 이제 버스를 타기로 했다. 더는 고양이에게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았다. 오가는 사람들이 고양이를 귀찮게 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고양이를 툭툭 만지작거렸다. 어떤 형과 누나는 집어 들기도 했다.
"오빠, 이 고양이 봐봐. 귀엽지? 데려갈까?"
"글쎄, 너무 약해 보이는데? 잘 움직이지도 못하고…."
의견을 나누는 그들 옆으로 버스가 들어왔다. 내가 기다리던 버스였다. 나는 버스에 오를 수가 없었다.
"이 고양이 아파요. 지금 응급차가 오고 있어요."
만지지 말라고 손을 저으며 말했다. 형이 표정을 찡그렸다.
"거봐, 아프다잖아. 괜히 데려갔다가 골치만 썩을 뻔했네."
형과 누나가 버스정류장을 벗어나자 나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이렇게 뒀다간 동물병원에서 고양이를 못 발견할 수도 있었다. 사람들이 집어갈 수도 있으니 말이다. 가방에서 포스트잇을 꺼냈다.
'병원에서 데려갈 고양이입니다. 만지지 마세요'
연필로 적은 후 고양이 옆에 포스트잇을 붙였다. 그러나 곧 떨어졌다. 포스트잇의 끈끈이가 연말의 강한 바람을 당해내지 못해서였다. 걱정스레 고양이를 살펴보았다. 찬바람을 맞은 녀석이 몸을 파르르 떨었다. 안타까웠다. 동물병원에 다시 전화했다.
"좀 더 빨리 오실 순 없나요?"
"지금 서두르고 있어요. 그래도 시간은 좀 걸릴 것 같아요."
"고양이가 많이 추워해요."
"그러면 박스라도 구해서 바람을 막아줘요."
간호사 누나가 말했다. 전화를 끊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길 건너편에 박스 줍는 할머니가 계셨다. 건너가 중간 크기의 박스를 구했다. 겉면에는 '고양이 만지지 마세요'라고 크게 적었다. 다시 정류장으로 돌아와 고양이를 살펴보았다. 고양이는 계속해서 몸을 쪼그리고 있었다.
"춥지? 안 춥게 해 줄게."
나는 조심스럽게 고양이를 들어 올렸다. 너무 가벼웠다. 그래도 체온은 따뜻했다. 고양이를 박스에 넣고 '고양이 만지지 마세요' 문구가 잘 보이도록 박스 방향을 잡았다. 이제 고양이를 위해 더 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잘 있어. 난 이제 가볼게."
고양이한테 작별 인사를 한 뒤 버스가 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라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돌렸다. 아라는 머리에 멍이 든 상태로 병원에 실려 왔다가 뇌출혈을 일으켰다고 했다. 쓰러진 옷장에 부딪혔다는 게 아라 엄마의 주장이었지만 경찰은 수사를 멈추지 않았다. 결국, 아라 엄마가 범인임이 밝혀졌다. 시도 때도 없이 아라를 때리고 괴롭혔다고 했다.
'그때 신고했어야 했는데….'
나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아라의 죽음에 내 책임도 있는 것만 같았다. 아라가 힘든 상황에 놓여 있다는 걸 알았지만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며 모른 척했다.
아라가 하늘나라로 떠난 후 나는 아라네 집 앞을 지날 때마다 괴로움을 느꼈다. 포동포동했던 아라의 볼살이 계속 떠올라서였다. 어리디 어린 생명을 지켜주지 못한 것이 너무나도 미안했다.
기다리던 버스가 오고 있었다. 승강장 쪽으로 한 걸음 다가섰다. 그때였다. 고양이가 울기 시작했다. 갑자기 박스에 갇히니 무서운 모양이었다.
야옹야옹!
소리는 작았지만 또렷했다. 나는 버스에 오르려다 발을 멈췄다. 기사 아저씨가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망설이다 다시 버스를 떠나보냈다.
'그래 함께 있자!'
병원차가 올 때까지 고양이 곁을 지키기로 했다. 돕기로 했으면 끝을 보기로 했다.
고양이가 무서움을 떨치지 못한 듯 계속 울어댔다. 나는 오른손으로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무서워하지 마. 이제 곧 병원에서 올 거야."
부드러운 손길을 느낀 고양이가 점차 울음을 그쳤다. 하지만 추운지 몸을 계속 떨었다. 왼손으로 고양이의 등을 어루만져주었다. 작은 몸이 손에 쏘옥 들어왔다. 내 손의 따뜻함을 느껴서였을까. 고양이의 떨림은 차츰 연해졌다.
'다행이다.'
나는 괜스레 차오르는 눈물을 참으며 계속해서 고양이를 쓰다듬어 주었다. 멀리서 주황색 동물병원차가 달려오고 있었다.
댓글 많은 뉴스
젊은 보수들, 왜 광장으로 나섰나…전문가 분석은?
"탄핵 반대, 대통령을 지키자"…거리 정치 나선 2030세대 눈길
윤 대통령 지지율 40%에 "자유민주주의자의 염원" JK 김동욱 발언
조경태 "국민의힘, 尹 옹호 이미지 안 돼…尹은 자기 안위만 생각"
"尹 영장재집행 막자" 與 의원들 새벽부터 관저 앞 집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