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내년 기준금리 인하 속도를 조절한다는 신호가 나오자 원·달러 환율이 15년여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1,400원대 환율이 '뉴노멀'(새로운 기준)로 자리잡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면서 수출입 의존도가 높은 산업계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19일 국내 자금중개사 서울외국환중개(SMB) 등에 따르면 이날 원·달러 환율은 장중 1,455.7원을 기록했다. 원·달러 환율이 1,450원을 넘은 건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친 2009년 3월 16일(1488.0원) 이후 15년 9개월 만이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고점을 찍은 이후 상승 폭을 소폭 줄여 1,451.9원(주간거래 기준)으로 마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과 비상계엄 선포·해제 사태 등으로 변동성이 커진 외환시장이 다시 출렁인 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인하 속도 조절을 예고한 영향으로 달러가 초강세를 띤 탓이다. 연준은 18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연 4.25~4.50%로 0.25%포인트(p) 인하하고, 내년 말 기준금리 목표 중간 값을 3.9%로 제시했다. 이는 종전 목표치인 3.4%보다 0.5%p 상향한 수치다.
'금리인하 사이클'이 당초 예상보다 높은 수준에서 그칠 것으로 예상되자 달러로 수요가 쏠리면서 달러 가치가 급등했고, 원화를 포함해 다른 국가 통화 가치는 상대적으로 약세 압력을 받게 된 것으로 해석된다.
국내 산업계엔 빨간불이 켜졌다. 원자재 수입 의존도가 높은 기업은 원화 가치 하락과 수입가격 상승에 따른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일부 수출기업은 대금을 달러로 결제할 때 단기적으로 실적이 개선될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보면 원자재가격 상승과 투자비 증가 등의 우려가 더 크다.
철강재 생산에 필요한 철광석, 제철용 연료탄 등 원재료를 수입하는 철강업계는 환율 급등이 골칫거리다. 원자재가격 상승을 제품에 반영하기 어려운 차 부품을 비롯한 중간재 생산기업의 부담도 가중될 것으로 예측된다.
해외투자를 확대한 기업의 경우 투자비 증가로 인한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 당장 미국 현지 배터리 공장 신·증설이 활발한 배터리업계부터 달러 강세로 인한 부담을 체감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환율 변동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정부·당국의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조상현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실물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환율"이라며 "환율이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야 기업도 사업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동력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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