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韓권한대행 거부권 행사 6개 법안, 집행 곤란 '포퓰리즘' 정책

양곡법 등 '농업 4법', 농업 현실 역행
국회법, 예산 의결 늦어질 우려…국회증감법은 '기업 기밀 유출' 부작용
내란 특검법·김건희 여사 특검법 거부권 행사 신중히 검토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임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임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탄핵 압박 속에도 재의요구권을 행사한 데에는 6개 법안이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우려가 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더불어민주당이 강행 처리한 양곡관리법(이하 양곡법) 개정안은 농업 현실에 맞지 않는 정책이라는 비판이 있었고, 학계에서도 정부가 현재 추진 중인 농업 정책 방향과 엇박자를 낼 것이란 지적이 제기됐다. 국회 증언·감정법(이하 국회증감법) 역시 국회가 요구하면 기업 기밀도 제출해야 하는 부작용이 있어 재계의 반발이 거셌다.

◆양곡법 등 '농업 4법', 농업 현실 역행

19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한 권한대행은 이날 오전 국무회의에서 양곡법과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이하 농안법), 농어업재해보험법, 농어업재해대책법 개정안 등 '농업 4법'에 대해 재의요구권을 행사했다.

양곡법 개정안은 남는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고 양곡의 시장 가격이 평년 가격 미만으로 하락 시 차액을 정부가 지급하도록 '양곡가격안정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농안법 개정안은 농산물 최저 가격 보장제 도입이 골자다. 재해보험법 개정안은 보험료율 산정 시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에 대해 할증 적용을 배제한다는 내용이며, 재해대책법 개정안은 재해 이전까지 투입된 생산비를 보장한다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정부는 이들 법안에 대해 반복적으로 반대 입장을 피력해 왔다.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은 국무회의 이후 브리핑을 열어 "집행이 곤란할 뿐 아니라 부작용이 명약관화하다"며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재의 요구를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송 장관은 양곡법 개정안에 대해 "구조적인 쌀 공급과잉 고착화, 이로 인한 쌀값 하락 심화, 쌀 이외 다른 작물 전환 저해, 막대한 재정 소요 등의 부작용이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농안법 개정에 대해선 "영농 편의성과 보장 수준이 높은 품목으로 생산이 쏠려 수급·가격 변동성이 심화하고 지원 대상 품목 선정 과정에서 농업계 내 갈등을 낳고 재정 부담이 과도해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야당 안대로 양곡법 개정안이 시행돼 쌀이 의무 격리될 경우 내년에는 약 1조원, 2030년 1조4천억원의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했다. 여기에 더해 연평균 43만t(톤)의 쌀이 초과 생산돼 산지 쌀값이 오히려 지금보다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는 양곡법·농안법 개정안의 대안으로 '한국형 농업인 소득·경영 안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정부가 시장 가격에 개입하지 않되 농가소득이 기준보다 낮을 때 일정 부분을 보장해 주는 것이 핵심이다. 김한호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쌀을 비롯해 다른 품목들이 과잉 생산됐을 경우 수매를 통해 가격·소득을 보장하는 방법은 우리 농업 현실과 맞지 않는다"며 "정부 의무 매입보다는 시장원리에 맞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해보험법·재해대책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형평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 교수는 이에 대해 "재해 책임에 있어서 정부가 일방적으로 책임을 지고 도와준다는 식보다는 생산자인 농업인들에게도 부담을 나누는 방향으로 법이 제정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국회증감법 개정안 '기업 기밀 유출' 우려

야당이 강행한 국회증감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기업 기밀 유출' 우려가 제기됐다. 앞서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등 경제 4단체 대표들은 지난 17일 우원식 국회의장과의 간담회에서 "충분한 논의 시간을 마련해줬으면 한다"고 요청했다. 이 개정안은 국회 증인과 참고인 등이 개인정보보호와 영업비밀보호 등의 이유로 자료 제출 등을 거부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해외 출장이나 질병 시에도 화상 연결을 통해 국회에 원격 출석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이와 관련해 한 권한대행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헌법상 비례의 원칙과 명확성의 원칙을 위반해 국민의 기본권인 신체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국회 예산안 자동 부의를 폐지하는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원활한 예산집행을 위해 국회가 준수해야 할 최소한의 기준을 정한 헌법 취지에 반한다"며 "헌법이 정한 기한 내에 예산안이 의결되도록 유도하는 장치가 없어지면 예전과 같이 국회의 의결이 늦어지고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께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한 권한대행은 야당이 강행 처리한 내란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특검법에 대한 재의요구권 행사 여부도 신중히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7일 정부로 이송된 이 두 법안의 처리 시한은 내년 1월 1일로, 정부는 처리 시한이 임박한 이달 31일까지 막판 검토를 거듭하겠다는 입장이다. 총리실 고위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헌법과 법률에 부합하는지 기준을 갖고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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