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명수 칼럼] 헌재, 형사소송 준용한 탄핵재판 절차 지켜야

서명수 객원논설위원(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서명수 객원논설위원(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서명수 객원논설위원(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헌법 수호의 최후 보루인 헌법재판소는 공정하게 대통령 탄핵 안건을 처리하고 있는가?

12월 14일 국회에서 가결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은 '2024헌나8'이라는 접수 번호가 부여돼 곧바로 탄핵 심판 절차에 돌입했다.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신속·공정한 재판을 하겠다"고 공언했지만 대통령 탄핵안을 처리하는 헌재의 태도는 공정보다는 '신속'에 방점이 찍혀 있다.

헌정사상 세 번째 대통령 직무 정지라는 중차대한 사안을 하루빨리 해소해야 한다는 명분 아래 신속한 재판을 추진하고 있지만 피청구인의 방어권을 철저하게 보장하지 않고 '탄핵하라'는 여론을 무기로 윤 대통령을 강하게 압박하는 모양새다.

헌법재판소는 대통령 탄핵을 결정하는 기관이 아니라 국회가 가결한 탄핵소추안의 적법성을 재판하는 헌법기관이라는 사실을 착각해선 안 된다. 인용되면 윤 대통령은 즉각 파면되겠지만 기각되면 대통령직에 복귀한다.

헌재의 안건 처리 원칙은 '선입선출'이다. 접수된 순서대로 심리한다. 그러나 헌재는 2024헌나8 사건을 최우선 안건으로 정한 뒤 27일을 첫 변론준비기일로 잡고 24일까지 답변서 제출을 명령하는 등 소송 원칙을 전혀 지키지 않았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은 대통령의 비상대권에 속하는 권한이며 대통령의 내란 혐의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소추인과 첨예하게 부딪치는 등 민감하고 복잡한 탄핵 심판이다. 신속하게 하는 것이 최선이 아니라 철저하게 소송 절차를 지키고 피청구인의 방어권도 보장해 주면서 신중하게 재판을 진행해야 한다.

헌재는 '형사소송법'을 준용해서 탄핵 심리에 착수하라는 헌재법을 지키지 않았다. 피청구인에게 탄핵의결서 등 소송 서류가 송달되지 않고 변호인도 선임되지 않았는데 변론기일을 일방적으로 잡았고 답변서 제출 시한을 언론에 공표했다. 형사소송법에는 소송 기록이 피고인에게 직접 송달된 이후 재판을 시작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지나치게 재판을 서두른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그 때문이다. 형사소송의 기본 원칙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누차 강조하듯 '무죄추정의원칙'이다. 재판관은 유죄의 예단을 갖고 재판을 하지 말아야 한다.

윤 대통령 탄핵 심판은 비상계엄 발동에 대한 위헌·위법 논란과 내란 혐의 등에 대한 치열한 법리 다툼 등 변론과 수많은 관련자들에 대한 증인신문 등이 필요할 수밖에 없어 180일의 기간도 모자랄 수 있는데 서두른다고 해서 탄핵 심판이 끝나지 않는 아주 복잡하고 긴 재판이 될 것이다.

재판 일정을 서두르는 헌재의 압박은 혹여 사법 리스크에 처한 유력 대선 주자 이재명 대표를 의식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민주당이 6인 재판관 체제로 변칙 운용되는 헌재를 정상화하겠다며 공석인 3인 재판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등이 계획돼 있고 조만간 9인 체제를 회복할 것으로 보여 차근차근 탄핵 재판을 진행해도 늦지 않다. 헌재가 재판을 서두르는 것은 내년 4월 18일 퇴임할 예정인 문형배·이미선 두 재판관의 임기에 맞춰서 탄핵 심판을 마무리하려는 일정에 쫓긴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사또 재판'도 아니고 중차대한 대통령 탄핵 재판을 재판관 임기에 맞추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헌재법에 7인의 재판관이 궐위로 출석하지 않는 기간은 재판 기간에 산입하지 않는다고 친절하게 단서를 붙여 놓았다. 헌재 스스로 180일의 기간은 훈시 규정이라는 법적 해석까지 해둔 상태다.

7인 이상이 재판을 개시할 수 있다는 헌재법 제21조는 헌재의 셀프 조치로 일시 효력이 정지된 상태지만 제38조에 '재판관 궐위로 7명 출석이 불가능한 경우, 그 궐위된 기간은 심판 기간에 산입하지 아니한다'는 단서 조항을 감안하면 7인 이상 재판관이 심리하지 않으면 탄핵 심판의 정당성은 상당 부분 훼손된다고 볼 수 있다. 헌재 스스로 변칙 운용을 정당화하면서 제멋대로 탄핵 재판을 한다면 향후 어떠한 결정을 하더라도 모든 국민들이 신뢰할 수 없다.

이제라도 헌재는 국회의 후임 재판관 인선 절차를 기다려서 정상화된 이후 헌재법에 규정된 대로 형사소송법의 원칙을 준용, 피청구인의 방어권을 철저하게 보장하면서 신중하고 신속하게 윤 대통령 탄핵 안건을 심리할 것을 요청한다. 헌재는 여론과 특정 정파의 이해관계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헌법과 법률에 따라 재판을 진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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