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록강은 흐른다
흐른다. 무심하게 흐른다. 혹한의 한겨울을 품었음에도 얼지 않고 흐르는 강이다. 나라와 나라를 가르는 물줄기를 사이에 두고 막연한 아픔도, 막연한 그리움도 흐른다. 미늘이 촘촘히 박힌 위험한 철조망의 경계이기보다 공존과 공유라는 말로 순화된 유연한 국경이다. '두려운가?', '그렇다.' '위험한가?', '모르겠다.'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기를 여러 차례, 끝내는 어떠한 물음도 어떠한 대답도 하지 못한 채 강물의 흐름에 잠긴다.
압록강변에 서 있다. 물빛이 푸른 오리 머리색을 닮아 압록수(鴨綠水)라 부르던 것이 영원한 이름이 되었다. 길이 803.3km로 한반도에서 가장 긴 강이다. 압록강은 함경남도 풍산군과 신흥군의 경계에 있는 해발 2,500m의 백두산 기슭에서 발원하여 북한과 중국의 경계를 이루며 흐른다. 하중도에 접어들며 이성계가 회군한 위화도와 북한의 신의주, 중국 단둥(丹東)을 지나 황금평을 이루며 황해로 흘러든다.
무수히 많은 생명이 압록강에 기대어 일어선다. 고조선, 고구려, 발해를 일으켜 세웠고, 말갈, 예맥, 여진 등 북방 민족들의 근거지가 되기도 했다. 목숨 붙이고 살아갈 만한 강이었다. 그러나 비운의 강이기도 했다. 러일 전쟁 때는 러시아군과 일본군이 넘나들었고, 한국전쟁 때는 한국군과 UN군, 인민해방군과 조선인민군이 뒤엉켜 전투를 벌였다. 많은 젊은이가 총칼을 겨누다 죽었고, 수없는 피난민이 이름 없이 스러졌다. 생(生)과 사(死)의 경계가 모호했던 물줄기였다.
◆단둥에 가면 뜨는 해를 보아라
폭설이 쏟아지던 북간도의 이도백하를 출발한 지 13시간 만에 서간도 단둥에 도착했다. 늦은 밤이었다. 무작정 압록강 변으로 갔다.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경 도시 단둥과 북조선 신의주를 잇던 단교(斷橋)를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북방의 매서운 겨울바람과 압록강 물살에 몸을 내맡긴 채 처연한 모습으로 서 있을 단교는 서간도 방문의 큰 목적이기도 했다. '처연하다'는 표현은 내 마음의 연민으로부터 생겨난 것이리라.
그러나 수천수만 개의 등(燈)을 걸어 형형색색의 불을 밝힌 단둥의 강변 풍경은 의외였다. 누군가 '단교입니다.'라고 했을 때 눈을 의심했다. 화려한 불빛에 치장된 채 구경거리처럼 빛났다. 불빛 탓일까. 같은 강일지라도 굽이쳐 흐르는 물살엔 도시마다의 고유한 삶을 품은 듯하다. 강물엔 어떤 난만함과 도도함마저 묻어난다.
잠을 설쳤다. 단둥을 밝히며 붉게 솟아오르는 해를 보리라. 가닿을 수 없는 겨레의 땅을 먼발치에서나마 목도하리라. 분단된 나라의 국민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불안과 연민의 감정이 밤새 요동쳤다. 그러나 국경 도시 단둥의 밤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찬 기운과 두꺼운 어둠이 뒤섞인 거리로 나간다. 쉬이 아침이 올 것 같지 않다. 타국의 낯선 새벽을 혼자 걷는다. 거리와 거리가 만나고 갈라지는 한복판에서 걸음을 멈춘다. 물비린내가 난다. 출렁이는 소리가 들린다. 강이다. 흐르고 있다. 밤새 얼지 않은 강, 강은 고요하다. 어둠뿐이다.
강 너머는 어떤 모습일까. 생명이 깃든 땅이라고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 암흑이다. 어젯밤, 압록강 변을 걸을 때 누군가 강 건너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쪽이 북한 땅, 신의주입니다." 밤새 북한 땅, 신의주를 상상했다. 추위와 굶주림 속에 무엇이라도 구걸하기 위해 아우성치는 곳 일 거라고.
서서히 어둠이 걷힌다. 나무와 건물의 실루엣이 묽게 드러난다. 나무도 건물도 모든 게 무채색이다. 굶주림, 가난, 빈민, 궁핍과도 같은 단어가 겨울스럽게 와 박힌다. 강물 위를 유영하는 국적 모를 배 한 척조차 무채색이다. 가난과 빈민이 묻어 있는 듯하다.
점점 더 환해지는 사위 속에서도 무채색의 풍경은 쉽게 풀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눈앞에 펼쳐진 신의주는 빈민과 빈곤이 아닌 도시 그 자체다. 빼곡히 들어선 건물과 고층빌딩, 공장이 보란 듯이 국경의 강변을 채우고 있다. 단둥을 향해 세운 붉은 태양의 거대한 조형물은 마치 우의 국에 대한 예의처럼 읽힌다.
강물 위에 앉았던 갈매기 떼가 요란하게 날아오른다. 어둠 속에서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던 새들이다. 새의 군무에 혼을 빼앗길 무렵 강너머 건물과 건물 사이가 붉어진다. 단둥(安東)을 붉게 물들이며 아침을 깨우는 해다.
찬란하다. 얼고 터지기를 반복하는 땅을 녹이며 사뿐히 즈려밟고 온다. 동해를 지나 신의주를 깨우며 가장 신성하게 온다. 한반도에서 가장 매서운 압록강 변의 겨울바람을 헤치고 내게 오는 거룩한 빛이다. 동쪽으로부터 세상을 깨우며 오는, 이 땅의 가장 강인한 기운이다.
◆서간도의 '안동(安東)'과 '안동(安東)'의 어른 석주 이상룡
단둥(丹東)의 지명은 1965년까지 '안동(安東)'이었다. 당시 중국 총리였던 주은래가 방문한 후 북경보다 해가 빨리 뜨는 동쪽이라고 하여 단둥으로 바꾸었다. '안동(安東)'은 대한민국 경상북도에 위치한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安東)과 한자가 같다. 어쩌면 안동에서 온 어른들로부터 시작된 지명은 아닐까 싶다. 그래서일까. 단둥에 오면 독립지사 석주(石洲) 이상룡(李相龍, 1858.11.24~1932.6.15.) 선생이 먼저 떠오른다.
경북 안동 임청각의 주인 이상룡 선생은 일본이 조선의 주권을 박탈하자 항일운동에 앞장섰던 어른이다. 그러나 일본의 핍박이 심해지자, 만주로의 망명을 결심했다. 쉰둘의 노령이었다. 노비 문서를 태우고 가산을 정리했다. 왕의 궁궐이 아닌 사대부 반가로는 가장 크게 지을 수 있는 99칸의 집을 뒤로하고 식솔들과 함께 임청각 대문을 나설 땐 매서운 겨울이었다.
꽁꽁 언 압록강을 건너, 가도 가도 끝없는 만주벌판을 걸어 서간도에 도착했다. 당시 서간도는 일본의 감시를 피해 한반도를 떠나온 독립운동가들의 근거지였다. 옛 고구려의 자취와 숨결이 남아있는 역사의 땅이었으므로 조선인들에겐 낯설고 먼 곳이 아니었을 것이다. 선생은 먼저 와 정착한 이회영, 이시영 등과 함께 독립군 기지를 세우고,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는 등 오직 조선의 독립에만 몰두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에 올랐지만, 끝내 조국의 해방을 맞이하지 못했다. '나라를 되찾기 전에는 내 유골을 고국으로 가져가지 말라'는 유언을 끝으로 1932년 5월, 길림성 서란현(舒蘭縣)에서 74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단교에 올라 압록강 건너 신의주를 마주하다
단교에 오른다. 바람이 매섭다. 말문조차 꽁꽁 얼릴 기세다. 바람의 말씀을 받아적는 강물의 주름이 웅숭깊다. 압록강을 횡단하는데 강 건너 도시가 지척이다. 붉은 태양을 상징하는 커다란 조형물이 보일 무렵, 쇠문을 옭아맨 쇠사슬과 자물통이 무기처럼 걸음을 묶는다. 만감이 교차한다. '단절'이라는 말 외에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다.
단교 옆에 나란히 놓인 중조우의교인 압록강 철교는 신의주까지 뻗어 있다. 철로와 차로, 인도가 함께 있는 다리다. 이따금 커다란 차들이 오고 간다. 신의주로 드나드는 차들을 보며 겨레의 땅을 멀리서만 바라보아야 하는 비애가 밀려든다.
압록강은 흐른다. 고향을 떠나온 석주 이상룡 선생과 식솔들, 김구 선생과 장준하 선생, 그리고 수많은 독립지사와, 평안북도 용천이 고향인 겨레의 할아버지 함석헌 선생과 단둥 세관에 근무하며 시를 쓴 백석에 이르기까지 모두의 이야기를 품고 압록강은 흐른다. 강 건너 겨레의 땅 북녘 어디에서도 모두 따뜻하고 평안하기를 바란다.
박시윤 답사기행 에세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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