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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과 전망-최경철] 보수는 화학비료·농약에 너무 오래 기대왔다

최경철 편집국 부국장 겸 동부지역 취재본부장
최경철 편집국 부국장 겸 동부지역 취재본부장

이명박에서 박근혜로 이어가며 보수정당(保守政黨)은 탄탄대로를 달렸다. 그러나 옥토가 황무지로 변하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2016년 9월, '최순실'이라는 이름이 일부 언론에 등장하고 당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를 바탕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향한 십자포화를 날렸다. 미르재단·K스포츠재단이 설립·모금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으며 청와대의 입김도 작용한 것이 아니냐며 야당은 따졌다. 박 대통령과 친분이 있었던 최태민 목사의 딸 최순실 씨가 K스포츠재단 인사에다 청와대 인사도 관여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최순실 게이트'의 시작이었다.

"최순실이라는 이름이 등장하자 박 대통령은 이성을 상실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최순실 공개 이전의 박 대통령과 이후 박 대통령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다가왔어요." 박근혜 정부 말기부터 문재인 정부 청와대까지 꽤 긴 기간 동안 청와대를 출입했던 기자는 박근혜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한 참모의 이 회고를 들은 적이 있다. 야권의 공세가 시작된 지 3개월도 안 된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彈劾)소추안은 국회에서 가결됐다. 이듬해 3월 헌법재판소는 박 대통령을 파면(罷免)시켰고 그 직후 그는 구속기소됐다. 박 대통령은 징역 22년이 확정된 뒤 무려 4년 9개월(1천736일) 동안 수감(收監)됐다가 2021년 말에야 사면(赦免)됐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백은 컸다. 여당은 자고 나면 싸웠고 딴살림(바른정당)도 차려졌다. 이 와중에 2017년 5월 대선은 보수가 뿔뿔이 흩어지면서 표를 분산시켰고, 과반에 크게 못 미치는 41%의 득표율에 머문 문재인 민주당 후보가 보수 분열에 힘입어 청와대로 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야당으로 전락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다시 미래통합당으로, 이내 국민의힘으로 간판을 수시로 바꿔치기했고 툭하면 비상(非常)대책위원회를 가동했다. 정치 경험이 전무한 황교안 전 국무총리를 당대표로 선출하는가 하면 민주당에 있었던 김종인을 해결사라면서 불러오기도 했고, 국회의원 경험도 없는 30대 이준석을 당대표로 뽑기도 했다. 2022년 대선이 다가오자 급한 김에 문재인 정부 검찰총장 출신 윤석열 대통령을 영입, 대선에서는 가까스로 승리했지만 정치 초보 한동훈을 데려와 당의 얼굴로 쓰다 어처구니없는 윤·한 갈등 끝에 탄핵이라는 날벼락을 또 맞았다.

비상대책위를 남발했던 국민의힘은 늘 '비상한 대책'만 좇아왔다. 허리를 굽혀 당의 발전을 가로막는 잡초를 뽑는 노력 없이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농약을 마구 뿌려댔다. 퇴비를 마련해 인재를 기를 토양을 만들지 못한 채 화학비료만 쏟아내며 보수의 토양을 스스로 황폐화시켰다. 이 연장선에서 '용병'이라는 부끄러운 이름도 호명됐다. 탄핵 정국 속에서 주저앉아 통곡만 할 이유는 없다. 민주주의는 통치자와 피치자가 언제든지 바뀔 수 있고, 패자가 언제든지 다시 일어서 선거 경쟁의 승자가 될 수 있는 역전 보장 체제이기 때문이다. 두 번이나 탄핵을 부른 보수정당이 또 한 번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면 국민은 이제 실수가 아니라 실력으로 볼 것이다. 보수정당의 원조를 자처하는 국민의힘은 제초제만 살포할 생각을 거두고 땅심을 길러 비옥한 토양으로 다시 돌려놔야 한다. 정당이 건강한 토대(土臺)를 갖춰야 그 속에서 제대로 된 민주주의자가 나온다. 국민은 시장경제 체제를 지켜줄 민주주의자를 간절히 요구하고 있다. 보수정당은 국민의 명령에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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