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정부에서 문민정부로 넘어가던 때였다. "광주의 5·18을 아느냐"고 고교생들에게 물은 건 교생실습에 나섰던 대학생이었다. 표준어와 다소 다른 억양에는 이질감이 있었다. 그는 광주 출신이라고 했다. 차분히 5·18을 이야기하는 게 외려 비현실적이었다. 역사 교과서 어디에도 실리지 않은 사건이었지만, 10년이 지나서야 그런 일이 있었음을 알게 된 게 놀라웠다.
충분히 당황할 만한 이야기와 주장이었으나 언제 어디서든 구글링으로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던 때가 아니었다. 언뜻 수긍하기 힘들었던 간증(干證) 같은 얘기들이 역사의 장면이 된 건 대학 입학 후 5월이 됐을 때였다. 혐오감이 이는 강렬한 시각적 자료와 함께였다. 분명 일어났던 일인데 알려지지 않았던 일이었다. 역사 교과서가 전부가 아니고, 다르게 보는 시각이 얼마든지 있다는 걸 인지한 때였다.
지금이야 일단락됐지만 경산 문명고의 역사 교과서 채택 논란 당시 착잡한 심정이었다. 역사를 보는 눈이 교사와 교재에 따라 고정될 수 있다는 주장 탓이었다. 하지만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만으로 학생들이 역사를 인식할 것이라는 우려는 억지에 가깝다. 문명고 역사 교사들이 역사의 한쪽 면만 가르칠 것이라거나 학생들이 역사 관련 콘텐츠의 주입형 학습을 그대로 따를 것이라고 확언할 수 없다. "이건 시험에 나오니 꼭 외워라"는 식의 1980, 90년대 교수법이 통하는 시대가 아니다.
교육부 검정을 받은 '한국학력평가원'의 교과서 채택으로 문명고 학생들이 우파가 되는 일은 없다. 반대로 '깨어 있는' 역사 교과서로 배우면 올바른 시민의식이 싹틀 거라는 것도 편협한 기대에 가깝다. 더구나 그렇게 자리 잡은 역사적 시각이 고정불변이라 보는 건 기우(杞憂)다. 역사관은 살아가며 여러 차례 바뀔 수 있다.
종교적 신념을 모태(母胎)로 한 사학재단이 세운 학교에서는 채플(Chapel) 수업이 들어가 있다. 학생 중 그 종교를 믿지 않는 이를 적극적으로 전도(傳道)하려는 목적도 아니고, 교리를 전적으로 따르지 않는다 하여 퇴학 등 극단적 조치를 내리는 것도 아니다. 이런 시각과 시선도 있음을 소개하는 계기로 작동한다고 봐야 한다. 가르치는 대로 받아들일 거라는 오판은 학생 역량을 무시하는 폭력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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