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탄핵 이후 대한민국은 사실상 '선장'이 부재한 상황이다. 우왕좌왕하는 사이 거대한 폭풍이 몰려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백악관 입성이 눈앞에 닥친 폭풍이다. 20일 취임식을 계기로 본격적인 트럼프 시대가 도래한다.
트럼프 2기 미국은 공화당이 우세한 의회와 충성파로 채워진 관료들의 지원을 받는 강력한 트럼피즘(Trumpism:트럼프 당선인의 정책과 정치적 아이디어)이 뉴노멀(New Normal)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미국은 급격하게 트럼프화(Trumpification:트럼프의 정치적 아이디어나 영향력이 구현되는 것)되면서 트럼프 추종자들이 정치적 주류로 자리 잡을 것이다. 트럼프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미국 우선주의
트럼프 당선인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내세우며 고립주의적 대외정책 방침을 거듭 밝혔다. 미국 우선주의는 패권국으로서의 역할을 축소하고, 미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겠다는 정책 기조다. 미국이 실질적인 이익을 얻지 못하는 곳에서 더 이상 '세계의 경찰'로서 역할을 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동맹국가에도 철저한 거래적(transactional) 동맹관을 적용한다. 미국의 전통적 동맹국들에게 '공정한 몫을 지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방위비 증액을 압박하는 등 동맹관계에 긴장을 초래했다. 트럼프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에 방위비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5%로 증액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현재 나토 회원국 32개국의 방위비 지출은 GDP 대비 평균 2.71%다.
그는 지난 8월 나토 회원국들을 향해 "수년간 GDP 2%에도 못 미치는 방위비로 미군의 부담을 늘렸다. 나토 회원국이 계속해서 방위비 분담에 불공정한 태도를 보이면 미국은 나토를 탈퇴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놨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는 공화당의 정강 정책에 반영돼 공화당의 공식 정책 기조로 자리 잡았다. 이는 과거의 전통적 가치와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로 돌아가기 어렵다는 것을 시사한다. 냉전 이후 20년 이상 누려온 미국의 패권적 지위의 쇠퇴와 함께 미국이 더는 국제 문제에 자유롭게 개입할 수 있는 물적·전략적 여유가 없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김도희 국회입법조사처 외교안보팀 입법조사관(정치학 박사)은 "미국 우선주의는 이미 광범위한 미국 내 지지를 확보했고, 미국 정치의 주류로 자리 잡았다"며 "앞으로는 최대위협국인 중국 견제에 초점을 맞춘 채 자국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미국과 함께 살아야 한다. 변화하는 국제질서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방안을 진지하게 모색해야 할 때"라고 했다.
◆거래적 접근
미국 우선주의 외교의 핵심은 거래적 접근(Transactional Approach)이다. 성공한 사업가 출신다운 관점이다.
예컨대, 트럼프는 미국의 국익에 직접 도움이 되지 않는 해외 군사 활동에는 개입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가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X)에 올린 시리아 내전에 관한 글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트럼프는 "어떤 경우든 시리아는 엉망진창이지만, 우리의 친구가 아니며, 미국은 이와 아무런 상관이 없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싸움이 아닙니다. 그냥 두세요. 관여하지 마세요"라고 했다.
이러한 기조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즉각 종식을 주장하는 입장과도 맞닿아 있다. 그는 취임 후 우크라이나 전쟁 종결을 위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겠다는 의사를 여러 번 밝혔다.
중국 견제와 보호무역주의의 강화에도 거래적 접근 사고가 드러난다. 트럼프 1기 당시 미중경쟁은 무역 분쟁으로 본격화됐고, 트럼프는 중국의 불공정 무역관행과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를 문제로 삼아 중국산 제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한 바 있다.
대중국 강경 정책은 트럼프 2기에서 더욱 강화된다. 대선 기간 동안 트럼프는 보편적 기본관세 10~20% 부과, 트럼프 상호무역법(Trump Reciprocal Trade Act) 제정, 항구적정상무역관계(Permanent Normal Trade Relations, PNTR) 종료를 통한 대중국 고율 관세(평균 약 60%) 부과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경제정책은 적국과 동맹국을 가리지 않는다. 트럼프의 거래적 동맹관에 기반하면 동맹이기 때문에 특별한 대우를 하는 것은 오히려 이상하다. 트럼프 입장에서는 동맹도 똑같은 거래의 대상일 뿐이다. 미국을 상대로 대규모의 무역흑자를 내어선 안 되며 미국의 안보 지원에 대해 비용을 부담해야만 공정한 것이다.
◆주한미군 분담금은 바로미터
우리 입장에서는 주한미군 주둔 비용 분담금(주한미군 분담금)이 당면한 현안이다. 지난해 10월 한국과 미국은 2026~2030년 적용되는 제12차 한·미 방위비분담 특별협정(SMA)에 합의했다. 2026년 분담금은 1조5천192억원이고, 2027~2030년 물가상승률에 연동해 분담금이 인상되지만 상승률이 5%를 넘지 않도록 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재협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트럼프는 대미 무역 흑자를 내는 한국의 안보를 미국이 책임지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실제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는 2020년 166억달러, 2021년 227억달러, 2022년 280억달러, 지난해 역대 최대인 444억달러(60조원)를 기록했다.
미국 국방부 분석에 따르면 주한미군 주둔 총비용 중 미국이 78%, 한국이 22%를 담당하고 있다. 일본은 주일미군 주둔 비용의 75%를 내고 있다. 일본에 비해 한국이 특혜를 받고 있다는 게 트럼프의 인식이다.
트럼프 1기 당시 한국이 주한미군 분담금 인상 요구를 수용하지 않자 그는 여러 차례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했다. 트럼프 1기 국방장관 마크 에스퍼는 회고록에서 2019년 분담금 5배 인상 요구를 한국이 수용하지 않자 트럼프는 주한미군 철수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두 번째 임기 때 우선순위로 하자"며 겨우 말렸다고 했다.
2기에서도 분담금 인상 요구가 수용되지 않을 경우 주한미군 철수 또는 감축 주장이 반복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1기에 비해 2기 행정부의 참모와 관료들이 트럼프에 대한 충성심이 더 높고, 상·하원 모두 공화당이 우세한 탓에 트럼프의 의견이 받아들여질 공산이 크다.
주한미군 분담금의 대규모 증액 요구는 주한미군 철수 또는 감축,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확장억제 체제 등 동맹의 균열을 야기할 수 있는 잠재적 요인들에 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한국 내 반미감정을 고조시키고, 북한을 비롯한 주변국에 잘못된 신호를 줄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 일부 측근들은 대중국 견제를 강화하기 위해 해외 미군 재배치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점을 고려할 때 일부 감축이나 재배치 또는 임무나 역할의 변경 가능성이 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시대를 맞아 철저한 준비를 당부했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한반도 주변 정세와 한미 관계가 급변하고 다양한 외교·안보 사안들에 새로운 현안과 도전적인 과제들이 들이닥칠 것으로 예상된다. 유연한 사고와 실리적이고 합리적인 관점에서 만반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분담금 인상을 고집하면 적정 수준에서 인상을 수용하는 대신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권 차원에서 일본 수준의 우라늄 농축과 재처리 허용, 원자력 잠수한 개발 허용, 전술핵이나 핵 잠수함의 한시적 조건부 한반도 재배치 등 반대급부를 얻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춘근 국제정치아카데미 대표(정치학 박사)는 "미국은 중국을 세계무역 체제에서 아웃시키는 게 목표다. 중국 제조업이 약해지면 우리에게는 기회가 온다. 트럼프 2기를 잘 활용하면 전략적으로 경제적으로 우리에게 이익"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주한미군 분담금의 3분의 1가량을 내고 있다. 현재의 3배를 내면 우리가 분담금 모두 담당하는 구조다. 충분히 협상이 가능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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