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김수용]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김수용 논설실장
김수용 논설실장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수석(首席) 칼럼니스트 마틴 울프는 얼마 전 글로벌 저성장 시대의 도래와 관련한 기고에서 고속 성장 시대의 종말 가능성과 경제 성장 둔화가 초래하는 정치적 양극화를 언급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선진국들은 3~12배에 이르는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를 경험했다. 그러나 가파른 성장은 1차 석유 파동이 벌어진 1973년까지였다. 이후 50년간 금융위기와 코로나 팬데믹 등을 겪으며 세계 경제는 느린 저성장의 시대로 옮겨 갔다. 경제 강대국들에 기회로 비쳐지던 중국의 급부상은 급기야 강대국들의 위기감만 고조시켰다. 세계화 물결 속에 교역 확대를 디딤돌 삼아 끝없이 성장할 것만 같던 자본주의에 심각한 위기가 찾아오고 말았다. 게다가 미국은 관세 장벽을 쌓으며 탈세계화를 주도할 태세다.

인류 역사에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역사는 극히 짧다. 인간의 순수한 동기에 기반한 두 시스템은 상호보완적으로 20세기 성장을 주도했지만 과연 100년 뒤에도 지배적 이데올로기일지는 의문이다. 경쟁적 시장경제 체제에서 민주주의가 꽃을 피웠고, 탄탄한 민주주의 기반 위에서 자본주의는 성장을 거듭했다. 이상적으로 보였던 두 시스템의 결합은 오히려 쉽사리 파국(破局)으로 치달을 수 있음도 보여 주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 시스템이 붕괴된 국가에선 민주주의가 훼손됐고, 망가진 민주주의는 경제 회복의 덜미를 잡고 말았다. 저성장, 역성장의 시대가 찾아오고 있다.

마틴 울프는 저서 '민주주의적 자본주의의 위기'에서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를 허울뿐인 키메라(서로 다른 동물이 한 몸에 결합된 괴물)에 불과하다고 했다. 국가 통치자가 정치와 경제까지 통제해 정치권력과 경제활동의 공정한 경쟁이 존재하지 않아서다. 시진핑과 중국 경제의 위기가 단적인 예다. 그럼에도 불구, 민주 국가에서 경제적 파탄을 경험한 민중은 우매(愚昧)할 정도로 극단적 주장에 쉽게 빠지고, 자본주의를 파괴하는 포퓰리즘을 잉태하게 만든다. 경제 붕괴를 가져온 남미와 유럽의 포퓰리즘은 민주주의와 쌍둥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전대미문(前代未聞)의 고도성장을 이루게 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21세기에 위협받고 있다. 망하지 않으려면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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