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김미옥] 2024년 끝과 시작

김미옥 수필가(대구보건대 교수)

김미옥 수필가(대구보건대 교수)
김미옥 수필가(대구보건대 교수)

떠나보내는 마음은 하얗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어떻게 하면 내 마음을 그대로 전할지 머뭇거리게 된다. 젊은 날 이별은 사람 생각이 먼저 앞섰다면 지금 내 속에 담긴 이별은 시간과의 매듭이다.

멈추고 싶은 걸까. 아니면 더 빨리 스쳐 지나고 싶은 걸까. 사람 사이에서 잠시 서툴고 불편한 무게를 느낄 때면 빛의 속도로 사라지길 바란다. 반면에 생활 속에 깊게 연결된 인연을 떠올리면 발목이 잡힌다. 아니 어쩌면 스스로 머물고 싶은 심정이 더 큰지 모른다. 한 해 마지막에서 그동안의 매듭과 이별을 동시에 떠올린다.

하루의 시작은 늘 가족 단체문자로 안부를 보내며 출근한다. 바쁜 업무로 세심하게 집안을 챙기지 못하는 미안함과 멀리서 수고하는 가족에 대한 고마움이 더해진다. 오늘도 한결같은 시작으로 아침을 여는데 묘하게 마음이 울컥한다. 내가 '이랬다면'이란 생각이 속에서 싹을 틔우더니 자꾸만 스스로 작아지는 기분에 빠지는 게다. 급기야 모든 게 내 탓 같더니 주체할 수 없다. 결국 눈물을 쏟아내고 사랑 이모티콘을 올리며 감정을 매듭지었다.

올해 업무의 마지막 행사를 위해 참석자들이 모였다. 마이크를 잡고 내용을 전달하려는데 코끝이 찡해온다. 속에서 뜨거운 게 올라와 이대로는 곤란하다. 멈췄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겨우 입을 떼는데 북받치는 감정이 목젖에 걸려 목소리가 흔들린다. 이럴 상황이 아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에 스스로 놀랬다. 뭔가 응집되었던 게 풀리려는 걸까. 일 년을 지나오면서 책임감이 무겁게 가슴을 누르고 있었다는 걸 정작 끝나면서 알아차렸다. 다행스런 이별이었다.

매년 한 해를 보낼 때 즈음이면 시간을 지나는 게 자식을 키우는 심정과 닮았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부터 성장하면서 초등, 중등, 고등으로 매듭지어져 또 다시 시간의 흐름에 동반하고 있다. 새롭고 탄탄한 발돋움으로 사회 속으로 뻗어가고 있는 게다. 꼭 일 년을 생각지 않아도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업무와 감정을 매듭짓고 이별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 경험이 쌓이면서 묵은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희망하는 거 아니겠는가.

그런 날이 있다. 혼자 하염없이 속을 흘려보내고 싶은 마음이 들 때 하얀 종이를 꺼낸다. 먼저 곁에서 지지하고 다독여 준 사람 이름을 적어 고마움을 얹는다. 미안하고 안타까운 이에게는 애타는 속내를 풀기도 한다. 특히 해마다 생일이면 고운 시(詩)를 보내주는 존경하는 분께 이 기회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2024년이 지나간다. 때로는 뜻한 바대로 이뤘지만 어떤 경우는 힘겹게 지금에 이르렀다. 보이지 않는 시간은 육신을 감아 주름으로 매듭을 짓고, 묵은 사연에게 이별을 고하며 새로운 시작을 기대한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