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된 후로 책방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품은 적이 단 한 순간도 없었다. 책 읽는 인구는 줄고, 디지털시대는 종이책의 소멸을 예고하는 듯했으며 책방으로 밥벌이가 가능하다는 소리를 어디서도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출판사도 작가도 책도 모두 힘들다고 아우성이건만 독립서점은 꾸준히 늘어나는 기현상에 아연실색하기도 했다. 남의 밥벌이 걱정이나 하는 오지랖을 부리고 싶진 않다. 세상 모든 일이 기형적으로 변하는 시절, 나는 좀 색다른 아니 별난 책방을 차리고 싶다는 몽상에 빠진다. 비현실적이라고 비웃을지 몰라도, 그렇다면 적어도 아이디어를 빼앗길 염려는 없겠다.
2023년 국민 1인당 평균 독서량은 3.9권으로 나타났다. 한 해 동안 책을 한 권이라도 읽은 사람은 43%에 불과했다. 즉 국민 10명 중 6명은 1년에 한 권도 읽지 않았다. 책 읽는 연령별로 보면 20대가 74.5%로 가장 높았고, 60대가 가장 낮았다.
서점협회 통계에 따르면 대구지역 내 독립서점은 25곳이다. 이 중에서 하루에 책을 1권 이상 파는 서점은 몇 군데나 될까? "하루에 한 명도 올까말까 하다." 어느 독립서점 주인의 푸념이다. 그러니까 책을 파는 건 언감생심, 독립서점을 찾는 손님이 아예 없다는 얘기다. 서점마다 장서량과 큐레이션도 차이가 확연할 터이나, 서점 특성을 살려 독립출판물에 공간을 할애하면 소위 팔리는 책이 들어갈 자리는 더 좁아진다. 서점을 찾는 주요 연령층이 20~30대라 쳐도 통계에서 보듯이 독서와 책 구매가 독립서점을 통하기란 기대하기 힘든 현실이다. 그래서...
내 책방에는 대중서를 단 한 권도 들여놓지 않을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흔히 생각하는 그런 책은 한 권도 팔지 않을 거다. 당연히 주문도 불가능하다. 다수의 독립서점은 배송비 아낄 요량으로 손님 주문 2권에 주인이 읽고 싶은 책 8권을 포함해 10권을 총판에 주문 넣기도 한다더라. 세상에! 장사의 기본도 모르는 이 대책 없는 낭만주의를 어쩌면 좋으냐.
서점이라고 반드시 많은 종류의 책이 있어야 할까? 어차피 구색을 맞추지도 못할 텐데. 동네책방을 찾는 사람도 적고, 무슨 책을 들여놔도 안 팔리는 마당에 책을 바리바리 쟁여놓아 악성재고를 떠안는 우를 범하고 싶진 않다. 요컨대 내 공간에는 오직 내 책으로만 채울 거다. 내가 출간한 책 5종(어쩌면 6종이 될 수도 있고)을 각 50~100권씩 받아서 서가를 메울 생각이다. 대체로 인간은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선택장애를 겪기 마련. 진정한 맛집은 단일메뉴로 승부하지 않나. 출판사는 보관 공간을 줄이고, 나는 내 책 홍보하면서 판매까지 이어지면 금상첨화이고. 서로 손해 볼 게 없는 장사가 아니냐는 거다. 주문 배송도 간편하니 1거3득이다.
이쯤 되면 철딱서니 없는 애들도 아니고, 하며 혀를 차는 분도 계실 터. 뭐해서 먹고 살지 괜한 걱정하지 마시라. 아침 7시에 열고 밤 9시에 닫을 예정인데, 내 작업실 겸 살롱 겸 강의실로 사용할거라, 책 아니더라도 채울 콘텐츠는 얼마든지 있다. 설마 하루 종일 컴퓨터 고스톱이나 치고 앉았을라고. 나는 계획이 다 있다니까 그러시네. 참고로, 오후 3~5시까지는 주인장 컨디션 조절을 위한 브레이크 타임이다.
올해 마지막 칼럼을 개인적인 몽상으로 채웠지만, 하수상한 시절일지언정 책을 읽고 살자는 완곡한 요청이다. 한 해 동안 읽어주신 독자께 감사드리며 온전한 평화를 기원한다. 을사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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