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성탄절을 맞아 들뜬 분위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대구의 쪽방촌 거주민 등 주거 취약계층에 대한 온정의 손길이 올해 들어 크게 쪼그라든 것으로 나타났다.
25일 오전 10시쯤 찾은 대구 중구 북성로 쪽방촌. 성인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골목 사이 자리 잡은 쪽방에는 햇살 한 점 들지 않아 실내라고 하기 민망할 만큼 냉기가 들어차 있었다.
대구쪽방상담소에 따르면 이달 기준 대구 쪽방촌은 모두 536가구에 달한다. 비교적 사생활 보호가 어려운 노후 여관이나 여인숙에 사는 이들도 적잖다.
이날 대구 날씨는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2℃까지 떨어지고 가끔 강풍이 부는 등 유독 추웠다. 추위를 미처 버티지 못한 주민들이 연탄을 꺼내들면서 쪽방촌 골목에는 요즘 도심에서는 맡기 힘든 연탄 태우는 냄새가 진동했다.
머잖은 곳 도심의 들뜬 성탄절 분위기가 무색하게 이곳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곳의 한 노후 여관에서 5년째 살고 있다는 쪽방촌 거주민 곽모(53) 씨는 성탄절 계획을 묻는 질문에 "성탄절이 무슨 의미가 있나"며 "방에서 지내는 생활은 매일 똑같다"고 나지막이 내뱉었다.
곽 씨에게 주어진 공간은 3.3㎡ 남짓한 쪽방이 전부였다. 성인 2명이 겨우 들어갈 정도로 좁은 방에는 이불과 옷가지, 담배꽁초가 널브러져 있었다.
전기장판 위로 약간의 온기가 느껴졌지만 창문과 벽이 외풍을 막지 못하면서 흘러나온 냉기로 방 안 공기는 몹시 찼다.
곽 씨는 아예 갖고 있는 외투들을 옷장 대신 창문에 걸었다. 그나마 겨울철 냉기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서다.
난방은 물론 수도 설비가 열악하다는 점도 고충이다.
곽 씨는 "연탄난로로 물을 데워 사용하지만 여관에 같이 사는 사람만 20명이나 돼 물을 데워놔도 부족할 때가 많다"며 "그럴 때는 어쩔 수 없이 목욕탕을 가야 해서 여름보다 겨울 생활비가 배로 들어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쪽방촌 주민들은 시민들의 후원이 큰 폭으로 줄어든 탓에 올 겨울이 유독 춥다고 했다.
이날 방문한 A여인숙을 15년째 운영하고 있는 박모씨 역시 "작년까지만해도 조끼나 내복 등 난방용품을 지급 받았는데 올해는 절반도 못 받았다"며 "연탄은 하루에 최소 24장을 태워야 2층 건물 전체가 난방이 되는데 벌써 배부량의 4분의 1가량을 써서 내년까지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했다.
25일 밥상공동체 연탄은행에 따르면 이달 후원받은 연탄은 54만4천440장. 지난해 같은 기간 후원받은 연탄이 168만7천151장인 점을 감안하면 3분의 1도 안되는 수치다. 실제로 이날 방문한 쪽방촌에는 연말, 그것도 성탄절이면 어렵잖게 볼 수 있는 무료 식사봉사나 연탄 나누기 행사가 열리지 않았다.
대구 서구 비산동 일대에서 연탄 나눔 활동하는 대구연탄은행 관계자는 "지난해 비산동 일대에는 연탄 총 7만5천장을 250가구에 배부했지만 올해 배부량은 50%가량 줄어들었다"고 털어놨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난방용품 지원 등 일시적인 대책이 아닌 근본적으로 주거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강정우 대구쪽방상담소 사무국장은 "LH에서 원룸을 매입해서 저소득층에게 시세의 30~50% 수준으로 재분배해주는 주거 상향 지원 정책을 실시했는데 이제 남은 물량이 점점 빠듯해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대구시에서도 도시개발공사를 통해 매입임대주택 물량을 확보하고 있는데 예산 규모를 늘리는 등 더욱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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