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마무리되는 이맘때면 '신년 운세(新年運勢)'가 궁금해진다. AI가 무엇이든 대답해 주고, 달에 기지를 만들어 우주탐사를 하게 될 만큼 과학이 발달한 현대사회에도 비과학적인 운세는 여전히 우리 삶의 일부로 자리 잡고 있다. 2030 청년층들 사이에는 앱을 통해 사주(四柱)를 보거나 유튜브나 SNS에서 역술인에게 조언을 구하는 등 가볍게 무속(巫俗)을 소비하는 문화도 널리 퍼져 있다.
단순히 재미 삼아 운세를 보는 것일 수도 있지만, '카운슬링 효과'를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회가 고도로 발달할수록 개인에게 요구되는 역할이 확대되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커진 것이 무속을 찾게 되는 원인이라는 것이다. 부담감과 불안감에 운세나 무속인의 말이 정서적 위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취업, 연애, 결혼, 진로 등 중요한 선택을 앞둔 청년층들이 점술(占術)에 기대는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우리 정치사에도 '큰일'을 앞두고 무속이 흔하게 등장한다.
1972년 박정희 전 대통령은 유신헌법 제정을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하는데, 이때 10월 17일이라는 날짜는 당시 김성락 중앙정보부 판단기획실장이 건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날짜는 김 실장이 청와대 북악산 자락 세검정에 용하기로 소문난 점쟁이를 찾아 받은 것이라고 한다.
전두환 전 대통령도 6·29선언으로 대통령 직선제 결정을 한 이후 대선 일자를 12월 16일로 잡았는데, 이것 또한 당시 여권의 선거 관련 전문 점쟁이라고 불리는 '청운동 도사'에게 점지받아 결정했다고 한다.
1997년 대선 때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부모의 묘를 이전했다. '육관 도사'로 불린 지관 손석우에게 길지(吉地)를 받았고, 전남 신안군 하의도에 있던 부친 묘와 포천에 있던 모친의 묘를 경기도 용인으로 이장했다. 또 거주지를 동교동에서 일산 정발산동으로 이사했는데, 이후 대권 4수생의 한을 풀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김 전 대통령 이후 김종필, 이회창, 이인제 등 대권주자들 사이에 조상 묘 이장(移葬)이 유행처럼 번졌지만, 알다시피 효과는 없었다.
매번 대선을 앞두면 당선자를 예언하는 역술인들도 등장한다. 김일성 사망 날짜를 맞춰 유명해진 심진송 씨는 1997년 대선 당시 대부분 무속인들이 이회창 후보의 당선을 예언한 가운데 김대중 전 대통령의 당선을 예측해 더욱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심 씨도 2002년 대선에서는 손학규 후보가 당선될 것이라 말하며 예언에 실패했다.
선거를 앞둔 후보가 무속인을 찾아 점사를 보는 것이 큰 흠도 아니다. 그들도 불안한 상황에 대한 불확실성을 조금이라도 제거하고 싶을 테니. 하지만 최근 정치에 등장한 무속은 분명 카운슬링 수준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무속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주변에서 각종 도사와 법사, 보살이 줄줄이 나오더니 이들이 중요한 결정에 직접 개입했다는 의혹마저 제기되고 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에는 정치 뉴스가 온통 무속인들 이름으로 도배돼 버렸고, 국민 삶의 어려움을 해결해 줄 정책 소식은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우리 정치의 신년 운세가 궁금해진다. 정치에 드리워진 무속의 그림자가 새해에는 거둬질 수 있을까. 부디 권력자들이 무속인들의 목소리가 아닌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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