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278>소나무는 푸르네 한겨울에도

미술사 연구자

김정희(1786~1856),
김정희(1786~1856), '세한도(歲寒圖)', 1844년, 종이에 먹, 23.3×70.2㎝,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세한도'는 머나먼 제주도에 유배 중이던 추사 김정희가 제자인 중국어 역관 이상적에게 선물한 작품이다. 58세 때였다. 살아 돌아올지도 확신할 수 없는 나이였다. 김정희와 북경 인사들과의 교신을 조력하며 최신 학술 동향과 자료를 전해주던 이상적은 귀양살이하는 김정희에게 이전과 다름없이 정성을 다했다.

이상적은 중국인들도 구하기 쉽지 않은 귀한 책을 북경에서 구입해 서울의 유력자가 아니라 제주의 스승에게 보냈다. 국경을 넘고 바다를 건너온 책들을 보며 김정희는 '세한연후(歲寒然後) 지송백지후조야(知松栢之後凋也)'라는 공자님 말씀을 떠올렸고, 이 비상한 감정은 '세한도'를 탄생시켰다.

김정희는 특별히 제목까지 명명했다. 예서로 '세한도' 세 글자를 가로로 먼저 써넣고, 이어서 세로로 이보다 연한 먹의 작은 글자로 '우선시상(藕船是賞)', '완당(阮堂)'을 두 줄의 행서로 쓴 다음, 가로가 긴 백문인(白文印) '정희(正喜)'를 찍어 총 9글자 낙관을 완성했다. 제목과 쌍관과 인장이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려 이 두루마리를 손에 들고 펴는 순간, 눈이 닿는 첫 부분부터 김정희의 침착통쾌한 글씨와 탁월한 구성력이 확연히 느껴졌을 것이다.

'세한도'는 나무 네 그루, 집 한 채, 메마른 땅을 그렸지만 그렸다기보다 이 물체들을 표시했다고 할 정도로 간단한 그림이다. 붓이 머금은 먹의 물기가 극히 적은 바짝 마른 조필(燥筆)이어서 나무와 집과 땅은 먹이 물을 머금은 수묵의 유연한 농담이 아니라 먹색 자체의 깐깐한 강약이 붓의 필압(筆壓)에 따라 투명하게 드러났다. 한 필 한 필 진중한 붓질은 세한송백의 이념을 더욱 시각적으로 감지시킨다.

김정희는 이 그림을 그리게 된 심경을 이상적에게 주는 편지 형식으로 서술하며 다른 종이에 네모 칸을 친 다음 또박또박 해서로 썼다. 이 발문을 그림에 이어 붙이고 이음새에 합봉인(合縫印)으로 '완당'을 찍었다. 김정희 또한 성의를 다해 고마운 마음을 제자에게 전했다.

감격한 이상적은 이 작품을 북경으로 가지고 가서 청나라 명사 16명에게 찬문을 받았다. 김준학, 오세창, 이시영, 정인보 등 우리나라 명사의 글도 덧붙여졌다. '세한도'가 문기(文氣)라는 심미성의 진정한 현현임을 지필묵에 익숙한 지식인들은 잘 알아보았다.

'세한도'는 세심한 제목 부분, 서예의 필성(筆性)으로 그린 그림, 마음이 담긴 문장과 글씨, 어울리는 인장 등 김정희의 시서화인(詩書畵印)이 융합된 작품이다. 김정희가 받은 인간에 대한 감동은 그의 지성과 예술적 감각을 통과하며 붓과 먹 자체의 아름다움인 필묵미의 '세한도'를 남겼다. 이렇게 탄생한 '세한도'는 2020년 소장자 손창근 선생에 의해 국립중앙박물관에 안착함으로서 인간미(人間美)를 더욱 더하게 되었다.

미술사 연구자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