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새론새평-김종민] 공화국의 위기 앞에서

김종민 변호사(S&L 파트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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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민 변호사(S&L 파트너스)

그리스어 '아포리아'는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것이 없는 상태' '길이 없고 출구가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2024년을 마감하고 희망의 새해를 맞이해야 할 이때 대한민국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아포리아 상태다.

비상계엄 선포가 결정적 계기가 됐지만 이재명 대표 방탄을 위한 더불어민주당의 '무제한 탄핵' '무제한 특검' 작전은 정부 마비 사태를 불러왔고 무안공항 항공기 추락 참사까지 겹치면서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을 맞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제도적 자제와 상호 관용을 무시한 거대 야당의 폭주다. 모든 헌법은 완벽하지 않다. 완벽하지 않은 틈새를 제도적 자제와 상호 관용으로 메꿔 나가는 것이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나가는 국가들의 특징이다. 선출된 독재자들이 제도적 특권을 휘두르며 폭주할 때 적대적 투쟁이 시작되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승리하겠다는 유혹에 굴복하면 민주주의를 전면 부정하는 반체제 집단이 등장한다고 한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렛의 지적이 어느새 우리 현실로 다가왔다.

프랑스어 '쿠데타'(Coup d'Etat)는 주먹으로 국가에 한 방 먹인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군사쿠데타를 의미하지만 합법을 가장한 헌정 질서 마비 시도 역시 국민이 선출한 국가권력 전복을 목적으로 한다면 '제도적 쿠데타'라고 못 볼 바 아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경우 탄핵 사유가 없다. 위헌적인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는 대통령을 대신한 헌법의 수호자로서 당연한 것이다. 오히려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아 위헌 상태를 유발하는 것이 탄핵 사유가 될 것이다.

헌법재판관을 임명하지 않았다는 것도 여야 합의로 임명하도록 정치적 조정에 회부한 것뿐이다. 대통령의 '의무 불이행'을 이유로 한 탄핵 사례는 2012년 파라과이의 페르난도 루고 대통령의 전례가 있다. 공유지를 무단 경작하던 농민들이 경찰과 충돌해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는데 사건 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며 사건 발생 6일 만에 탄핵을 했다. 어느새 우리가 남미 정치 수준이 되어 버렸다.

김건희 특검법의 경우 15개의 수사 대상이 너무 포괄적이고 풍문, 소문 수준의 '의혹'을 모두 포함시켰다. 좌파 유튜브에서 제기한 의혹도 모두 수사 대상이 된다. 특히 제2조 제13호 및 제14호가 문제다. 제13호는 각종 의혹 사건에 대한 조사 및 수사를 고의적으로 지연·해태(懈怠)·봐주기 하는 등 공무원의 직무유기 및 직권남용 행위를, 제14호는 각종 의혹 사건에 대한 조사 및 수사를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방해한 행위를 모두 수사할 수 있게 했다.

이에 의하면 김건희 특검의 수사 대상은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실 관계자, 검찰총장, 수사 검사 등이 모두 포함된다. 실질적인 '윤석열 특검'인 것이다. 김건희 의혹 수사를 핑계로 윤석열 정권 전반을 민주당이 지명해 원격 조종하는 특검으로 정치 수사를 하겠다는 것이 본질이다. 정치적으로 중립적이고 공정하며 최후의 수단이어야 할 수사가 민주당의 정치적 도구로 이용되는 최악의 선례가 될 수밖에 없다.

지금은 공화국의 위기 상황이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말하지만 국회 해산권도 없고 사전 위헌 심사제도 없는 1987년 헌법 체제가 국회 다수당의 폭주 앞에 얼마나 무력할 수 있는지 확인시켜 주고 있다.

그러나 위기는 기회를 만들고 문제는 해결되기 위해 존재한다. 아포리아는 인간과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분별력을 낳는다. 에드먼드 버크는 "악인들이 연합할 때 선한 사람들도 제휴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선한 사람들이 차례로 무너질 것"이라고 했다. 역설적이게도 정치가 불러온 국가 사회적 위기는 국민들로 하여금 각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버락 오바마는 미국 민권운동 50주년 기념행사에서 "미국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믿음, 우리는 스스로를 비판할 수 있을 만큼 강하다는 믿음, 새로운 세대들이 선대의 불완전함을 돌아볼 수 있고 우리의 높은 이상에 부합하는 나라로, 우리나라를 새롭게 만들 수 있다는 힘이 우리에게 있다는 믿음"을 말했다. 새로운 세상을 상상해 내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다. 공화국의 위기 앞에 우리는 스스로의 미래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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