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양진오의 대구경북의 집이야기] 하늘 아래 첫 동네,청도 구룡공소

평안, 복된 세상 꿈꾸며…세상 등지고 세운 '교우촌'
발각되면 고문과 처형 박해 피해…외진 곳에 숨어들어 신앙 이어가
화려하지 않지만 소박하고 단정…작고 아늑한 내부 기도하기 적합

구룡산에 터를 잡은 구룡공소에 은총의 상징처럼 흰 눈이 쌓였다.
구룡산에 터를 잡은 구룡공소에 은총의 상징처럼 흰 눈이 쌓였다.

◆산으로 올라간 사람들

차디찬 바람을 맞고 싶다. 혼탁한 마음을 번쩍 뜨이게 할 만큼 매서운 바람. 꽁꽁 얼어 생명이라곤 찾아볼 수조차 없는 차디찬 곳에 이르고 싶다. 깊은 고요를 만나 거룩한 침묵을 배우고 싶다. 극도로 혼란한 세상이다. 심란한 마음이 일상을 지배했다. 마음이 먼저 부대낀다. 불안함이 육신을 옥죈다. 어지러운 말들이 쇠말뚝처럼 굳어 명치 끝에 박힌다. 숨 쉬는 것부터 먹는 것, 잠자는 것에 이르기까지 뭣하나 편치 않다.

오래전, 산으로 올라간 이들이 있었다. 어지러운 세상이 이유였다. 산 아래 세상에서 그들은 자유롭지 못했다. 세금을 가혹하게 거두어들이고, 무리하게 재물을 빼앗는 가렴주구(苛斂誅求)의 세상은 고통스러웠다. 임금은 백성을 어여삐 여기지 않았고, 탐욕에 찌든 탐관오리들의 착취는 혹독했다. 불의와 박해로 얼룩졌다. 의지하고 기댈 곳 없던 백성들은 자신들을 구원해 줄 대상이 절실했다.

천주를 받아들인 이들은 산 아래 세상을 피해 산으로 올랐다. 천주와 함께 평안을 누리며 복된 세상을 살기 위해서였다. 산이 내어준 터는 환한 빛이 가득한 하늘 아래였다. 산마루 구릉을 개척해 집을 짓고 논밭을 일구었다. 오직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에 의지해 천수답(天水畓) 농사를 지었다. 부자도 가난도 없었다. 함께 기쁨과 슬픔을 나눴다. 사람의 삶이란 도저한 절망 속에서도 이토록 질기다. 세상은 이 마을을 하늘 아래 첫 '교우촌'이라 불렀다.

구룡공소 정문에는
구룡공소 정문에는 '천주 공교회 성당'이라는 한자 현판이 당당하게 내걸려 있다.

◆구룡마을 가는 길

모처럼 도심에도 눈발이 날린다. 산골 마을로 가는 길이 험준하다는 걸 알면서도 길을 나선다. 거룩한 마을에 이르고 싶다. 근심하는 마음을 잊고 싶다. 봄, 여름, 가을, 겨울에 이르기까지 산이 주는 기운과 마을이 주는 위안은 적잖은 힘이 되었다. 세상에서 쌓인 마음의 무게를 덜어낼 기운과 새해를 잘 맞이할 갱생의 힘이 필요했다.

경산 자인면을 거쳐 용성면으로 접어든다. 들판엔 겨울이 완연하다. 황량하다 못해 처연하다. 구룡로 재 마루에 차를 두고 걷는다. 구룡마을까지 1.6km, 벌써 마음이 맑아지고 경건해진다. 몇 번의 방문에서 생긴 알아감의 이유겠다. 사람 지나다닐 만큼만 생겨난 길, 폭 좁은 길을 차를 이용해 가는 일은 여간 고역이 아니다. 교행이 어렵다. 길이 이렇지만 걸어야 한다. 이것이 마을과 공소에 대한 예의이자 경의라 여긴다.

길 초입부터 오르막이 심하다. 호흡이 거칠어지니 몸에 열기가 난다. 마음이 가뿐하다. 바람은 시려도 춥지 않다. 서리 먹은 낙엽이 햇살에 반짝인다. 오르면 오를수록 풍경은 점점 깊고 넓어져 산 아랫마을이 도드라진다. 산길에는 빌딩도, 간판도 없다. 오가는 이도 없다. 이따금 숲을 헤치다 인기척에 달아나는 산짐승이 있을 뿐, 날 것 그대로다. 깊은 겨울과 고요, 그리고 나그네의 발소리만 존재한다.

구룡공소 내부모습.세상의 교회처럼 크고 화려하지 않아 오히려 더 반가운 구룡공소 경당이다.
구룡공소 내부모습.세상의 교회처럼 크고 화려하지 않아 오히려 더 반가운 구룡공소 경당이다.

◆견디고 이룬 사람들

공소((公所)는 본당 주임 사제가 상주하지 않고 순회하며 사목하는 신자들의 공동체를 의미한다. 청도 구룡마을 공소 역시 궁벽한 곳에 있다. 청도군 운문면, 경산시 용성면, 영천시 대창면과 북안면의 경계에 솟은 구룡산(675m) 정상 가까이에 터를 잡았다. 훗날 구룡마을의 가톨릭 신앙이 경산, 영천, 청도, 경주로 뻗어나간 이유가 있다. 산세의 형세 덕이다.

겨우 여덟 가구가 산다. 오지답게 신자가 드물고 사제가 상주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공소의 가치마저 궁벽한 건 아니다. 공소의 가치는 단순한 예배 공간을 넘어선다. 한국 가톨릭교회의 모태로, 신자들이 신앙을 지켜낸 생명의 터전이었다.

태초에 없는 마을이었다. 수풀이 우거진 황무지였다. 산으로 오른 이들이 삶을 영위하기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길을 내고, 마을을 세웠다. 나그네는 그들이 정성으로 낸 길을 걷는다. 어느새 공소가 지척이다. 돌담과 기와를 얹은 한옥 건물엔 눈이 소복이 쌓였다. 고요해서 더욱 평화롭다. 대문으로 이어지는 내리막길엔 무수히 많은 발자국이 어떤 말처럼 찍혔고, 뒤란으로 이어지는 길엔 쌓인 눈을 아무도 밟지 않아 더욱 성스럽고 거룩하게 빛난다.

1801년 신유박해가 종결되었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임금의 법령과도 같은 척사윤음(斥邪綸音)을 반포하여 천주교를 사교로 몰아 박해한다. 1815년(순조 15년), 경상 땅 전역에서 을해박해가 터진다. 이전부터 가톨릭 신자들이 청송 노래산과 진보 머루산에 은신하고 있었다. 목숨을 담보해야 했다. 발각되면 다수는 고문과 처형을 면치 못했다.

도시의 어떤 성당보다 경건한 구룡공소 한옥 경당이 나그네를 반긴다.
도시의 어떤 성당보다 경건한 구룡공소 한옥 경당이 나그네를 반긴다.

신자들은 자신들이 받아들인 천주를 포기하지 않았다. 깊은 산골이나 외진 곳에 숨어들어 공소를 중심으로 신앙을 이어갔다. 신앙만 이어간 게 아니라 삶을 이어갔다. 구룡공소는 처형의 공포에도 배교자나 순교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서로를 위하는 더불어 사는 거룩한 공동체 터전이었다.

'천주 공교회 성당'이라는 한자 현판이 공소 정문에 걸려 있다. 도시의 성당에서는 보기 어려운 현판이다. 마치 공소의 고귀한 역사를 웅변하는 상징 같다. 공소 안으로 발을 들인다. 인기척이 없다. 그러나 공소에는 수많은 이들의 발걸음과 숨결, 기도가 배어 있다.

성모님께 인사를 드린 뒤 경당으로 들어선다. 크고 화려하지 않지만 소박하고 단정하다. 내부는 작고 아늑하여 기도하기에 적합하다. 이렇게 높은 곳에 기도하는 집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경건함이 절로 인다. 성호를 긋고 눈을 감으니 마음이 맑아진다. 경당 내부엔 흑백 사진 한 장이 걸려 있다. 옛 구룡마을의 모습이다. 구룡산 등성이에 옹기종기 지어 올린 초가가 인상적이다. 배교자도 순교자도 없었고, 산 아랫마을과도 대립하지 않았다. 모든 게 기적 같은 조화였다.

겨울 길을 걸은 나그네를 따뜻한 차로 반긴 공소회장의 환대를 잊을 수 없다.
겨울 길을 걸은 나그네를 따뜻한 차로 반긴 공소회장의 환대를 잊을 수 없다.

◆더불어 사는 마을, 하늘 아래 첫 동네

"순례 오셨어요? 길이 많이 미끄러우니 조심하세요." 공소로 향할 때, 공소에서 나올 때 누군가 나그네의 방문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마을 머슴 역할을 하고 있다는 말과 함께 공소 신도회 회장이라며 쑥스럽게 자신을 소개하는 그녀의 손엔 묵주가 들려 있다. 그러면서 언 길 걸어온 나그네를 집 안으로 들여 따뜻한 차를 대접한다.

뜻밖의 대접에 시린 몸에 온기가 돈다. "교우촌 후손이에요. 윗대 어른들이 모두 신자셨어요. 시집온 후 쭉 이 마을에서 살고 있어요." 사람이 그립지 않느냐, 불편하지 않느냐는 나그네의 질문에 "예수님, 성모님과 함께 삽니다. 외로울 여가가 없어요. 서로 돕고 살아요. 미워할 사람도 없으니 행복합니다."

예상치 못했던 그녀의 대답에 부끄러워진다. 그녀의 마음이 온화하다. 낯선 이 조차도 환대하는 이의 배웅을 받으며 공소 마을을 내려간다. 혼란스러운 세상이 눈부시다. 세상이 결코 어두운 것만은 아님을 깨닫는다. 매일 부활을 거듭하는 빛, 그 빛이 세상을 환하게 비추니 우리의 내일을 저버릴 수 없다. 머지않아 꽁꽁 언 들판에도 신생의 봄은 오고야 말 것이다. 그 봄이 우리를 행복하게 할 것이다.

양진오 대구대 문화예술학부 교수
양진오 대구대 문화예술학부 교수

양진오 대구대 문화예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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