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동 100여 평 규모의 2층 단독주택(LDK: LDK는 Livingroom, Diningroom, Kitchen의 첫 글자로 집의 구조를 나타내는 용어)에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의 과정' 지원사업으로 진행된 <러빙 시어터>(기획, 작, 사운드 강하늘 드라마터그 김지혜)의 체험 리뷰다. 텍스트를 형상화해 이미지 형상으로 전달되는 연극의 표현형식이 시각을 자극하는 표현형식이라면 <러빙시어터>는 공간, 사물, 텍스트, 사운드, 환경과 구조를 감각화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불교 사찰(寺刹)에서 템플스테이를 통해 몸과 마음의 평온함을 찾아가는 과정과도 유사하다. 감각을 자극하는 공간 스토리가 있다는 것과 감각의 방식을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도록 소품과 사운드, 미디어 장치 등이 설정되어 있다.
LDK 내부 공간은 2개의 거실과 다이닝 룸, 7개의 방, 테라스와 정원, 차고의 공간으로 구조화 되어있다. 80년대 2층 양옥 형태의 부촌 주택이 연상 된다. 한, 두 장의 포스터가 붙어있고, 정원을 가로질러 바라보는 출입문은 공연 시작 30분에서 1시간 정도 사이에 도착한 관객들이 선택적으로 와인과 음료수를 마시며 'LDK '공간을 둘러보는 것으로 시작된다. 1층 거실에는 20여 명의 객석이 마련되어 있다. 거실은 테이블이 놓여있고 앞쪽은 다이닝룸과 주방으로 연결된다. 우측으로는 영상과 사운드를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인데 벽면은 스크린이 되기도 한다. 1층은 10여 개의 생활공간으로 분리되어 있고, 목재 계단과 연결된 2층은 침실과 2개의 방과 화장실, 테라스 정도다. LDK 공간에서는 관람객들이 쉬고, 바라보고, 음악을 자유롭게 들을 수 있다. 낯선 거주 주택의 생활공간에서 사물로 감각되는 경험처럼.
◆ <러빙 시어터> 감각의 방식
<러빙 시어터>의 체험은 주택 공간(LDK)에서 소멸한 정서와 몸의 감각들을 환기하게 해 존재와 삶의 본질을 감각적으로 느끼는 방식이다. 촉각, 미각, 시각, 후각 등 인간의 모든 감각기관의 세포들이 활성화하고 뇌는 사유의 감각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재현과 행위의 공간으로 인식되어 온 극장과 희곡, 스토리는 '본다'의 개념이다. <러빙 시어터>는 '나'라는 존재와 마주하는 공간, 거실, 방, 부엌과 구조의 사물과 움직임, 음악, 창문과 커튼, 책 읽기와 음악 듣기 등 감각되는 또 다른 '나'의 존재로 마주 되는 것이 극장 즉 시어터의 개념으로 인지된다. 낯선 방과 공간에서 몸과 정서의 감각으로 사라져 버린 것들이 감각적으로 생산된다. 무서움, 두려움, 공포, 기억, 추억과 따뜻함, 슬픔과 분노, 행복과 사랑의 감정들이 체온(감각)으로 느껴지며 사유의 방식으로 전환된다.
다른 점이 있다면, <리빙 시어터>는 주택 공간에서 깨어나는 감각을 생산화하기보다는 심연의 감각을 깨워 자신을 러빙(loveing, 애정)하게되는 치유의 방식이다. 낯설면서도 친숙한 주택 공간을 체험하며 감각적으로 느껴지게 되는 두 시간 동안의 경험은 시각화된 '본다'의 개념보다는 감각화되며 '바라보게 된다'로서 자신과 마주하게 되는 '본다'로 존재하게 된다. 자기 내면이 극장(시어터)이라고 할까. 퍼포머로 등장하는 배우와 안내자들은 감각적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거나 연출은 개방적인 주택 공간에서 일어나는 구성 방식이 효과적으로 감각될 수 있도록 사운드, 조명등을 활용한다.
◆ '러빙' 하는 '시어터'의 방식
<리빙 시어터>는 세 가지 극장으로 구성된다. 극장 1은 자유로운 공간으로 이동해 MP3로 음악(사운드)을 들으며 책 「러빙 시어터」(화이트 리버)를 읽는 북 시어터다. 「러빙 시어터」는 작가의 자전적 기억과 맞닿아 있는 유년기에 관한 서술이다. 텍스트(북)는 '읽기'에서 '본다.'(감상-극장)의 개념으로 전달되는데, 감각의 파편은 타자의 동일화된 감정으로 느껴지게 된다. 강하늘은 이러한 방식을 지면극장으로 개념화하고 있다. 극장 2는 '핸드시어터'다. 구성은 나무로 된 탁자 위에 책모양 크기의 책자 한 권이 놓여있고 그 앞에는 퍼포머(김정)가 타로 점술을 보는 것처럼 앉아 있다. 문장 하나를 선택하고는 퍼포모와 1:1로 눈을 감고 손을 잡는다. 손끝의 파동은 동화나 놀이의 멜로디처럼 유년의 감각들을 깨우게 되는데 시내의 7살 유년기의 상실과 슬픔의 감정들을 손의 감각으로 만나게 된다. (강하늘)
극장 3은 테이블 시어터다. 강하늘 작으로 희곡적인 텍스로 구성된 30대 여성의 극중인물 '시내' 이야기 <파도>를 모노 형식의 퍼포먼스로 진행된다. 오브제, 인형, 감면과 움직임, 사운드와 영상을 활용해 테이블에서 진행되는데 극장1 '북 시어어터'의 책 「러빙 시어터」의 서사와 연결된다. <파도>는 여성의 몸을 통한 출생부터 유년을 지난 30대의 극 중 시내가 아픔과 상실의 통증들을 신화적인 퍼포먼스로 형상화된다. 극은 언어, 사운드, 조명, 자막과 비현실적인 영상을 활용하면서 배열된다. 강하늘의 표현형식은 포스트 드라마적이면서도 이머시브를 활용한 다원 예술의 구성 방식이다.
주택은 과거와 현재의 삶과 주거 공간이다. 공간에서 발현(發現)되어 재생되는 과거 기억은 소멸되어진 망각의 감각으로 재생산되는 장소이다. 북 <리빙 시어터>는 출생과 삶에서 씻겨 낼 수 없는 상실된 흔적의 텍스트라면, 핸드와 테이블로 감각되는 극장의 개념은 공간에서 존재하는 '나'로부터 고통과 아픔, 삶의 소외 통증들로부터 치유되어 존재의 삶으로 러빙(loveing, 애정)하게 되어 나를 발견하는 극장이 되는 것이다. 극장 1부터 3까지의 체험으로 사유(思惟)되고 감각화되는 강하늘 연출의 방식은 내면으로 시각화되는 '본다'로써 시어터(극장)의 개념이 되는 것이다. 그것을 강하늘은 '지면으로 된 극장' 이라는 글쓰기로 주택, 구조와 공간, 사물과 오브제, 사운드, 영상, 퍼포먼스 등으로 활용해 텍스트를 읽기 방식에서 감각되는 '본다'의 방식으로 실험적인 창작을 하고 있다.
|미니 인터뷰 (작. 연출 강하늘)
강하늘 연출은 텍스트, 사운드, 감각을 재료로 연출, 작가, 퍼포머, 사운드 디자이너 등 공연 형식의 경계를 다변화하며 창작을 해오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세계몰락감>(2023),
─ <러빙 시어터> 의미는.
"<러빙 시어터>는 2017년 연출로서 작업을 시작할 때 극단 이름으로 생각한 이름이었다. 말 그대로 사랑하는 극장. 사랑이 없이는 연극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작품 <러빙 시어터>가 <러빙 시어터>가 된 이유도 결국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사랑 없이는 이별과 상실이 존재할 수 없다. 다른 제목을 떠올리기 어려웠다."
─<러빙 시어터>를 연출하고 기획한 이유는.
"예술가로서 창작을 할 때 어린이, 청소년 시절에 감각했던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청소년 시절에 감각한 것을 바탕으로 2023년에 청소년극 <세계몰락감>을 썼다. 이를 계기로 내면 아래로 더 내려가 올해 5월 '유년기의 통증'을 다룬 <러빙 시어터>를 썼다. 어렸을 때 삶과 세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세계는 매일 안팎으로 부서지고 있고 저마다 가슴 속 커다란 구멍을 안고 살아간다. 부서지는 세계 속에서 개개인의 존재 의미와 삶의 의지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이 질문에 유년기의 통증과 슬픔을 들여다보는 것의 의미를 제안하고자 했다. 자신의 유년기를 들여다보는 일은 존재의 뿌리를 살피는 일이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뒤섞이는 순환적인 삶 속에서 다시 자신의 줄기를 뻗어보는 일이다. 전체 세계를 바꿀 수는 없어도 개인의 세계를 바꾸는 힘이 있다. 그렇게 이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 어떤 창작작업들을 해왔나?
"2017년부터 텍스트, 사운드, 감각을 재료로 연출,작가,퍼포머,사운드 디자이너 등 경계를 넘나들며 공연을 만들어왔다. 피지컬 시어터 <남은 한 조각의 세계>(2017)를 시작으로 2019년에는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인가?' 라는 화두로 아이슬란드로 떠났다. 아이슬란드의 한 작은 마을에서 을 관객참여형 퍼포먼스 형식으로 공연했는데 이를 계기로 프로젝트연작 시리즈로 확장되었다.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아이슬란드, 한국, 베를린 다시 한국에서 각각의 장소와 사회적 맥락 및 관객의 층위에 맞게 관객참여형 퍼포먼스, 다원예술, 다큐멘터리 연극 등 다양한 형식으로 관객들과 만났다. <세계몰락감>은 올해 10월에 공연 됐다."
─ 전시 공간으로 사용되는 한남동(LDK) 주택 공간을 선택한 이유는.
"처음이 아니다.
─ 다원예술적인 퍼포먼스 컨셉은?
'유년기의 통증'이라는 내밀함을 담은 이 작품이 관객과 1대1로 밀접하게 관계 맺는 공연 형식으로 탐구하고자 했다. 극장이라는 장소는 공공적인 만남의 공간이다. 나는 그 만남을 다르게 해석하고자 했다. 창작자의 내밀함과 관객의 내밀함이 수면 위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그 아래로 만나지는 관객의 경험을 구성했다. 극장에 가서 공연을 관람하는 것을 즐기지만 몸이 버거워 침대에서 조명, 음악과 함께 책을 읽는 것을 사랑하기도 한다. 그것 또한 관극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책을 읽을 때 매우 구체적인 세계와 인물의 목소리, 무형의 움직임과 만나기 때문이다."
"희곡은 공연 텍스트이기도 하지만 관객의 내면에 심상을 입히는 문학 장르이기도 하다. <러빙 시어터>는 전통적인 드라마 구조로 써진 글이 아니다. 무대에서 펼쳐지는 언어보다는 관객이 텍스트를 읽는 동안 발생하는 각각의 내적인 공간에 관심이 있었다. 이렇게 북 시어터 컨셉이 나오게 된 것이다. <러빙 시어터>의 다원예술적인 특징은 '유년기의 통증'이라는 내밀함을 담은 작품의 특성에 맞는 관객의 경험을 구성한 결과다. 한편 '극장'이라는 개념을 다르게 해석하고 시도한 다는 의미에서 궁극적으로 '연극적'이다 라고 할 수 있다."
─ <러빙 시어터>는 초대장, 사운드와 함께 책 <러빙 시어터>를 감상하는 【극장 1】 북 시어터, 창작자와 관객이 1대1로 유년기의 기억을 손의 감각으로 만나는 【극장 2】 핸드 시어터, 테이블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퍼포먼스 <파도> 【극장 3】 테이블 시어터 세 개의 극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핸드 시어터는 창작자와 1대1로 유년기의 기억이라는 매우 개인적인 삶의 한 조각을 손의 감각으로 나누는 극장이다. 2019년 아이슬란드에서 home을 주제로 마을 사람들과 감각 워크숍을 한 적 있었는데 언어가 아닌 손의 감각으로 영혼의 진동을 주고받은 순간들이 있었다. 이후 공연의 일부로서 관객들과 손의 감각으로 각자의 home들을 만났다. <러빙 시어터>에서는 자신의 유년기의 기억을 창작자와 손의 감각으로 만난다. 이과정에서 언어로 다 포획될 수 없는 개인의 경험, 감정, 감각들이 창작자와 관객의 몸에 동시에 기입된다. 테이블 시어터 퍼포먼스 <파도>는 솔로 퍼포먼스라는 큰 틀 안에 오브제, 인형극, 가면, 움직임 등 다양한 매체를 혼합한 공연이다. 대본의 의도에 맞게 연출을 하다 보니 위의 매체들이 필연적으로 선택 되었고 김정 배우와 함께 창작하며 만들었다."
─ <파도>를 통해 전달하고자 한 것은?
"북 시어터에서는 7살의 시내를, 핸드 시어터에서는 자신의 유년기와 만난 관객은 테이블 시어터 퍼포먼스 <파도>에서 30대로 성장한 시내를 만나게 된다. 사실 <파도>는 작가가 왜 책 <러빙 시어터>를 썼는가? 에 대한 응답이다. <파도>는 어렸을 때 자신이 겪은 이별과 상실을 기억한 채 성장한 30대의 시내가 탄생 이전의 세계를 감각하면서 인간의 슬픔과 고통의 근원을 만나게 되는 이야기다. 매일 아침설명할 수 없는 고독과 불안을 느끼며 하루를 시작하는데 언어화 할 필요성을 오랫동안 느끼고 있었다. 내안에 깊게 자리 잡은 실존적 허무이다. 우리는 우리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이곳에 태어났고 태어난 순간부터 시간의 유한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것이 인간이 가진 기본값이다. 세상 모든 고통과 슬픔은 여기에서부터 비롯된다. 이 부분을 관객과 함께 나누고 싶었던 것 같다."
─ 주택 공간과 생활 오브제를 통해 감각화 시키는 것, 텍스트도 시어터 개념으로 '읽기'가 아닌 감각되는 방식이 좋았다.
"작가가 써놓은 텍스트를 성실히 재현하는 것보다 다매체들이 만나 발생하는 감각의 극대화와 관객이 작품과 밀접하게 관계 맺는 향유방식에 관심이 있다. <러빙 시어터>는 전통적인 드라마 구조로 써진 글이 아니다. 전통적인 무대 언어로 표현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관객이 텍스트를 읽는 동안 발생하는 내적인 공간과 지극히 개인적인 기억의 촉발에 관심이 있었으며 이를 위해 '지면 극장' 컨셉을 생각했다. 텍스트가 관객의 몸과 내면에 생생하게 감각될 수 있도록 페이지를 구성했고 언어를 다듬고 문장을 배열했다. 2층 집을 개조한 LDK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연상케 하는 사적인 공간에서 사운드와 함께 책을 읽는 경험은 자기 안으로 깊게 들어가면서도 그 장소에 있는 또 다른 타인과 느슨하게 연결되는 감각이 발생된다. 이것을 의도하며 퍼포먼스를 구성했다."
"<파도>의 경우 처음 LDK에서 연습했을 때 적당한 크기의 테이블이 있었고 <파도>의 핵심 공간이자 오브제가 되었다. 팀에 무대/소품 디자이너와 조명 디자이너가 없었고 예산도 적었기에 모든 것을 스스로 구하고 운용할 수 있는 오브제를 선택해야 했다. 당근마켓이 큰 도움이 되었다. 나와 김정 배우 모두 즉흥성과 놀이성을 바탕으로 창작하는 것을 선호한다. 대본을 중심에 놓고 그 공간에 있는 오브제와 명백한 의도를 갖고 리서치하고 선택한 오브제들이 적절히 섞여지면서 <파도>가 완성되었다."
─아쉬운 것은, 세 개의 독립된 극장이 세밀하게 연결이 안 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전형적인 연극 구조를 생각하고 관람하면 그렇게 느껴질 수 있지만 관객 경험의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나름 긴밀하게 연결하고자 했다. 북 시어터에서 7살의 시내의 상실과 슬픔을 만난 관객은 핸드 시어터에서 자신의 유년기를 손의 감각으로 만난다. 마지막으로 관객은 테이블 시어터 <파도>에서 몸에 새겨진 탄생의 슬픔과 유년기의 기억을 간직한 30대의 시내를 만나는데 <파도>의 내용이 여성과 슬픔, 모녀 관계의 역전이라는 보편적 주제가 탄생 이전의 신화적 세계로 마무리되면서 작가의 고유한 감각에 치중되어 있다고 느껴질수도 있을 것이다. 이 부분은 재연때 고심하여 더 디벨롭 하고자 한다."
─ 작가와 연출가로 앞으로 계획은.
"책 <러빙 시어터>가 출간 되었으니 화이트 리버의 남선미님과 함께 크고 작은 행사들을 기획하고 있다. 관객과 함께하는 낭독극과 관객 반응이 뜨거웠던 핸드 시어터를 곳곳에서 펼쳐 보이는 것도 상상하고 있다. 또한 <파도>를 좀 더 디벨롭해 독립된 하나의 공연으로도 모색해보고 싶다."
김건표 대경대학교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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