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을사년의 배암. 용과 이무기 사이의 행간을 사행(蛇行)하는 저 가축도 생선도 아닌 유혹의 필체. 나는 그걸 닮은 포항의 호미곶과 구룡포 해풍의 앙상블을 깊게 품어본다. 갓 얼어버린 몸통이 앉은 밥상머리에선 딱 석 잔의 반주(飯酒)만 한 게 또 있을까.
모든 생선은 생물 상태도 좋지만 미식가는 반 정도 말린 상태를 더 즐긴다. 경북 영덕 강구의 대표 주자격인 미주구리(물가자미)도 마찬가지. 특히 양미리와 피데기(오징어), 코다리(명태)는 매력적인 반찬이자 술안주이다. 꾸덕한 건어물 중, 이 계절 절정의 인기를 끄는 게 있다. 바로 전국 생산량의 85%를 점하고 있다는 구룡포 과메기가 아닌가 싶다. 이즈음 구룡포부터 호미곶으로 연결되는 해안도로는 400개가 넘는 실내외 과메기 덕장(건조장)이 포토존 구실을 한다. 잘 말려지고 있는 과메기 하단부를 응시해 본다. 방울지고 있는 노란 기름, 꼭 자잘한 수용성 호박(琥珀) 같다.
이제 '과메기의 인문학'을 좀 들춰볼까 한다.
◆신통방통 구룡포 겨울바람
역시 승부처는 기온과 바람. 동절기, 구룡포에서 부는 바람은 백두대간을 넘어오는 북서풍. 영일만을 거치면서 습기를 머금고 있다가 다시 한번 산을 넘어오면서 습기가 사라지는 덕분에 구룡포는 과메기 말리기에 최적지. 해안 뒷산이 너무 높으면 찬공기가 먼바다로 그대로 도망가버린다. 구룡포는 그렇지 않다. 낮은 구릉이 자리 잡아 자연스럽게 해안으로 불어내려 온다. 구룡포 해안은 하정에서 호랑이꼬리(대보)까지 평균 해발이 100m, 가장 높은 곳도 150m밖에 안 된다. 늦가을까지 구룡포에는 북동풍(샛바람)이 분다. 11월 20일~2월 말, 바람은 희한하게 북서풍으로 싹 바뀐다.
해풍은 영하 4℃에서 영상 10℃를 유지해야 된다. 너무 추워도 너무 따뜻해도 맛이 좋을 리가 없다. 삼한사온의 패턴이 딱이다. 그런데 지구 온난화가 걱정이다. 한때 강원도에서 황태의 노하우를 적용시켜 과메기를 생산하려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무작정 햇볕에 말리는 줄 아는 데 그렇지 않다. 잘못하면 오징어처럼 딱딱해져 먹기 곤란해진다. 황태 같은 경우는 녹고 얼기를 반복시키기 위해 옥외 건조대에 그대로 둬야 하지만 과메기는 하루 정도 야외에서 말렸다가 나머지는 그늘에서 은근하게 말린다. 음양 조화를 맞춰야 한다. 기온이 영하권으로 떨어지는 밤에는 적당한 조건이 맞춰진 건조장으로 옮겨놓는다.
◆통마리와 배지기
이제 자연산 국내 꽁치는 절멸이다. 20여 년 전부터 러시아 쿠릴열도 부근에서 잡아 온 냉동 원양꽁치를 사용한다. 꽁치가 들어오면 잘 녹이고 세척도 세밀하게 해준다. 세척은 세 번. 바닷물에 한 번, 바닷물과 민물을 섞은 기수에 또 한 번, 마지막엔 민물에서 마감세척을 한다. 다음에는 건조대에 600~800마리를 널어준다. 이것도 고난도 기술이다. 반으로 가른 꽁치의 등이 안으로 오도록 널어준다. 대나무 막대에 20마리 한 두름을 널며, 이때 간격은 5㎝. 잘못 널면 세찬 하늬바람에 흔들려 서로 붙어버릴 수 있다. 종일 건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보통 1~10도 쾌청한 날 해가 뜰 때부터 일몰 한 시간 전까지 말린다. 다음엔 2박 3일간 건조장으로 옮겨 말려 준다. 꽁치 안에 축적된 기름은 20% 정도 밖으로 배출시킨다. 너무 많아도 너무 적어도 안 된다. 일부 업체는 복고식 건조방식을 고집한다. 연탄불로 내부 온도를 맞추는 것이다.
작업장은 아낙네 천국. 다문화 가족의 일원이 된 외국인 여성들도 점점 늘고 있다.
과메기 건조 형태와 방식에 따라 '편과메기'와 '통과메기'로 구분된다. 편과메기는 구룡포에선 꽁치의 배를 따 말린다는 의미에서 '배지기 과메기'로 불린다. 토박이들은 내장과 뼈를 제거하지 않고 꽁치를 통째로 짚으로 묶어 조기처럼 말려 먹는데 이를 '통마리'라고 한다. 유통되는 과메기의 95% 이상은 '배지기'다. 배지기는 도시 소비자를 위해 특별하게 만든 스타일. 내장과 뼈를 발라내고 꽁치를 반으로 갈라서 말려낸 것이다. 보통 유통되는 배지기는 네 번 칼질을 한다고 해서 '네발걸이'라 한다.
27년 전부터 구룡포 과메기의 대부분은 배지기로 생산된다. 내장을 깨끗이 발라내고 먹기 좋게 포를 떠서 해풍에 말리는 방식. 10월 중순부터 생산할 수 있으며, 일주일 남짓 건조 기간이면 맛볼 수 있다. 전통 방식인 통과메기보다 상품 출하가 빠르다는 이점을 지녔다. 또 비린 맛은 줄이고 쫀듯한 식감을 높여 과메기를 대중화하는 데 일조했다.
통마리는 손질하지 않은 꽁치를 새끼줄로 엮어 한 두름(20마리)씩 말리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부패하기 쉬운 특성상 통마리는 손질하지 않은 꽁치를 새끼줄로 엮어 한 두름씩 말리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부패하기 쉬운 특성상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12월이 돼서야 건조할 수 있고, 건조 기간도 2주 이상 걸린다.
◆영덕 청어 과메기
사실 과메기의 뿌리는 꽁치가 아니고 '청어'다. 60년대까지만 해도 영덕과 포항 일대에서는 아궁이 연기가 빠져나가는 살창 옆이나 처마 밑에 청어를 시래기처럼 걸어놓고 말려 먹었다. 가난한 선비가 영양 보충할 수 있는 생선이라 해서 '비유어'(肥儒魚), 속담 중에 '비웃 두름 엮듯 한다'란 구절이 나오는데 '비웃'이 바로 청어를 의미한다.
지천으로 늘렸던 청어. 하지만 70년대를 넘어서면서 씨가 마르기 시작했다. 그 대타로 기용된 게 바로 북태평양 꽁치다. 수입된 꽁치는 영하 10도에서 냉동했다가 12월에 꺼내 사용한다. 봄 꽁치는 기름기가 적어 구이와 찌개용, 가을 꽁치는 과메기용이다. 그런데 2000년을 넘어서면서 연안에서도 조금씩 청어가 잡히면서 자연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청어 과메기가 부활했는데 바로 그 현장이 영덕 창포마을이다.
소설가 김동리가 1967년 이런 구절이 담긴 수필을 한 편 발표했다. "내 고향은 경주다. 경주에는 관메기라는 것이 있었다. 청어 온 마리를 배도 따지 않고 소금도 치지 않고 그냥 얼말린 것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그동안 인생 반백년에 한식은 말할 것도 없지만, 양식·왜식·중식, 갖가지 요리도 다 먹어왔어도 관메기회나 관메기죽 이상으로 맛있는 것을 나는 아직도 알지 못하고 있다." 청어 얼말린 것을 '관메기'라고 했는데, 요즈음 '과메기'를 의미한다.
말린 청어는 관목(貫目)이나 건청어(乾靑魚)라고 했다. 19세기 조선 최대의 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는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부엌의 살창에 청어를 매달아서 연기를 쐬어 상하지 않게 한 것을 '연관목'(煙貫目‧훈제 관목)이라 했다. 정조 때 경상도 영일현(현재 포항시 영일군)에서 조정에 바치는 물품 중에 여러 가지 마른 생선이 있는데, 여기에는 건대구나 건문어와 함께 관목청어(貫目靑魚)도 있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청어떼가 해안까지 밀려와 맨손으로 줍기도 했다. 포항의 구룡포 남쪽 구만리 앞 해변은 '까꾸리께'로 불렸다. 바닷바람과 파도에 떠밀려 온 청어를 갈쿠리로 주워담았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단다. 1924년 영일만의 청어 어획이 겨울 두 달 새 5천여만 마리를 잡았다는 소문도 났다.
1960년대 말 이후 동해안 일대에서 청어가 사라져버렸다. 그나마 간간이 잡히는 것들도 모두 일본으로 수출됐다.
◆청어과메기길
매년 한 번씩 드라이브 삼아 들리는 영덕 강구 해안길. 북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자그마한 어촌인 영덕읍 창포리 창포마을이 보인다. 20년 전부터 '청어과메기마을'로 불린다. 창포마을은 예전 청어잡이로 흥청거렸던 어항이다. 여기서 풍차횟집을 운영하는 유외종 씨가 청어 과메기를 처음 복원시켰다.
창포마을 청어 과메기는 구룡포 과메기와는 만드는 법부터 다르다. 영덕 앞바다에서 잡은 청어를 옛 방식 그대로 두름으로 꿰어 바닷가 쪽에 널어놓는다. 보통 한 달여 말린다. 창포마을은 예로부터 바람이 푸짐했다. 영덕의 풍력발전기가 창포마을 뒷산 쪽에 세워진 것도 이런 연유. 마을엔 대형 과메기 건조장이 따로 없다. 마을 해안도로 앞에 2~3가구가 4~5m 길이의 건조대를 세우고 청어를 널어놓았는데 양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한때 구룡포에 권선희 시인이 살았다. 그녀는 일명 '청어 시인'으로 통했다. 그녀가 흥미로운 시 하나를 품었다. '매월 여인숙'이란 시다. 청어 마니아인 매월당 김시습을 염두에 둔 것이다. 매월당은 한때 포항 대보면의 월명사에 머물렀고 청어 과메기를 즐겼다. 방랑길에 오를 때면 허리춤에 된장떡과 말린 청어를 차고 다녔고 물고기에 된장을 발라 구워먹었다고 한다. 어숙권의 '패관잡기'에는 세조가 원각사에 재실을 짓고 승려 김시습을 불렀을 때 왕 앞에 누더기옷을 입은 그의 품 안에서 말린 청어 한 마리가 툭 떨어지는 바람에 세조가 기겁을 했다는 얘기가 있다.
오늘 과메기 이야기는 여기까지. 과메기는 '통습적이고 다층적인 맛'을 갖고 있기에 '어느 식당이 제일 맛있느냐'고 질문하는 건 우문(愚問)일 것 같다. 부디 과메기로 군침 도는 근하신년이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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