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작가의 단편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에서 주인공은 삼혼(三婚)의 중년 여성이다. 남편들은 하나같이 속물이다. 이들에게 더 좋은 기회를 못 잡은 건 적절한 도움을 못 받은 탓이다. 출세와 생재(生財)에 도움이 될 만한 이들과 교류하는 건 지혜로운 삶의 방식이다. 주인공도 고위층의 부인이 된 친구와 일본어 학원에 다닌다. 그러다 우연히 일본인 관광객들과 뒤섞인다. "여러분, 이 부근부터 소매치기를 조심하십시오"라는 안내원의 말에 왈칵 부끄러운 마음이 들고는 어디에도 '부끄러움을 가르치는 곳'이 없다는 걸 깨닫는다.
고전(古典)은 부끄러움의 각성(覺醒)을 강조하며 반복한다. 성경 잠언(30장 12절)은 "스스로 깨끗한 자로 여기면서 오히려 그 더러운 것을 씻지 아니하는 무리가 있다"고 했다. 열반경에는 중생을 구제하는 가르침으로 '참괴(慚傀)'를 다룬다. 스스로 죄를 짓지 않으며 남을 가르쳐 죄를 짓지 않게 하는 것이다. 맹자는 "무수오지심 비인야(無羞惡之心 非人也·부끄러운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라고 했다. 논어 자로 편에서 공자는 "자기 행동에 부끄러움을 알고 사신으로 사방에 가서 임금의 명을 욕되게 하지 않으면 선비라 부를 만하다"고 한다.
아는 것과 실행하는 건 천양지차(天壤之差)다. 자신이 속한 곳이 뒤처지면 낙오되는 경쟁사회라 인식하면 더욱 그렇다. 과오 인정은 곧 약점을 드러내는 자학(自虐)이 되기에 부인(否認)부터 하기 바쁘다. 자책과 겸손이 순진한 구도(求道)적 자세인 양 윤리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는 심성이 된다. 큰 잘못을 저지르고도 내가 뭘 잘못했느냐며 남을 탓하기 바쁜 군상들 사이에서 진심 어린 반성으로 용서를 구하는 인간상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지난 22일 이른 아침 한 여성이 40년 전 무임승차했던 일을 사죄하며 200만원이 든 봉투를 부산역 매표창구에 두고 사라졌다고 한다. 1980년대 초반의 일을 여태 기억하고 있었다니 자기합리화는커녕 후회와 반성으로 당시를 수차례 반추했을 거라 짐작한다. 스스로에게 엄했을 양심에 '부끄러움'이 뭔지 곱씹는다. "다들 그렇게 산다" "국가가 해준 게 뭐 있나" "이렇게라도 내가 낸 세금을 회수한다"고 목소리를 높여도 정상처럼 보이는 시대에 '부끄러움을 가르치는' 일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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