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39대 대통령을 지낸 지미 카터가 29일 100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29일(현지 시간) 카터 전 대통령의 고향인 조지아주(州) 지역 언론들이 그가 역대 미 대통령 중 가장 장수했으며 지난해부터 조지아 플레인스의 자택에서 호스피스 간호에 들어간 상태였다가 별세했다고 보도했다.
카터 전 대통령의 아들인 제임스 카터 3세는 이날 부친이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공식적인 사망 원인은 공개되지 않았다.
1924년 10월 1일 조지아주 플레인스에서 농부이자 사업가인 부친, 간호사인 모친 사이 4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 카터 전 대통령은 해군사관학교 졸업 후 장교로 임관해 해군 잠수함 부대에서 복무했다.
하지만 부친이 암으로 사망하면서 전역 후 조지아로 돌아와 부친이 운영하던 농업 사업을 물려받았다. 이후 교육위원에 출마하며 정치에 입문했고, 1970년 주지사에 선출됐다. 성공적으로 임기를 마친 카터는 1976년 11월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공화당 소속 제럴드 포드 대통령을 꺾고 당선됐다.
은퇴 후 고령으로 인해 건강 문제를 겪어 왔던 그는 과거 암 투병을 했으며, 여러 차례 건강 악화를 경험했다. 지난해에는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가정에서 호스피스 완화 의료 서비스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공개되었다.
지미 카터는 1977년부터 1981년까지 재임하며 미국 내외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이란 인질 사태와 같은 외교 문제와 경제 침체로 인해 재선에 실패했지만, 퇴임 후에는 국제 평화 해결사로서 주목받았다. 그는 퇴임 이후 활동을 통해 '가장 위대한 미 전직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2002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며 그의 평화와 인권을 위한 노력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 또한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해 꾸준히 기여하며 한국과도 깊은 인연을 맺어왔다.
카터 전 대통령은 한국과의 인연도 있다. 1977~1981년 대통령 재임 중 주한미군 철수를 압박해 당시 한미동맹이 심하게 흔들렸다. 실업, 물가 상승 같은 경제 문제로 현직 시절에는 인기가 없었지만 퇴임 후 봉사 활동 등을 통해 국민들 박수를 받았다. 1994년 1차 북핵 위기 때 미·북 사이의 중재자로 나섰고 여러 차례 북한을 방문해 남북 화해를 도모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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