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마지막 일요일인 29일 오전.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연말연시 정국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너무나도 참혹한 항공기 참사가 발생했다.
이날 오전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는 탑승객 대부분인 179명의 목숨을 앗아가며 전 국민을 혼란과 슬픔에 빠지게 했다.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착륙 중이던 제주항공 여객기가 '버드 스트라이크'(조류 충돌)로 활주로를 이탈해 울타리 외벽에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번 사고 생존자는 수색 초기 기체 후미에서 구조한 객실승무원 2명뿐이다. 생존자가 더는 나오지 않으면서 이 사고는 역대 우리나라 단일 항공기 사고 가운데 세 번째로 많은 사망자를 낸 참사로 남게 됐다.
사고로 항공기가 반파되고 불길에 휩싸이면서 현장은 항공기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됐다. 꼬리 부분 일부만 겨우 남은 항공기 모습은 당시의 참혹함을 떠올리게 했다. 시신 훼손 정도도 심해 사고 이튿날이 되도록 신원 확인 작업이 이어졌다.
사건 당일 급히 내려간 무안국제공항 현장은 아수라장이었다. 한순간에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은 멀리서 바라본 표정만으로도 그 참담함과 슬픔이 느껴졌다. 이들의 아픔이 너무 깊어 취재를 위해 가까이 다가가는 것조차 되레 그들의 상처를 한 번 더 들쑤시는 것만 같아 발자국을 수없이 뗐다 멈췄다 했다.
이날 오후 4시쯤이었다. 일부 유가족들은 사연을 묻는 기자들을 향해 울음 섞인 고성을 내질렀다. 누군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유가족들의 아픔을 자판이나 두들겨 대며 소비하지 말라"고 외쳤다.
순간 '참사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 일을 기록해야만 한다'며 마음을 다잡고도, 한동안 그들의 사무친 외침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수긍할 수밖에 없었던 터다.
유가족들을 더욱 분노케 한 사건도 있었다. 사건 당일 낮 12시 30분쯤 전국지인 모 언론사는 사고 항공기 탑승자의 명단을 확보해 속보로 냈다. 본문에는 종이로 출력된 탑승객 명단을 촬영한 사진 4장이 공개됐고 일부만 모자이크된 채로 실명이 모두 공개됐다. 문제는 유족들의 동의가 없었다는 점이다. 논란이 되자 기사는 오후 2시쯤 삭제됐다.
지난 2022년 10·29 이태원 참사 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한 인터넷 매체가 유가족의 동의 없이 참사 희생자 명단을 공개한 것. 결국 해당 매체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과태료 300만원을 물게 됐다. 어쩌면 사회 재난, 참사 현장에서 기자들이 불청객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간의 업보일지도 모르겠다.
현장에 남은 지금도 정답은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일화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참사 이튿날 새벽 공항 1층 대합실에서 마주친 한 유가족 70대 여성과의 대화다.
조심스레 다가가 밤새 한숨이라도 주무셨냐고 말을 건네자 고개를 좌우로 젓던 그는 눈시울을 붉히며 이렇게 덧붙였다. "비행기에 탔던 우리 아들도 기자였어요. 어릴 때부터 기자가 되고 싶다고 매일 아침에 신문도 보고 그랬다니까. 아가씨도 기자인가벼."
너무나 공감되는 사연에 순간 말문이 탁 막혔다. 이후로 질문 한마디, 한마디를 내뱉는 입이 더욱 무거워졌다. 어쩌면 이 자리에서 질문을 받는 유가족이 남이 아닌 내 가족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엄습해서다. '참사를 수단으로 삼지 않는 예의'가 무엇인지 바쁜 현장에서도 치열히 고민해야 하는 이유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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